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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위기의 연쇄

by wannabe풍류객 2008.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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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학엔 안보의 딜레마란 게 있다. 상대방(대개 적대국)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쪽이 어떤 계기로건 안보의 위협을 느끼며 군사력을 강화하면 다른쪽도 그에 맞춰 군사력을 증강하는 식으로 연속적인 상승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지만 꽤나 보편적인 현상이고, 국제정치학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경제 위기도 여러 곳에서 상호 연관되어 벌어진 연쇄적인 상승작용들의 결과인 측면이 크다. 어려운 경제 용어는 당체 모르지만 나름대로 그간의 과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온라인으로 어린 아해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최진기 선생님이란 분의 강의를 얼마전에 본 적이 있다. 그 분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80년대 레이건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가 위기를 잉태하고 있었단다. 저금리 정책=>급증하는 대출=>부동산 투자. 

미국 경제 위기의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인데 신용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집을 팔아댔다는 것이다. 굳이 지금 돌이켜보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그 광기.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버블이 터질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한 번 시작된 흐름을 멈추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사실 어렵다. 나도 흐름을 타고 한몫 잡고 싶다는 그 욕망. 

회사에 있던 시절 분당 로또가 유행했다. 회사의 돈 좀 있는 선배님들은 너도나도 신청했고 당첨자가 발표되는 날 좌절했다. 그 많은 회사 동료 중 아무도 되지 않았다. 물론 되고도 감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여하간 지금 분당은 로또 벼락을 맞은 분위기는 절대 아닌 것 같다. 내가 체험한 부동산 열기는 그 정도지만 시사 프로그램을 알게 된 부동산 열기는 분명 광기였다. 

정부는 건설사를 살려야 한다, 강남 집값이 폭락했다 하지만 망할 곳은 빨리 정리해야 한다, 수백 퍼센트가 오르고 몇 퍼센트 내린 것이 무슨 폭락이냐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내가 망할 회사에 다니더라도 정작 외부인이 회사를 죽여야한다고 하면 화날 것이다. 끝물에 빚내서 비싼 아파트를 어렵사리 장만한 분들은 지금의 작은 집값 하락에도 죽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전혀 책임이 없을까?

뒤쳐진다는 느낌, 누군가는 터무니없는 불로소득을 손쉽게 올리고 있다는 질투심. 그런 심리는 말 그대로 맹목적인 상태로 사람들을 몰고 간다. 묻지마. 그래 누군가, 고급 정보를 언제나 빨리 얻고, 시장 상황에 대한 이해가 높은 누군가는 분명 계속 이득을 본다. 그러나 그런 수단도 없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몰려들다 덴 것이 한두 번인가? 왜 깨달음이 없을까.

어찌보면 깨닫지 말라고 사회가 부추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 본 KBS 스페셜에서는 2000년대 우리나라 부동산 열기의 기폭제는 은행 간의 생존경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통의 큰 은행, 내 사수가 다니던 자랑스러운 조흥이 신한에 먹히는 것을 보며 큰 은행 간의 생존경쟁이 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은행의 매출은 대출이고 개인들에게 대량으로 돈을 빌려주며 은행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여러 채 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풀린 돈이 아파트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렸고 결국 거품이 크게 터질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거의 동일한 위기를 이미 겪었다. 부동산 버블이 터지며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화려한 일족"은 버블 훨씬 전의 이야기지만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 정말로 경쟁력있고 인류에 유익한 기업을 간단히 죽여버리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도 모르는 다국적 기업의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저임금 노동자가 착취당할 것인가. 최진기 선생이 일본이 위기에 더 강할 이유로 제시한 제조업. 뿌린 대로 거두는 산업이 아닌 장난질로 돈을 버는 금융업이 경제를 휘두르는 현재의 세계 경제는 얼마나 취약한가. 달러는 In God We Trust를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신을 믿듯 달러를 믿어라. 하지만 달러에 대한 신앙은 이미 무너져내렸다. 미쿡인들은 그래도 신을 믿으려나. 

정직한 삶. 어촌 마을에서 3일을 보내며 일한 만큼 얻는 그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삶에 반했다. 요행은 바랄 것이 못 된다. 대박을 터뜨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보면 나름의 많은 연구가 있었다. 개인의 정직함이 부정한 사회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당당하게 살 수는 있다. 온갖 광기의 자의건 타의건 가담하였다가 나중에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노년을 보내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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