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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UPA의 악몽

by wannabe풍류객 2010.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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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unting이라는 말이 유피에이(UPA)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정말 긴 인연이다. 대학 입학하면서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로 인해 시작된 인연. 뉴스위크(NEWSWEEK)로 몇 년 가다가 나중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로 5년을 넘게 이어졌다. 작년 여름 바이바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알 수 없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더니 또 유피에이다. 

재작년 여름 유피에이에서 전화가 와서 이코노미스트를 보라는 말에 유학갈지도 모른다며 일 년 구독 신청을 했던 것 같다. 작년 여름 구독 기간이 끝나가고, 싱가포르의 이코노미스트 구독 센터에서 10% 더 깎아줄테니 리뉴얼하라는 편지가 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정말 좋은 잡지지만 주간지치고 너무 내용이 충실해서 오히려 다 볼 수가 없는 단점이 있다. 주머니 사정이 날로 가벼워지는 마당에 더이상 구독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걸려온 전화는 이전에 나에게 구독을 권유했던 그 분이 거신 거였다. 뜻밖의 말. 아직 구독 기간이 끝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돈을 한 번 더 내셔야 해요!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얘기를 듣자 하니 내가 원래 2년 구독을 하는 거였는데, 해외로 갈지도 몰라 우선 1년 구독을 1년 구독 가격(28만5백원)에 했고, 현재는 홀딩 상태란다. 처음에 홀딩이라고 해서 작년 5월에 스페인에 다녀온 것을 말하나 싶었지만 그 때는 다른 분이 이코노미스트를 나 대신 받아주셨다. 내가 홀딩을 신청했던 건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9월에 반송되기도 하고 그래서 10월부터 자기네 쪽에서 홀딩을 했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 이상하게 카드 결제 내역을 보니 안 나온다. 하지만 카드 이용 대금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걸 보니 2008년 6월에 이코노미스트 1년치 돈을 내긴 한 것 같다. 이메일을 뒤적이니 이코노미스트가 제 때 오지 않아 다시 보내달라고 한 건 많았다. 더 이전 이메일들을 검색하니 2007년 7월 쯤에 구독이 끝났다는 내용이 나온다. 2005~2007년에 걸쳐 구독했고 1년을 쉬다가 2008년 6월부터 봤던 것 같다. 문제는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내가 2008년에 2년 구독을 신청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당시의 나에게는 50만원에 육박하는 2년 구독료가 부담스러웠고, 싱가포르에서 온 우편물을 봐도 내가 일 년 구독으로 알고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 우편물을 받고 재구독 신청을 하거나 유피에이에 문의를 하지도 않았으니까. 

전화 거신 유피에이 담당자에게 의혹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꺼림칙한 건 사실이었다. 얕은 수작을 거는 것 같아 괘씸했다. 시간이 되자 전화가 다시 왔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일 년 구독 신청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담당자께서는 온갖 이유를 대며 내가 2년 구독 신청을 했었다고 말한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온 우편물 이야기를 하자, 1년씩 끊어서 했으니 그 쪽에서 그렇게 인식하고 나에게 우편물을 보낸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다. 

아까 1년치를 다시 카드 결제해야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러면 28만 5백원을 또 내는 거냐, 2년 치면 50만원이 안 되지 않냐고 했더니, 맞아요 '2년치 구독료-1년치 구독료'를 내시면 된다고 대답한다. 그런 설명은 예전에 들은 기억이 없다. 

설명을 듣자 하니 10월까지 나한테 이코노미스트를 보냈다던데 난 그 때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우리 쪽 기록을 보면 9월에 보낸 게 반송된 게 있고 10월에도 두 번 보냈는데요?란다. 

1년 계약에 보너스로 몇 주치 더 준다고 해도 8월 초가 될까말까인데 왜 10월까지 보냈냐고 하자, 우리는 2년 계약으로 알고 있으니 그랬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1년 구독 기간이 끝난 후에도 보낸 것에 대한 대답은 된다. 

그럼 10월에는 왜 보내다가 말았냐고 묻자,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되고 9월에 반송이 되기도 해서 그랬단다. 전화 연락이 안 된 건 맞다. 내가 재구독을 권하는 전화로 알고 유피에이의 번호가 뜨면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에 보냈다면 그게 왜 반송이 된단 말인가. 나는 작년 2월부터 이 집에 멀쩡히 잘 살고 있었고 우편물 반송은 한 적도 없는데. 

지리한 대화가 오가고 나서 유피에이 담당자는 미련이 남는지 홀딩 얘기를 더 하다가 포기했다. 참 우습게도 계약이라면 계약서가 있어서 그걸로 명백히 잘잘못을 따질 수 있어야하는데 이렇게 전화로 연락이 와서 덜컥 체결하는 계약은 자기들 기억까지고 실랑이를 펼쳐야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보험 계약은 음성을 녹음해서 증거라도 남지만 이건 뭐 증명할 길이 없다. 

전화를 건 담당자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었다. 이코노미스트 말고 포춘도 2주에 한 번 주고, 다른 잡지 과월호 같은 것도 챙겨주고, 내가 예전에 구독했기 때문에 포인트가 있어서 그 혜택을 볼 수 있다고도 말했다. 포춘은 오긴 왔지만 다른 책을 준 적은 없다. 포인트 얘기는 어디서 나온 말인지 구체적으로 몇 점이 있고 어떻게 쓸 수 있다는 설명도 없이 이코노미스트 볼 때 몇 주치 더 보내는 데 쓰인다고 말했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하니 보너스로 주는 포춘은 지금까지도 계속 보내놓고 이코노미스트는 9월에 반송이 돼서 10월에 홀딩을 했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않는가!! 전화 연락이 안 되고 내 소재지가 불분명하다면 포춘도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알 수 없다... 구독 신청하면 책은 착실하게 보내주니 UPA가 사기치는 기업은 아닌데, 구독을 강권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책을 당체 읽지 않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어로 된 좋은 주간지 좀 읽으라고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전화하는 그 정성에 눈물이 나지만, 보지도 않을 영어잡지를 허영심에 덜컥 신청하는 젊은이들은 괜히 신청했어, 취소할꺼야라는 후회만 남는다. 비만 사회에서 며칠 가지도 않으면서 헬스클럽에 몇 달 치 이용료를 낭비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구독의 목적이 무엇이건 수요자가 너무 많아서 굳이 유피에이에서 몇 번씩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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