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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가는 홍대입구역 옆의 롯데시네마. 체인질링을 6관에서 봤다. 스크린 크기를 염려했는데 작지 않았고, 자리는 여태 가본 극장 중 가장 좋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앞 좌석과의 간격이 마음에 들었다. 141분의 긴 영화를 보기에 알맞은 조건.
영화를 보며 또 다 본 이후에도 '공교로움'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오버랩되는 잔혹한 살인의 장면들. 마침 홍대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도중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는 중이었다. 그것도 라스꼴리니꼬프가 두 명을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 체인질링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건 알았지만 설마 잔혹하게 도끼에 살해당하는지(어린 콜린스의 생사는 영화 속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혀 몰랐다. 더구나 요즘 꽤 오랫동안 강호순이라는 연쇄 살인범에 대한 기사가 언론 1면을 장식하는 와중이라 영화 속 아동 납치 살인자와 겹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체인질링이 적벽대전과 똑같은 러닝 타임이라는 약간은 경악스러운 사실을 처음 알고 왜 그렇게 길까 생각해봤지만 보기 전엔 짐작도 못할 일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길게 만들었던 것 같다는 기억만을 떠올릴 뿐. 월터 콜린스는 초반에 사라졌고, 이후 상당 시간은 자기가 월터라고 거짓말하는 아이로 인한 짜증스럽고 당혹스러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이후 또 하나의 중요한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바로 아동을 납치하여 살인하는 고든 노스콧과 그의 조카의 행적이다. 결국 월터가 고든에게 납치되어 잔혹하게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거의 확정적인 암시가 던져진 것인데 영화는 종국에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을 던지며 끝난다.
대개의 영화라면 악한이 잡혀서 사형선고를 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도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게 약간은 건조한 느낌으로 전달하는 감독은 지루할 수도 있는 청문회, 재판, 형 집행 장면들을 꿋꿋하게 보여준다. LA 경찰이 부패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고든 노스콧이라는 비인간성의 화신 같은 별종이 수많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고 부모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살기 힘든 상황이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경찰서 내부에도 양심을 가진 경찰이 하나 정도는 있었고 경찰서를 뒤엎을 듯이 강렬히 저항하고 시위하는 LA 시민들의 단결력과 시민정신이 있음을 '희망'의 근거로 삼고 싶었으리라.
상자 속에 든 '책임'이라는 내용물이 무거워 달아난 월터의 아버지와 달리 월터는 결국 살인마의 마수를 벗어난 다른 소년의 탈출을 결정적으로 도왔다. 그렇게 착하고 책임감 강하고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아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것 같다는 희망. 결국 월터는 고든 노스콧 같은 비인간적 행위가 만연하는 시대에도 변치않는 인간성의 상징이자 희망에 대한 염원이다.
무심히 달려가는 전차안에서 남편없이 그리고 나중엔 하나 있는 아들마저 잃은채 앉아 있는 졸리의 표정은 무심하지만 절망스럽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지도 않았다. 나중엔 호의를 보여준 직장 상사에게 마침내 마음을 열기도 한다.
단지 아들을 찾길 원했던 어머니의 절규. 제목인 체인질링의 의미에 대해서 몇번 생각을 했지만, 사전적 의미는 영화의 내용을 아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 《요정이 앗아간 예쁜 아이 대신에 두고 가는 못 생긴 아이;cf. ELF CHILD》헐리웃의 도시 LA 구경을 하고 싶었던 철없는 아이 아써(월터에 비해 못생기기도 했다)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조급하고 고압적인 경찰 덕에 졸리, 크리스틴 콜린스는 정신병원까지 가는 수모를 당했다.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활약하고,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인 전화를 너무 이용하는 통에 전화 교환수들의 손이 쉴 틈이 없던 시절. 자릿수를 세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였긴 하지만 이미 80년 전 미국에서는 강호순은 저리 가라며 20명의 아이를 살해한 살인마가 있었다.
지난 주 역사추적은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있었던 참혹한 양민 학살의 현장을 유골 발굴을 통해 밝혀낸다. 온갖 흉기로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이는 인면수심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아니 수심도 그렇게 잔혹하지는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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