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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맞아 바다를 구경하고 싶어졌다. 가볍게 다녀올 요량으로 인천, 안산 근처를 생각했는데 찾다보니 교통이 많이 좋아졌으나 차가 없는 상황에서 당일에 다녀올만한 곳은 별로 없었다. 많은 사전 조사를 한 결과 영종도, 강화도 혹은 그 부속 섬들이 좋은 대상으로 보였는데 영종도쪽은 몇 번 가본 적이 있는지라 강화도 옆에 있는 석모도를 대상으로 삼았다.
1월 17일 아침.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신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강화도 외포리까지 가는 버스가 자주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출발하는지는 찾아도 잘 나오지 않아 갑자기 불안한 마음에 9시 30분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반포의 고속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과는 너무도 다른 지나치게 아담한 터미널이었다. 근처의 큰 건물들이 아니라 버스표 자판기 두 대를 갖춘 아담한 정류장 수준의 건물이었다. 매표원을 따로 보지 못해 자판기에서 두 장을 샀다. 표값은 인터넷 검색으로 최고 5천원까지 봤는데 실제로는 5,400원으로 올라있었다. 사고 보니 문득 시간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표를 봐도 그런 거 없다. 좌석 숫자 그런 거 없다. 그냥 오는 거 타면 되는 것이었다. 출발 시각은 가까운 대로 10시, 10시 30분이었다. 10시 차를 타고 서둘러 떠났다.
전에 한 번 가본 강화도. 하지만 이번에 가는 곳은 마니산과 가까운 강화도의 서남쪽 끝. 강화 시외버스터미널에 11시 25분에 도착했는데 45분까지 무려 20분이나 정차했다가 종점이자 목적지인 외포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결국 12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종점에서 내려 바닷가로 나와 왼쪽 방향으로 조금 걸으니 석모도로 가는 매표소가 보인다.
표는 왕복 요금으로 파는데 배를 탈 때 영수증까지 다 가져가버린다. 즉 석모도에서 강화도로 돌아올 때는 표가 없이 그냥 타면 되는 거다. 목표인 석모도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 배를 타고 가는 게 민망할 정도인데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아 석포 선착장에 도착한다.
역시나 보고들은대로 사람들은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들에게 던진다. 나도 하나 준비했지만 두 개 정도 던져준 것 같다. 갈매기들이 허공을 가르는 새우깡을 낼름낼름 부리로 받아먹을 것이라 상상했건만 거의 대부분은 바닷물에 떨어진 새우깡을 선착순으로 주워 먹었다.
선착장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배시간에 맞춰 버스가 운행한다는 내용을 봤는데 역시 그런가 보다. 보문사까지 1000원의 요금. 고찰 보문사로 향했다. 도중에 민머루 해수욕장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작은 섬이지만 왼쪽으로는 과거 염전이었던 들판이 오른쪽으로는 논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보문사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역시 듣던대로 식당 아주머니들이 달려든다. 첫번째 식당에서 막걸리 한 잔을 얻고, 이후 두 식당에서 새우튀김과 냉이 튀김을 얻어 두 손 가득 먹을 쥐고 보문사로 가는 가파른 길로 향했다. 새우튀김이 큰 새우인줄 알았는데 아주 작은 새우들로 튀긴 것이다.
보문사 입장료는 2000원. 신라 시대 지어진 절이라기엔 너무나 현대적이고 근대적이다. 물론 중건을 했겠지만. 곳곳에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서려있다. 오랜 절의 신성함을 믿는 행렬.
산 정상쪽으로 보이는 마애불까지의 계단은 400개 이상이다. 계단은 방향을 몇 번씩 바꿔가며 돌고돌아 산 위로 향한다. 거의 다 올라가서 보니 바위에 주로 10원짜리 동전들이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속으로 500원 짜리 정도는 붙여야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버스 대기실 안에서 보니 그 속의 바위엔 천원짜리 지폐가 붙어있기도 했다. 여하간 쉽지 않은 등정이었다.
이 높은 곳의 암벽에 누가 이런 조형물을 만들었을까, 이것도 수백 년의 역사가 있는 것일까 싶었지만 의외로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며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있다.
마애불에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점점 더 많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좋은 날씨임에도 안개 때문에 시야가 많이 가려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잘 보이게 된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 하지만 저 넓은 갯벌의 의미를 이 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1시 30분 넘어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워낙 음식 공세에 시달려 어디로 갈까 많이 고민했는데, 아까 오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냐는 한 아주머니의 막무가내에 이끌려 한 식당에 들어갔다. 삼보 식당이라는 곳이다. 2층에 오르니 아기를 둔 한 부부만 있을 뿐 한적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럴 거라 믿었다. 2인 20,000짜리 산채 정식을 주문했다. 먼저 길가에서 약속하던대로 새우튀김, 쑥튀김, 도토리묵을 가져오는데 양이 너무 많아 결국 반도 못 먹었다. 정식도 양이 꽤나 푸짐하여 상당량을 남기고 말아 아쉬웠다. 맛이 괜찮았는데. 먼저 식사를 하던 가족이 나가버리자 식당 2층은 우리 차지. 3시 정도까지 천천히 식사를 했다.
문득 식당 창 밖을 내다보니 길거리에 앉아 여러가지를 파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긴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돌아가긴 애매한 시각.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매표원이 다른 곳에 전화까지 하는 수고를 하며 우리에게 경고하고 안내를 하는 통에 괜히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일단 갔다. 해수욕장 정류장에선 우리들만 내렸다. 게다가 오전에 내려준 곳이 아니라 순환도로 옆에 세워서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했다.
저 멀리 낮은 언덕 너머 해수욕장이 있다. -_-
하지만 덕분에 춥지 않은 날씨를 즐기며 긴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폐염전이지만 예전엔 얼마나 큰 곳이었을까 생각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땅에 있는 하얀 것들은 소금일 것이다.
사실 처음엔 자전거를 빌려서 섬을 돌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리 따뜻해졌다고 해도 바닷가의 겨울이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 같아 포기했던 터다. 그런데 해수욕장을 향해 걷다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 세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상당히 걸은 후 거의 4시 정도에 민머루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바닷물이 보이지 않는다. 넓디 넓은 갯벌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나마 모래는 있으니 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인 모양. 갯벌 해수욕장의 진면목이다.
갯벌을 본 적은 많아도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이번엔 바닷물이 빠진 시간인데 혹시나 싶어 갯벌 위에 발을 디뎌보니 의외로 단단했다. 그래서 장화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갯벌을 돌아다녔다. 바닷쪽으로 더 걸어들어가 바위 무더기가 있는 곳으로 가보기도 했다. 바닷가에 온 기분을 느끼려고 바닷물을 보자는 취지였으나 약간의 물이보이나 물고기는 안 보인다. 갯벌에 구멍이 많은데 추운 날씨에 손을 집어넣을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아주 조용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해가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라 사진을 찍으니 내 저렴한 디카로도 근사한 풍경이 찍힌다.
매표원의 말과 해수욕장 근처 아저씨의 말을 참고하여 5시 조금 전에 버스 정류장을 향해 출발했다. 정리해보면 보문사 매표원은 5시 30분까지, 민머루 민박집에서는 5시 20분까지 정류장에 가야한다고 했고, 정류장 옆 편의점 아주머니는 5시 40분에 버스가 온다고 했다. 결국 버스는 5시 45분 경에 왔다. 이분들 말만 들었으면 그냥저냥 조용하게 갔을 터인데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두 명의 젊은 아가씨들이 아무 정보도 없이 왔다가 버스가 안 오면 어떡하냐며 호들갑을 떠는 통에 덩달아 긴장하게 되었다. 신촌 근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인 모양인데 이사를 어디로 하네마네, 같이 사네 마네, 버스가 안 오면 택시를 부르네 마네, 이런 섬에 택시가 있겠느냐는 둥 온갖 고민을 까르르 웃어대며 쏟아내는 터에 제때 온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민머루 해수욕장 가까이까지 오는 버스는 두 시간마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5시 45분에 탄 이 버스가 막차였다.
점심을 늦게 먹어 저녁을 먹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는데, 하필 마지막 배시간이 다가와 석모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외포리에서 오는 우리가 타야 할 배의 모습. 겨울치고 따뜻한 날이었지만 밤이 되니 싸늘해져 목도리를 했다.
외포리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는데 마침 신촌가는 버스가 왔다. 그런데 자리가 거의 없어보여 망설이는 사이 버스가 가버렸다. 이게 또 막차는 아닐까 잠깐 고민하다 여기저기 물어보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매표소를 발견하고 다음 차의 표를 샀다. 결국 또 막차를 탄 거다. 막차는 사람이 별로 없고 한산했다. 민머루 해수욕장에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부터 주목하게 된 영어하는 프랑스 여인과 신촌에서까지 마주친 경험이 독특함을 더해줬달까.
신촌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치멘이라는 곳인데 자판기로 식권을 팔고 이걸 내면 라면을 준다. 칸막이를 잘 해서 손님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컨셉이란다. 매운 맛을 선택했는데 맛있긴 했지만 먹은 다음 속이 좀 쓰렸다.
그다지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고 감행한 당일치기 여행인데 빡빡했다. 더 괜찮아 보이는 섬들에 가고 싶었지만 1박 2일은 있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몇 분들의 블로그에서 도움을 받았는데 더 세세한 정보를 기록하고 싶어도 부득이하게 한참 후에 글을 쓰는 터라 부족함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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