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의 전망처럼 나도 리버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은 행복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차전을 원정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3:0으로 진 팀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3:0을 만들어 연장에 가는 것도 어려워보였다. 무엇보다 리버풀은 부상으로 살라, 피르미누라는 주전 공격수 두 명이 빠져야했다. 더구나 1차전에서 미친 활약을 보인 메시가 안필드에서 한 골이라도 넣는다면 리버풀은 다섯 골 이상을 넣어야했다. 큰 기대 없이 간밤에 잘 자고 일어나서 소식을 알긴 알아야하니 인터넷에 접속한 순간 믿기 힘든 뉴스를 접했다. 오리기의 골로 리버풀이 결승에 간다는 것이 아닌가.
며칠 전 리버풀은 거의 결승행이 불가능한 챔피언스 리그 상황에 더해 맨체스터 시티의 승점 추가를 막을만한 마지막 상대팀인 레스터 시티마저 패하며, 리그 승점 90점대에도 준우승을 하고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머무른 무언가 상당히 아쉬운 시즌의 결과를 맞이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가능성은 높아보이고(영국 언론의 전문가들의 평이 그러하다), 리그 우승은 어떤 기적적 상황이 따른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되었다. 여전히 리그 우승은 맨시티가 할 가능성이 거의 90% 이상으로 보이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마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 될 수도 있다. 울버햄튼이 간단한 상대는 아니기도 하고, 현재 리버풀은 부상 선수가 많기에 주말 경기에서 리버풀이 울브스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브라이튼이 나쁜 팀은 아니지만 맨시티가 못 이길 것도 없다.
경기 후 영국 언론의 반응은 리버풀이 압도한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아침에 본 하이라이트에서 바르셀로나의 슈팅도 많았고 알리송의 세이브도 여러번 필요했기에 그렇게 압도적 승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첫 골 과정에서 나타난 헨더슨의 에너지, 두번째 골에서 리버풀에 따른 행운, 세번째 골에서 샤키리의 크로스와 바이날둠의 정확한 헤딩, 그리고 네번째 골에서 아놀드의 놀라운 코너킥 처리와 오리기의 마무리는 모두 아름다웠다.
리버풀의 운명을 힘겹게 어깨에 걸치고 다니다 은퇴한 제라드가 경기장에 있었고, 리버풀의 영광의 시절을 이끌었던 케니가 노래를 불렀다. 이 리버풀은 새로운 리버풀이다. 살라라는 지난 시즌 미친 득점력의 공격수가 불가피하게 빠진 상황에서 리버풀은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서 바르셀로나를 물리쳤다. 언론에서는 리버풀이라는 집단과 메시라는 개인의 대결처럼 양 팀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라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 원맨 팀이라는 건 아이러니지만 그만큼 메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메시다. 그에 대한 의존이 큰 만큼 메시가 부진하면 바르셀로나는 대패를 당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이번 경기를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와 로마와 비교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는 4:1의 승리 이후 3:0으로 패하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했는데, 이번에도 3골의 리드에도 불구하고 종합 점수에서 밀렸다. 지금 리버풀의 골문을 지키는 알리송은 당시 로마에서 바르셀로나를 이기는데 공헌했다. 물론 그는 다음 라운드에서 만난 리버풀 때문에 고전해야했다. 바르셀로나의 발베르데 감독은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경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리그를 이미 우승한 상태인데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까지 올라간 팀의 감독이 왜 경질 위협에 시달려야하는지 선뜻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가능성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주전들이 당연히 좋은 선수들이지만 쿠티뉴가 가장 떠나야되는 선수로 지목되는 것 같고, 부스케츠, 라키티치 등 선수들도 나이 때문에 대안을 모색해야하는 듯 하다.
3주 남은 마드리드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상대가 누가 되었건(리그 징계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일찍 맞이할 수도 있는 손흥민의 활약도 물론 기대한다) 리버풀의 새 역사의 장을 써내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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