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더비 경기다. 한국에서는 두 팀의 명칭이 종종 예전 영국에서 있었던 장미전쟁에서 따온 '장미전쟁'이나 '레즈 더비'로 일컬어지고 있다. 장미전쟁이 잘못된 표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레즈 더비라는 말은 잉글랜드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생겨 신문 데이터베이스을 뒤적이고 구글링을 해보았다. 그 결과 역시나 장미 운운하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으며, 레즈 더비라는 말도 가능은 하지만 잘 사용되지 않는 말임을 확인했다.
우선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장미전쟁이라는 표현에 대해 짚어본다. 장미전쟁은 15세기 잉글랜드 내의 전쟁에서 유래한 것으로 랭커셔와 요크셔의 대결이다. 랭커셔의 상징이 붉은 장미, 요크셔는 흰 장미이기 때문에 장미전쟁인데, 결정적으로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랭커셔쪽의 도시들이기 때문에 완벽한 오류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영국 스포츠에서 장미전쟁은 랭커셔와 요크셔 지방 팀들의 대결을 지칭하며 주로 크리켓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현재는 영국의 행정구역에서 리버풀과 맨체스터 모두 랭커셔에서 이탈했으므로 두 팀을 붉은 장미로 부르는 것도 옳지 않아 보인다. 다만 맨유와 리즈의 대결은 장미전쟁의 전통에 의거해 '장미의 라이벌'로 불린다. 이 두 팀의 경기를 장미전쟁으로 부르는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리버풀-맨유 경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애초에 틀렸던 표현인 장미전쟁을 '붉은장미전쟁'이라고 슬쩍 바꾸는 건 실수를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레즈 더비는 어떨까. 리버풀의 닉네임이 '더 레즈'고 맨유는 '더 레드 데블스'이며 양 팀의 홈 경기복이 붉은 색이므로 붉은 색 팀들의 대결이라는 의미로 레즈 더비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맨유가 레드 데블스를 더 앞세우지만 스스로를 레즈라고 칭하기도 하므로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 검색과 구글링을 해본 결과 복수형의 '레즈 더비'는 보이지 않는 반면 red가 단수형 명사이거나 혹은 형용사로서의 '레드 더비'라는 말은 그럭저럭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영어로 검색한 결과다. s하나의 유무라는 작은 차이가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영어 표현은 레드 더비로 사용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두 팀의 경기를 더비로 명명할 때 어떤 표현이 많이 사용되나? 가디언, 텔레그라프, 인디펜던트, 메일, 미러 등 잉글랜드의 유명한 신문과 리버풀 에코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같은 지역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보았는데 가장 흔한 표현은 아무 수식어 없는 그냥 '더비'였다. 요 며칠 사이 퍼거슨 감독도 이 경기를 '더비'로 표현한 바 있는데 그는 몇 년 전에도 그랬다. 2009년 3월 14일 신문에 나온 그의 말이 이 경기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주요 라이벌이었죠. 그 경기는 언제나 우리의 더비였어요.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두 도시,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두 개의 클럽. 두 팀이 만나면 언제나 불꽃이 튀는 걸 예상하죠.
그 다음으로 데이터베이스에서 많이 보이는 표현은 '북서(노스 웨스트) 더비'였다. 이는 위키피디아에서 이 경기를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북서 더비'는 지리적, 행정구역상으로 정확한 용어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랭커셔 지역의 일원이던 리버풀과 맨체스터가 각기 머시사이드와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일부로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북서 잉글랜드라는 단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위키피디아에서 '리버풀 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라이벌 관계' 항목에는 양 팀의 경기를 지칭하는 표현이 나와있지 않다. 피파닷컴의 경우 두 팀의 경기를 '잉글랜드 북서부의 붉은 라이벌'로 칭하며 이 더비의 기원과 발전 양상을 다뤘다.
더비 경기는 기본적으로 같은 마을이나 같은 도시 내 라이벌 팀들의 경기이므로 가깝지만 다른 도시에 속한 두 팀의 경기는 엄격한 의미의 더비는 아니다. 하지만 가깝기에 더 치열한 동네 팀들의 대결 양상이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경기도 하나의 더비로 당연한 것처럼 간주되었다. 어떻게 부르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특히 장미전쟁 같이 틀린 표현은 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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