한국에서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은 한국에서 꽤 호평을 받았고, 당시에는 일본의 젊은 영화들이 많이 들어와 개봉되고 환영받곤 했다. 내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두어 번 가봤는데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을 거기서 본 건지 나중에 따로 본 건지는 기억이 정확치 않다. 하지만 쿠루리의 OST와 함께 그 영화는 내 청춘의 기억 속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전히 연기 생활 초창기인 젊은 츠마부키 사토시, 마찬가지로 어렸던 우에노 주리는 역시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던 나의 20대와 겹쳐져 있었지만 영화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은 것과 별개로 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츠마부키 사토시의 그 즈음의 작품 중 오렌지 데이지라는 드라마도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대책없는 삶과 미래를 향한 불안이 겹쳐진 그 모습들을 나와 겹쳐 보곤 했다. 당시 한국은 IMF 금융 위기를 극복한 듯한 상황에서 월드컵을 지나 무언가 희망의 기운이 존재했던 시기다.
최근엔 한국에서 한지민, 남주혁 주연으로 조제라는 이름의 영화가 나왔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소설 원작과 일본 영화를 모두 참고했다고 되어 있다. 이미 호평을 받은 일본 영화가 있는 마당에 왜 리메이크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다른 사람들 중 유사한 반응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판 조제는 일본판과의 시간 간극과 장소 간극을 메우기 위해 여러가지 변화를 꾀했다. 그런 건 이해가 가지만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사뭇 달랐다. 사실 예전 일본판을 본지 오래되어 다시 봐야했는데, 일본판에서는 조제의 집이 경제적 형편이 당연히 안 좋지만 집 속은 밝았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지민이 연기한 한국의 조제는 계속 물리적인 어둠 속에 살고 있었다.
이케와키 치즈루를 다시 보며 조제를 연기한 한지민과 좀 비슷해보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혀 다른 배우로 보였다. 치즈루는 미녀이긴 하지만 동안에 장난기 있거나 마냥 행복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한 반면 한지민은 전작들부터 이어진 연기 변신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미녀상이고 어두운 연기를 펼쳤다. 일본판은 치즈루의 얼굴과 언제나 웃고 있는 철없는 사토시의 분위기가 영화에 계속 유지되는 반면 한국판은 남주혁이 사토시의 여성 편력을 흉내내긴 하지만 그 조차도 조심스럽다. 현재 20대의 우울한 삶을 반영하듯 남주혁과 한지민은 아주 가끔 행복하고 계속 힘들어보인다. 일본판에서 예정된 이별이 이루어지면 슬픔이 오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희망이 보이는 반면, 한국판은 길게 깔리는 배경 음악과 함께 이별이 너무 길게 전시된다. 한국판의 조제도 새 삶을 시작했고, 남주혁도 새 삶을 살아가고 심지어 결혼까지 곧 하게 될 예정이지만 그다지 행복해보이진 않았다. 전반적인 한국 젊은이들의 삶처럼.
영화에서 주요 소재는 여자 주인공의 장애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매우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영화는 바람둥이 젊은 남성이 여성 장애인과 잠깐 지내다 헤어진 이야기라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여성이 주체적 인간이고 밝은 성격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조제가 스스로 원했다고 그려지건 어쩌건 조제는 결과적으로 버려진 셈이다. 아마 그래서 더 현실적이긴 하겠지만 쓴 맛을 남긴다. 결은 전혀 다르지만 이창동의 오아시스도 여성 장애인의 성을 그렸던 점이 떠오른다. 누구나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관심을 두지는 않는 여성 장애인의 삶을 그렸다는 점만으로도 리메이크의 가치는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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