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 개봉했던 한국 영화 중에는 못 보고 지나간 게 너무 많다. '박하사탕'도 최근에야 봤고, 넷플릭스에서 추천해주는 그 즈음의 영화 중 못 본 것 투성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일부라도 본 적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허진호 감독 영화는 많이 봤는데 사실 '봄날은 간다'도 제대로 보진 못 한 듯 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감독의 데뷔작였던 모양이다. 가수 김광석의 영정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순전히 창작해낸 이야기라고 한다. 30대라는 인생의 젊은 시기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의 이야기. 그는 당면한 죽음 앞에서 거의 침착성을 유지한다.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입원했을 때를 제외하면 겉으로는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좋아했던 여동생 친구인 유부녀에게 거의 진심같은 고백을 하기도 했고, 이제 싹트지만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새로운 사랑에겐 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그의 건강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는 그렇다고 자기는 곧 죽을 사람이니 저리 가라고 다림을 다그치지도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곧 끝날 사랑이었기에,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그냥 그러한 애매한 상태로 남고 싶었을까.
수박씨를 뱉는 장면, 친구랑 술을 진탕 먹고 경찰서에 가서 고성을 지르는 장면, 가족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영정 사진을 부탁하는 할머니의 장면은 모두 인상적이다. 태권도장하는 친구에게 자신이 곧 죽게된다는 진실을 술김에 말했지만 못 믿는 친구에게 진상을 어떻게든 알린 듯 한데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 친구들과의 평화로운, 그러나 자신의 죽음 때문임에 분명한 그 모임 이후의 긴장된 단체사진 촬영. 할머니의 경우는 아들이 영정 사진용으로 단독 사진 촬영을 부탁함이 명확했고, 할머니가 나중에 더 나은 사진을 찍겠다고 돌아온 장면은 정원이 어느 날 자기 사진을 찍은 게 영정사진으로 변하는 충격적인 결말 부분을 예비하고 있었다. 남겨진 이들이 장례식장과 제사상에 쓸 괜찮은 사진. 최근 가족의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는 걸 목격하니 십분 공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영화의 진행 시간을 지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정 사진의 등장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벌써 끝난다고? 젊은이의 죽음이란 그런 일일지도. 하지만 늙어 죽어도 벌써 죽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리라.
그 밖에도 리모컨 조작법 설명 장면, 놀이공원 데이트,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열하는 장면, 퇴원 후 다림을 바라보는 정원의 장면 등 인상적인 부분은 많다. 앞에도 적었지만 정원이 한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별로 아파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적으로 보인다. 그의 죽음은 질병으로 인한 게 아니라 갑자기 인생의 종료버튼을 누른 결과처럼 보였다. 이는 감독이 김광석의 영정사진이라는 컨셉에서 스토리를 짰기 때문에 병자의 신체적 고통은 거의 소거해버렸기 때문일까. 감독이건 작가이건 자신의 스토리에 대해 신과 같은 권한을 가지기에 환자의 고통 그 자체를 제외시킬 수는 있겠다. 하지만 구급차 실려가는 한 장면만으로, 곧 죽는다는 대사 하나로 상황 이해는 되지만 그의 죽음이 믿겨지진 않았다.
다림과의 사랑은 기능적이었다. 스토리를 위한 스토리, 사랑이었기에 두 위대한 배우의 연기로서는 아름다웠지만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젊은이들은 공감했을지 모르나 이제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훌쩍 먹은 나로서는 둘의 연애 설정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강변할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음은 분명하다. 사진관 앞에 전시된 다림의 사진, 화장 안 하던 시절의 다림, '미술관 옆 동물원'과 비슷한 시기 심은하의 풋풋함이 한편으로 매우 우울한 이 영화의 분위기를 이상하도록 밝게 만든다. 어떤 젊음은 일찍 가고, 어떤 옛사랑의 사진은 치워지고, 다른 젊음은 남아서 여러 일을 하고, 새로운 사진이 전시된다. 사진을 통한 기억. 그런데 죽은 이만을 위한 사진도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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