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SF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가진 적이 없고, 출연배우로 치면 김태리 정도가 관심을 갖게 한 영화였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는 나쁘지 않았다. 극장 개봉이었으면 아마도 이렇게 빨리 보지는 않았을 텐데(진작에 극장에 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넷플릭스로 나온 덕분에 빨리 봤다. 어제 오후 공개되자마자 본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호평이건 혹평이건)들 때문에 더 일찍 본 점도 있다.
많은 반응이 이미 나와서 대략 훑어보면 내가 생각한 점들이 이미 지적된 경우가 많다. 영화의 CG가 괜찮다(엔딩 크레딧에서 작업팀의 긴 명단을 볼 수 있다), 대사가 잘 안 들린다(볼륨을 많이 높일 환경이 아니긴 했지만 너무 안 들려서 한글 대사에 대한 자막까지 켜야했다), 클리셰가 많다(나도 어디서 본 장면이 많아 보였고 레퍼런스가 될 장면들도 정리가 되어 글로 올라오고 있다) 등.
CG로 대변되는 영화의 기술적 측면, 외관은 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 왠만한 헐리웃 SF의 CG보다 낫다는 평도 있다. 기술 발달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장면의 CG는 전반적으로 좋아졌고, 안 해봤지만 요즘 게임들의 그래픽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CG가 많은 영화와 별로 구분이 안 가게 되는 지점도 있다. 승리호는 게임 화면처럼 보이는 장면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질감이 적은 것은, 모두가 CG 화면이라는 걸 알고 현재 게임 CG의 수준이 상당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스토리 측면은 어떨까. 영화 초반 대사가 잘 안 들려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노봇 설정은 초반에 꽃님이를 발견할 때 업동이 대사로 설명이 된다는 걸 두번째로 볼 때에야 알 수 있었다. 영화 막판의 대반전은 이미 초반에 근거를 두고 있었지만 그 낯선 설정을 처음부터 인지한 관객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병에 걸린 아이가 실험적인 약물을 맞고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은 전에 본 적이 있다. 그 아이 하나가 온 인류의 희망이 된 것은 과하지만 많은 수퍼히어로물의 설정이기도 하다. 독특한 것은 그 아이가 꽃님이라는 아주 한국적인, 사실 한국사람도 잘 안 쓸 것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점이다.
영화는 지구를 파멸시키려 하고 그럴 능력까지 갖춘 빌런(그는 구세주처럼 설정되었다)으로 인한 위기를 몇 명의 인물들이 저지하는 이야기로 미국의 SF 영화에서 흔히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근래는 중국에서도 그런 작품들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 영화에서 그런 이야기는 별로 볼 수 없었다. 예전 한국 괴수물에 그런 설정이 있었나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에 극장에 가보질 못하여 알 수 없다. 이런 설정의 설득력은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에서 어떤 의미로건 힘이 세다고 모두가 인정할만한 국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생긴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앞으로 70여년 후다. 설정상 지구는 다 망가졌지만 한국의 국력은 그 때 어떨 것인가? 현재까지는 상황이 좋지만 환경, 팬데믹 같은 인류 공통의 위기를 제외하더라도 북한, 인구 변수로 한국이 어떤 상황일지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근자에 나온 근미래 배경의 SF에서 한글이 보이거나 한국어가 들리는 설정이 나올 정도로 현재 한국의 국제적 위치에 대한 인정도 존재한다. 한국인 몇 명이 세계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설정이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지만, 기실 승리호가 극장으로 개봉했다면 크게 고민할 부분도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원래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던 작품이 넷플릭스로 가면서, 외관은 그럴싸해진 한국 SF에 대해 외국인들은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자국인 배우를 캐스팅해서 만든 영화에서 다른 국가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헐리웃 대스타를 캐스팅한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직 우주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보기 어려운 한국인들을 이런 SF 영화에서 설득력있는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따져보면 승리호의 주인공들은 매우 예외적인 존재들이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김태호는 기동대의 최고 엘리트였다가 전락했고, 장선장은 원래 천재적인 과학기술자였고 설리반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이 둘은 UTS와 진하게 엮인 사이였고, 설리반에 대해 개인적 앙심을 품을 동기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그렇지 않다. 타이거 박은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였으므로 그 잔인성과 싸움 실력 같은 건 어느 정도 갖고 있다. 하지만 타어거 박이 UTS와 연결되는 지점이나 왜 승리호에 타고 있는지에 대핸 설명은 보지 못했다. 왜 갱단 우두머리였던 그가 도끼를 휘두른다는 점을 빼고는 가장 다정한 캐릭터인지도 설명이 없다. 업동이는 장선장이 주워와서 되살린 것으로 보인다. 왜 유해진 목소리를 그렇게 구성지게 구사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또 성정체성으로 왜 여성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유도 미지인데, 어떤 소수인을 상징하는 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나 양철나무꾼 같은 존재처럼도 보인다. 업동이 덕분에 승리호는 전투력을 상당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빌런 제거를 목표로 살고 있는 선장 밑에서 신체적 전투력은 최강인 세 명의 캐릭터가 결합하여 결국 지구의 멸망을 막아낸다.
이 정도의 묘사로는 설명이 매우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영화의 큰 줄기는 UTS라는 기업이 환경이 파괴된 지구의 대안으로 지구 대기권 밖의 우주에 인간들이 안전하게 주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엘리시움 같은 영화에서 본 설정인데, 앞으로 100년도 안 남은 시점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랍게도 이미 화성은 인간이 살만한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이것은 물론 꽃님이라는 예외적 초능력자 덕분이긴 했다. 꽃님이의 능력은 목성의 위성을 바꾼 드라마 와치맨의 닥터 맨하탄을 연상시킨다. 여하간 설리반은 환경이 망가진 지구의 환경을 우주에서 나온 폐기물을 버림으로써 더욱 악화시키고, 나중에는 화성이라는 대안이 생긴 상황에서 꽃님이와 함께 지구를 멸망시킬 계획까지 세운다. 꽃님이로 지구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자신과 UTS의 장악력을 확실히 하고 싶어서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류의 대부분을 몰살시킬 계획을 한 기업의 지배자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은 풍자적이고 섬뜩하다. 150살이 넘도록 생존하는 설리반의 비결이 무엇인지 나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분노할 때 검은 핏줄이 불거지는 정도의 특이점이 있다. 아쉽게도 영화는 빌런 한 명의 제거로 지구와 우주에 평화가 오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UTS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사회의 인간들은 설리반과 유사한 경제적 동기를 갖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여러 설정이 비판을 받지만 외계인도 아닌 인간 빌런 하나의 제거로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정한 것이 가장 문제적일 것 같다.
칭찬할만한 설정도 있다. 꽃님이/도로시가 처음에 자폭 기계로 알려지거나 검은 여우단이 누군가를 죽이는 화면 등은 모두가 처음에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배고파하고 방귀를 자주 뀌고 똥도 싸는 꽃님이는 기계가 아니었다. 특수안경을 쓴 장선장이 꽃님이로부터 생체 반응을 못 느꼈다는 게 헛갈리게 하는 주요한 지점인데 꽃님이의 초능력 때문인지 모르겠다. 검은 여우단도 대단한 게 아니라 환경 운동 단체 같은 것이었다. 지구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UTS가 그 주요 원인이 되어가는 가운데 이런 고발 조직의 존재는 UTS에게 위협적이고 더 악마화되어 대중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결국 뉴스라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특히 특정 기업이 국가 이상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는 설정으로 실제 그런 미디어 환경에 처하게 된다면 매우 끔찍할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많은 고민을 했을 터이고, 다 해결을 못 한 채 선보인 설정이 많을 터이다. 곱씹어보면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이 있어서, 영화에 대한 논의가 많다지면 앞으로 다른 한국 SF 영화 제작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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