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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비상선언 (2022)

by wannabe풍류객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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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의 신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은 영화.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의 캐스팅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평은 처음부터 별로 좋지 않았고, 올 여름 흥행 성적도 좋지 않았다. 국산 대작들이 여름에 쏟아져나왔지만 한산이 어느 정도 선방한 것에 비해 다른 영화들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의 실패가 더 도드라졌지만 캐스팅만 보면 비상선언의 흥행 부진도 의외의 수준이라 하겠다. 두 편이라면 모를까 대작 네 편이 동시에 흥행에 성공하기는 애초에 어렵지 않았을까. 

 

여하튼 비상선언을 직접 보니 여러 비판 의견과 달리 영화를 이어 보는데 무리는 없었다. 집에서 보면 언제라도 멈추거나 끌 수 있지만 별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한 번 정도 소강 국면이 왔을 때 곧 끝나나 싶어 진행 시간을 확인했는데 거의 한 시간 정도 남아서 의아한 적은 있었다. 영화를 본 후 의견들을 보니 초중반은 좋은데 이후가 별로다라는 의견이 대종을 이룬다. 다른 영화에서 본 장면이나 설정이 많다는 평가도 종종 보는데, 그래서인지 영화는 여러 위기와 해소 국면이 나오고 감독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본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임시완 캐릭터가 좀 일찍 죽는다는 느낌인데, 감독 언론 인터뷰를 보니 그가 재난을 상징한다고 명시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즉 영화는 재난이 닥친 상황에 이어 그에 대처하는 인간들, 더 좁게는 한국인들의 대응 상황을 그려내고자 했다. 재난이라고 할 때 영화에 드러난 건 인체에 치명적으로 조작된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바이오테러의 형태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촬영되고 개봉된 현재도 코로나 팬데믹이 진행 중인데 감독은 2019년에 시나리오를 썼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할 때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즉 그는 코로나 팬데믹을 모른채 시나리오를 쓴 건데 마치 코로나를 겪고 난 후 찍은 영화처럼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전에 이 영화가 진작에 개봉하려다 미뤄졌다는 이야기를 본 듯도 한데 코로나 시국에 이 영화를 언제 개봉해야하느냐는 제작사의 큰 고민이었겠다 싶다. 팬데믹 절정 상황에는 극장에 관중 동원이 불가능하고 진정 국면에서 바이러스 창궐하는 영화를 굳이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성수기에 개봉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이제는 팬데믹에 무덤덤해진 상황에서, 소위 각자도생의 시대에 인간들이 협심해서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는 호소력이 떨어졌다. 

 

영화 자체의 메시지는 나쁘지 않다. 지적된 바처럼 전원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행기 내 인물들이 우리만 어디 가서 죽을께요라는 대목은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만약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곧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거라는 점에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치료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발적 생체 실험이 필요했고, 그 역할은 송강호가 맡았다. 그는 아내를 위해 그런 결정을 했고, 생각해보면 무리한 설정이지만 자발적 감염과 치료 노력이 없었다면 후반부를 처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는 매우 짧은 시간에 결정을 내리고 효과를 지켜보는 여러 순간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최선의 결과가 나와 승객들은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에서 안전하게 착륙해서 내리고 치료제를 통해 완치가 된다. 송강호만은 치료가 완전치 않아 아직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한 상황이 엔딩인데 이를 두고 직전의 승객들의 안전하고 치료된 모습이 환상일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주장도 봤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감독의 의도는 착륙이 잘 되었다는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이 의문을 가졌어도 이병헌의 비행 능력이 확실하다고 몇 차례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문법에서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태도에 논할 부분도 있다. 한일은 미국을 축으로 한 동북아 안보동맹의 일부인데, 한국 항공기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자 미일은 비행기의 착륙을 거부했다. 아마 하와이에 내린 후 급유만 하거나 일본에서 급유만 하는 방법도 생각해야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감염이 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비행기가 어디든 착륙하면 빨리 내리려고 하고 그러다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바이러스의 성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일 공항의 작업자들이 급유를 거부할 수도 있다.

 

결국 이 비행기는 한국에 돌아와야했다. 감독의 메시지가 그 비행기의 착륙을 격렬이 반대하는 같은 한국인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된 한국 사회의 분열상을 비유하듯 착륙 반대 시위자들은 공항의 활주로를 덮으며 착륙을 방해했다. 한편에서는 착륙 찬성론자들도 등장했다. 치료제가 듣는다는 공식 발표가 있은 다음에야 반대 시위자들이 해산했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이유가 생긴 거다.

 

비행기 안의 상황 변화, 국내 여론의 급격한 형성과 분열, 송강호 캐릭터의 너무나 중요한 여러 행위들은 영화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압축된 픽션이라고 읽어야 할 듯 하다. 영화 속의 그럴듯함보다는 팬데믹을 비롯한 커다란 재난 앞의 인간들의 불안을 다루는 양상을 하룻동안의 일로 줄여서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영화 후반부가 너무 매끄럽다는 송경원 평론가의 비판은 정당하면서도 부당하다. 이런 영화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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