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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동계를 막론하고 올림픽이 국내에 중계될 때는 언제나 순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그것도 금메달 수 기준으로. 끝나지 얼마 되지 않은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기간 중에도 금메달의 추가는 언제나 대한민국의 순위 변동과 연관되어 보도되었다. 그러나 올림픽의 헌법에 해당할 올림픽 헌장에는 IOC나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국가들을 메달 수에 따라 순위 매기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되어있다. 주최측의 입장으로 보면 우리나라 언론에서 열 올리는 대한민국 순위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국가별 메달의 수는 객관적으로 통계를 내서 순위를 매길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하필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한 순위에 집착하는 현상은 지나친 느낌이다.
올림픽 헌장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밴쿠버 동계 올림픽 공식 사이트에서 국가별 메달 순위를 볼 수 있다.
나라 이름, 금메달 수, 총 메달 수에 따라 정렬 가능하다. 역대 메달, 메달리스트도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순위표는 한국 언론에서 언급하는 금메달 수 기준이 아니라 총 메달 수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이 37개의 메달로 가장 많이 획득, 즉 세계 1위이다. 캐나다가 주최한 대회라면 금메달 수 기준 순위(이 기준에서는 캐나다가 1위니까)를 제일 먼저 보이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총 메달 수 기준 순위가 더 일반적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의 뉴욕타임스의 동계 올림픽 페이지를 봐도 그렇다.
메달 수가 많을 수록 큰 원으로 표시하고 있다. 금메달 순이 아니라 총 메달 수로 비교하고 있다. 맥락을 벗어나지만 1964년 올림픽에서 아시아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메달(은메달)을 한 개 획득한 것이 독특하다. 어떤 종목이었을까. 검색해보니 여자 3000m 스피드 스케이팅에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은 그 대회 때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에 참여했다.
역대 동계 올림픽에서 국가별로 메달을 딴 수를 훑어보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소위 남미 지역이 국가들은 여태 단 한 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 했다. 남미에 더운 지방도 많지만 남극에 가까운 지역은 동계 올림픽 종목을 연습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텐데 이상하다. 그렇다고 남미 국가들이 동계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도 여러 국가에서 참여했다. 그러나 국가별 참가 선수가 많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한편 전통적인 노르웨이의 강세도 눈에 띈다. 언제나 많은 메달을 획득했고, 이웃한 나라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많은 편이다. 스웨덴이 노르웨이보다 많은 메달을 얻은 경우는 드물다. 덴마크의 경우는 거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메달이 적다. 훑어본 결과 1998년의 은메달 한 개가 유일한 것 같다. 핀란드도 전통적인 강호였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정치체제도 유사한 이 국가들간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다.
덴마크는 동계 올림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노르웨이는 동계 올림픽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메달을 땄던 것일까?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가 동계 올림픽의 강자가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국에서 동계 올림픽 종목은 확실히 엘리트 스포츠다. 겨울에 스키장이 미어터지고 고속도로 정체가 다반사지만 한국이 스키에서 메달을 딴 적은 없다. 영화 '국가 대표' 이후 스키 점프에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나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겨울에 스케이트 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역시 대중적인 스케이트장은 사람이 너무 많아 올림픽에 대비한 예비 선수 육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소수의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수년 간 고생해서 대회에 출전한다.
어떻게 그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의 본래적 자질에서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훨씬 일찍부터 메달이 나왔어야 한다. 쇼트 트랙은 신장이 크지 않은 게 유리한 종목이라니 그 쪽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강력한 근육의 힘이 필요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이 쏟아져 나오는 건 무슨 일일까? 이 대목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게다가 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수들의 금메달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계획에 플러스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동계 올림픽 참가를 보면 국가주의의 강한 냄새가 진동함을 부인할 수 없다. 땀 흘린 선수들의 노력을 치하해마지 않으나 우리는 과잉 성적을 거뒀고 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올라갈수록 선수들에 대한 중압감은 가중될 것이다. 가장 신비스러운 것은 독보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연아의 태연한 연기들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그렇게 압박을 이겨내는 선수가 몇 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하계 올림픽에서 수많은 기대를 짊어진 선수들이 무너지고 눈물을 흘리는 걸 봤고, 우리는 쉽사리 그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긴 글을 쓰고 싶었으나 오늘도 머리가 돌지 않는다. 우리는 금메달보다 값진 은, 동메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수고했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선수들이 있다. 어찌보면 선수들의 노력과 성과는 그들의 몫이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감정이입을 하며 선수들과 우리를 동일시하지만 이는 국가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위력인지 모른다. 이런 글을 다시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끼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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