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정말 모른다.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호날두가 이제는 국민 '날강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개가 잘 아는 사건의 경과를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내가 이번 일을 겪고 느낀 점을 적어본다.
유벤투스가 한국에 온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7월의 절반은 스페인에서 지냈는데 그 해외 체류 중에 형이 알려줘서 겨우 알게 되었고, 그다지 좋아하는 팀은 아니라 '그래?'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으로 끝났다.
뜨겁디 뜨거운 스페인 태양으로 녹초가 되어 귀국하는 날 방송을 보니 유벤투스와 한국 팀(그러니까 케이리그 팀)의 경기가 무려 지상파로 생중계되는 걸 볼 수 있었다. 여행의 피로와 짐 정리 등의 이유로 경기는 대강 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곧 문제가 불거졌다. 호날두가 단 일 분도 뛰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호날두는 아무 해명이 없었고, 사리 감독은 선수의 근육 피로를 언급했다. 그는 호날두 뛰는 것을 보고 싶으면 비행기표값을 줄 테니 이탈리아로 오라는 말까지 해서 더욱 빈축을 샀다.
나야 관심도 없는 일이었으니 그냥 지나갈 일이었지만 단지 호날두를 보기 위해 무려 수십 만원의 티켓 가격을 주고 경기를 보러 전국에서 몰려든 관객들은 그럴 수 없었다. 사리 인터뷰를 보면 호날두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서 뛰었다고 하니 유벤투스 측이 2군 선수만 내보내며 돈만 벌고 간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제일 유명한 선수가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제 문제는 더페스타(TheFasta)라고 하는 작은 주최 회사가 손해배상을 해야할지 모르는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로빈 장이라는 낯선 사람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며칠 째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조금 떨어져서 보자면 이미 중국에서 무리한 일정을 치른 후에 한국에서 단 몇 시간만 체류하며 싸인회에 경기까지 치르고 밤 비행기로 떠나는 일정을 치른 유벤투스 측에서도 많은 불만을 느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 팀, 일종의 회사인 그들은 애초 그들이 아시아 투어에서 원했던 그대로 많은 돈을 챙기고 떠났다. 27일에 경기를 치르길 원했다는 걸 보면 당일치기 일정은 그들의 원래 의도가 아니었다.
이렇게 유벤투스의 입장을 이해하더라도 태도는 문제가 된다. 호날두가 근육피로로 경기에 뛸 상태가 아니라면 미리 고지를 했어야, 즉 선수 명단에서 제외를 했어야한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호날두가 뛸 것처럼 선수를 계속 벤치에 앉혀두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 호날두는 해명이 지금까지 없고(오히려 sns 계정을 통해 자신에게 기쁜 일들만 전하고 있고!), 사리는 의료진의 견해에 따라 선수를 휴식시킨 것이라는 짧은 말을 남길 따름이었다.
호날두가 뛰지 않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티켓 구매 취소가 분명 대량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그 많은 돈을 쓰며 경기를 보러 올 유벤투스 팬이 그렇게 많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의 유명 축구 클럽들이 여름마다 미국, 동남아, 중국, 일본 등을 돌지만 한국에 잘 안 오는 것은 그만큼 상업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에 손흥민이 있는 토트넘 정도가 관객몰이를 할 수 있을까? 즉 호날두 개인의 흥행성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아마 그가 팬들에게 사인도 좀 해주고, 경기에서 45분이 아니라 10분이라도 뛰었다면 작금에 포르투갈 축구선수가 정치권의 정쟁 도구로까지 이용되는 신드롬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페스타 측에서 호날두가 45분 이상 뛰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했고, 유베 측에서 부인을 하지도 않는 걸 보면 원래는 그럴 의도는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또한 유베에서 그런 조항의 위배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 보면 예외 조항의 내용이 더페스타에서 밝힌 그대로가 아닐 가능성도 제기해볼 수 있다. 유벤투스는 의료진의 점검 결과에 따른 결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경기 제외가 아니라 계속 벤치를 지키긴 했다. 이번 유베의 투어 선수단 규모를 찾아보진 않았는데 호날두를 제외하고 모두 경기에서 뛰었다면 원래 벤치에 있으면 안 되지만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 혹은 벤치에 있으니 단순히 편의의 차원에서 호날두가 벤치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벤치에라도 앉아있는 것이 계약의 조건이었을까? 그가 무려 90분 동안 경기장에서 존재하긴 했으니까? 그동안 간과되어온 벤치선수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환기시키기 위한 제스처? 시위? 운동?
그동안 한국에서 이상하리만치 메시보다 호날두에 우호적인 여론을 잘 이해하지 못 했는데 이제 하루아침에 호날두의 가식이 까발려지고 메시가 추앙 아닌 추앙을 받게 되었다. 며칠 전 메시 검색어로 블로그에 유입이 많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많은 한국인들은 메시가 동양인 인종 차별을 했다는 혐의 때문에 그를 좋아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내가 전에 찾아보고 글로 썼지만 문제가 된 그 사건은 맥락상 인종 차별 제스처가 아니었다. 그 일 때문이라면 안심하고 메시를 사랑하라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의 항의에 대해 유벤투스가 정식 공문을 보냈고 그 내용에 법률 대응에 대한 문구를 두고 언론 등에서 흥분하는 듯한 어조를 읽게 되는데, 한국에서 제기된 법적인 문제를 법으로 풀자는 것이지 유벤투스가 누구를 고소한다는 건 아니라는 점 정도는 짚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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