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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들어본지는 오래되었다. 그저 그런 소설 같기도 했고, 베스트셀러에 대한 괜한 거부감도 있고, 딱히 봐야 할 이유도 없어 아직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아무 영화나(하지만 그나마 괜찮은 것으로) 보러 극장에 가야 할 상황이 되자 소설을 영화화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선택했다.
되새겨보면 꽤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영화에 꽤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해서 놀랐다. 심지어 영화 포스터의 여주인공이 줄리안 무어인지도 몰랐다.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중 영화의 네이버 평점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원작 소설을 본 관객들의 불만과 영화 속의 비열한 인간상에 구역질을 느낀 관객들의 부정적 반응이 늘어서였으리라.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조차 흔히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영화 한 편 보는 것쯤이야.
사전에 영화평을 대강 훑어봤을 때 연인과 보러 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이 보였는데 이번에 처음 간 씨너스 원주 극장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커플 관람객이 다수였다. 후회했으리라.
영화의 메시지며 줄거리를 굳이 길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는 처음부터 하나의 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도 없이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전염병 같은 현상. 국가 권력에 의한 감금. 아비규환 상태의 수용소. 사람이 죽어가고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중품을 받아내고, 성을 착취해야 식량을 내주겠다는 비열한 인간성.
도시의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끝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주인공이 인간 본연의 추악한 면을 덮어버리고 희망을 보여준다. "a leader with a vision"이란 말이 주인공의 위상을 가장 잘 대변하리라. 눈이 보이는 유일한 사람이자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 영화는 최초로 눈이 먼 사람의 눈이 떠지는 광경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눈먼 도시가 신의 징벌이 아니라 작은 실험이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눈이 보이느냐 마느냐, 실명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눈을 꼭 감고 나쁜 일을 저지르지 말자는, 신일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항상 지켜보고 있고 너무 심하면 가위를 목에 쑤셔넣어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영화였다.
네이버 영화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인데 주인공이 십자가와 정확히 겹쳐지니 주인공과 예수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나 인상적인 것은 영화 The king에 이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다시 왕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역시 베르날은 연약하면서도 악마적인 이중적 연기를 잘 소화하는 캐릭터다.
그리고 영화 시작 전에 상영된 오스트레일리아 예고편이 12월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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