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 (2021)

언 에듀케이션 이후 언제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캐리 멀리건과 마찬가지로 잉글리쉬 페이션트 이후 좋아하는 레이프 파인즈가 주연인 영화다. 요즘 잘 나가는 영국 여배우인 릴리 제임스도 조연으로 출연한다. 

 

제목처럼 영화는 발굴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을 잃고 그 자신도 치명적인 질환을 앓는 한 여성이 자신의 넓은 토지 내에 있는, 마치 고대 고분같은 둔덕에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전문가를 불러 파낸다. 

 

파인즈가 연기하는 브라운은 가방끈이 매우 짧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전수된 서폭 지방의 땅 냄새, 성질에 대한 지식은 최고였다. 그는 부족한 학력을 끊임없는 독학과 실무 경험으로 보충하여 특정 부문에서는 전공 학자들보다 더 뛰어났다.  그는 그만의 감각으로 결국 엄청난 것을 발굴해내고 만다. 영국에 바이킹보다 먼저 온 앵글로 색슨의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커다란 둔덕 안에는 매장된 배가 있었다. 시기는 6세기로 추정되었다. 잉글랜드 서폭 지역의 이 발굴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녔던 것으로 묘사되고, 위키피디아의 서폭 페이지에 고고학 항목으로 길게 다뤄질 정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이야기는 엄청난 발굴에 대한 건조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멀리건의 프리티 부인과 파인즈의 브라운씨가 서로에 대해 갖는 묘한 감정이 있고, 발굴팀의 일원인 릴리 제임스와 프리티 부인의 사촌 로리 로맥스의 사랑이 감정선을 형성한다. 프리티 부인은 자신의 질병 때문에 감정을 더 진전시키기 어려웠을 터이고, 무엇보다 브라운씨는 잘 만나지는 않는 것으로 나오지만 아내가 있었다. 

 

영화는 발굴, 묻힌 것을 파내는 이야기지만 무언가 묻히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프리티 부인부터가 어린 시절부터 13년인가 아버지를 간병하다 보내야했고, 오랜 시간 그런 그녀를 기다리며 매년 청혼한 대령과 결혼하지만 그 남편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홀로 아이를 길러야했다. 그리고 그녀도 발굴 시기 즈음에 남은 삶이 길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렇게 그녀는 주변의 가족을 땅에 묻고 자신도 묻힐 상황에 그녀의 땅에서 영국사에 기념비적인 발굴이 이뤄지는 걸 목격한다. 그녀가 둔덕을 파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그런 발견은 불가능했다. 마치 그 발굴을 위해 그녀의 삶이 묻혀야했다는 듯. 

 

또 1939년으로 설정된 영화의 시점에서 전운은 계속 깊어지고 결국 선전포고마저 이뤄지며 본격적인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그 와중에 근처 공군 기지에서 훈련 중인 비행기 하나가 강물에 빠져 조종사가 죽는 일도 생긴다. 바야흐로 수많은 젊은이들, 프리티 부인의 남편 같은 군인들이 1차대전에 이어 또 죽어서 묻힐 운명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프리티 부인의 아들인 로버트가 우주선에 대해 이야기한 점이다. 당시 우주에 대한 상상이 얼마나 있었을까 의문이지만 1940년 즈음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이 테마는 영화 후반부에 주요하게 사용된다. 로버트에게 바이킹과 우주인들은 비슷한 것으로 상상된다. 결국 무덤 속에는 바이킹이 아니라 앵글로 색슨이 있었지만 고향을 떠나 모험을 하고 다른 곳을 정복하는 건 유사하다. 우주선 이야기는 현재를 미래와 이어지게 만듦으로써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서사를 완성한다. 고분의 발굴이 관련자에 한정된 따분한 일이 아님을, 땅 파는 이야기가 어떻게 상업영화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을 보면 근래 개봉했던 한국 영화 도굴이 연상되기 쉽다. 이 영화도 돈이나 박물관의 명예 등이 언급이 되긴 하지만 속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감정이 과잉된 도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도굴은 이제훈이 주연이라 기대를 했지만 실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