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제목이 흥미로워서 예스24 북클럽에서 찜해두었던 책이다. 며칠 전 읽기 시작했는데 어제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끝까지 보고 말았다. 새벽에 바로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유래에 대한 의외의 역사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이 책은 한 때 저자의 롤 모델이었던 한 미국학자의 악마 같은 행위를 폭로하고, 저자가 동성 결혼에 편한 마음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 된 유명한 어류학자로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물고기를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 그의 명성과 권력은 바로 그러한 과학적 업적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저자는 한편으로 학계 권력자가 된 그가 대학 설립자의 암살을 사주한 혐의가 농후한 범죄자라고 고발하고, 더 큰 악행인 우생학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우생학의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미국은 나치보다 먼저 우생학을 신봉했다. 미국 인기 드라마인 옐로우스톤에서 여 주인공이 어릴 적 자궁을 없애는 수술을 인디언 보호구역 병원에서 원치않게 받은 건 이 책에서 언급된 역사적 배경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데이비드에 대한 타격은 그가 그토록 분류하고 이름붙은 '어류'라는 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내 잠을 달아나게 할만큼 충격적이었는데, 과학적 분류로서 '어류', '물고기'라는 건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없다고 하긴 어렵고, 만약 어류라고 이름을 붙이자면 어류에서 파생된 육지 동물들 상당수가 포함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단지 물 속에 있는, 우리가 흔히 아는 형태의 물고기들만 어류라고 볼 수 없다. 어떤 '물고기', 가령 폐어(lungfish)는 연어보다 소에 더 가깝다. 문득 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라는 책이 있다는 게 기억나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인기와 그로 인한 영향력으로 데이비드의 이름이 붙은 대학교 건물들의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떤 측면에서 위대한 인물이라도 다른 측면의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할 것인가.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특히 지도자, 대통령들 중 그런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공정하게 평가하자, 과는 과대로 공은 공대로 제대로 알아두자가 편리한 대답같다. 그나마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이나 과 한 쪽에 치우친 평가들이 대다수라 아쉽다. 아마도 공을 드높이는 쪽에 대한 균형 맞추기 차원에서 과만 부각하는 평가가 많아졌을 것이다. 다만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여 그 인물들의 악행, 실수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의 악행은 그 인물만의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 그리고 일반 대중과 공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과거 지도자를 면책할 수는 없다. 지도자일수록 더 무거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함은 당연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학문적 업적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단지 그의 신념이 학문적으로는 잘못되었음을 사후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의 집요한 수집과 분류, 명명 행위들은 그 노력과 결과에 따라 높게 평가될 수 있다. 다만 그라는 인물을 이제는 인간으로서 추앙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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