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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생활의 발견, 강원도의 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by wannabe풍류객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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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 중 가장 먼저 본 건 생활의 발견일 터이고, 강원도의 힘도 비슷한 시기에 봤을 거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송강호가 나온다고 하여 시간이 지나 봤다. 그러나 이번에 보니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게 맞다. 사실 생활의 발견이나 강원도의 힘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졌다. 전혀 기억에 없는 장면이 있거나 영화의 큰 줄기를 완전히 놓친 게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상수 영화를 꾸준히 보았지만 아마도 김민희 배우와의 관계 공식화 이후의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되었던 듯 하다. 특히 감독-배우 커플로 인한 논란이 최고조일 때 나온 어떤 영화는 둘의 이야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그려내 이게 뭔가 싶었다. 배우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일까, 최근의 영화들은 다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도망간 여자와 소설가의 영화를 통해 여전히 홍상수 월드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이전의 영화들을 섭렵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장 좋아했던 생활의 발견으로 돌아갔다. 기억 속에 이 영화는 작품 먼저 본 게 아니라 타인이 이 작품을 설명하며 알게 되었던 듯 하다. MT 비슷하게 청평사 쪽으로 간 적이 있는데 동갑내기 후배가 영화를 언급하며 회전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영화를 회전문의 관점에서 볼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완전히 회전문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거의 작위적일 정도로 회전문 모티프가 후반부에 이용되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이미 예지원 캐릭터가 목소리로 출연한 것도 이제서야 발견했다. 그리고 중요한 씬인 오리보트에서 추상미 캐릭터의 남편과 김상경 캐릭터가 조우하는 것도 이제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점집에서 나온 점궤의 내용과 그 의미도 당연한 듯 보이게 되었다. 점집이 없었다면 이 불륜 커플의 종지부를 찍기 어려웠으리라. 

 

강원도의 힘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내가 강원도 출신이라 가지고 있었고, 영화를 두세 번은 봤지만 뭐하는 내용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이제야 오윤홍 캐릭터 지숙과 백종학 캐릭터 상권이 연인이고 그 둘이 우연히 동해안에 가서 각자 한 일들이 축인 걸 알았다. 지금처럼 동해안 가는 게 쉽지 않았던 시절이라 두 캐릭터가 한 열차에 타고 가는 게 납득이 될 만했다. 지숙과 경찰 아저씨의 관계는 분명히 육체적인 것으로 진행된 걸로 기억했는데, 의외로 노골적인 관계 장면이 없었다. 그래서 영화 종반에 지숙이 낙태를 고백할 때 조금 놀라웠다. 경찰 아저씨의 아이일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에는 나중에 죽게 되는 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경과가 명확치는 않지만 그녀의 동행인 중년 남성이 질투심에 그녀를 산에서 밀어버린 듯 하다. 이 캐릭터는 생활의 발견에서 등장한 대학생 여성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두 남성의 성적 호기심의 대상인 혼자 여행하는 젊은 여성. 백종학 배우는 꽤 매력적이었는데 그의 영화 작품은 많지 않았다. 그가 한 때 허수경의 남편이었다는 정보도 이제야 얄게 되었다. 남매의 여름밤의 고모 캐릭터였던 박현영 배우가 지숙의 친구 중 한 명이었던 걸 발견한 게 가장 재미있었다. 

 

홍상수 월드의 시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앞에도 썼지만 전에 초반부만 보다 그만 뒀던 게 분명하다. 송강호가 나온 걸 봤으니 됐다는 심정이었을지. 김의성 캐릭터인 김효섭이 식당에서 난장판을 만들고 재판을 받는 씬, 민재라는 캐릭터의 이야기 전체, 살인 사건, 아마도 내가 한 때 살던 난곡 지역에서 촬영된 듯한 약국, 사진관 씬 등은 완전히 새로웠다. 네 캐릭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흐름이란 게 분명했고, 영화 스토리는 생각보다 납득이 잘 되었다. 보경이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자신과 관련된 캐릭터들이 만나는 상상의 장면과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영화 마지막 씬이 독특했다. 신문을 왜 그런 식으로 바닥에 깔았을까. 아마 신문엔 소설가 김효섭씨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실렸을 듯 하다. 다른 여러 정치, 경제, 사회 기사들 중에 작은 자리를 차지하며. 그러나 보경에게는 자살의 트리거가 되기에 충분한, 울고 싶은데 뺨맞은 상황이었으리라. 강원도의 힘에서 김유석 배우가 연기한 경찰이 숙소에서 창밖에 매달리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는 정말 유부남이었을까? 이제 안 보인지 꽤 된 박진성 배우는 주연 중 한 명이었다. 박진성 시인이라는 분이 항상 자기 이름 뒤에 시인을 붙이기에 유별나다 했는데 아마도 박진성 배우를 의식하여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게 아닐까 싶어졌다. 

 

예전에는 왜 이 영화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이상할 정도인데, 아마도 나이를 먹은 게 홍상수 영화를 이해하게 되는 주요한 이유인 듯 하다. 홍상수 영화는 거의 매 번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연애를 제대로 못 하고 결혼하고서야 알게 되니 그의 영화가 어려웠던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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