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는가. 이야기의 시작은 사실 이 책 속에 있다. 일의 경과를 따지자면 아마존 프라임이 반지의 제왕 세계관의 드라마를 제작하겠다고 하자, 한국의 한 출판사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와 실마릴리온 등의 다른 저작을 다시 번역하기로 했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번역자를 찾는 과정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박현묵씨가 물색되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아마존의 힘의 반지 드라마를 보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톨킨의 가운데땅 이야기를 조금 알게 되었고, 새로 번역된 실마릴리온이 궁금해 검색을 하며 책 소개를 보다가 번역자가 한 명은 교수인데 한 명은 고작 20대 초반의 서울대생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이 청년, 즉 박현묵씨가 주 번역자였다.
놀라움이 더해가는 가운데 박현묵씨에 대한 책도 있는 걸 알고 도서관에서 구해 빠르게 읽었다. 그는 희귀한 혈우병을 앓아 초등학교 졸업 이후 집에서만 지내야했다. 그러는 동안 톨킨의 세계에 빠졌고, 인터넷 동호회를 학교 삼아 지냈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번역을 홀로 꾸준히 진행했다.
사실 이 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건 '신약을 만났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기독교의 신약성서를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큰 오해를 했는데, 책을 보니 새로운 약 덕분에 통증이 덜해졌던 게 단순한 진실이었다. 그 약 덕분에 일 년 동안 검정고시와 톨킨의 책 번역과 서울대 입시라는, 함께 진행하기에 무리로 보이는 일정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책에서 혈우병으로 고통을 겪고, 치료를 받는 과정은 대체로 건너 뛰었다. 일단 관심은 톨킨과 관련된 대목들이었기 때문이다. 현묵씨가 활동한 인터넷 공간의 고수들이 보통 10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건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웠다. 내 사촌동생 중 하나가 10대 중반이었던 시절, 정확히 걔가 몇 살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 밤 이제와 생각하면 실마릴리온의 이야기를 나를 붙잡고 줄구창창 해대서 잠 못 잤던 일이 있다. 그 동생이 그 카페의 고수 중 하나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3명의 인물이 책 속에서 주로 언급되는데 한 명은 이름이 다르고, 한 명은 여자라니 아니고 다른 한 명은 특정이 안 되는데 아닐 듯 하다. 현묵씨가 책의 오류를 발견해서 하퍼 콜린스 출판사에 문의하여 실제로 잘못이 교정되거나, 혹은 다른 카페 회원이 반지의 제왕 부록의 오류를 영국 출판사에 제보해 수정되는 등 이 젊은 한국 톨키니스트들의 덕질은 경악할 수준이다.
반지의 제왕 소설은 초반을 넘기지 못했다. 원문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번역본으로 봐도 그랬다. 이 책에도 그런 일화가 나오는데 영화를 보고 호기롭게 소설에 도전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1권을 넘기지 못 한다. 그래서 도서관의 2, 3권은 깨끗하다. 언제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볼지는 모르겠다. 호빗은 원문이 쉬워서 잘 봤지만 반지의 제왕은 달랐다. 내가 이 세계를 굳이 알아야하나 싶기도 하다. 톨킨이라는 개인이 한 세계를 창조한 건 대단하지만, 그 세계란 매우 음험한 곳이다.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톨킨 저작에 대한 평가는 여기서 멈추고, 그의 영향으로 삶의 목적을 새로 찾은 한 개인의 놀라운 이야기를 알게 된 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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