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시간 즈음엔 디 마테오가 해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정도의 상황이었는데 이미 그는 한참 전에 첼시 감독 자리에서 해고되었다. 첼시가 유벤투스에 완패하고 한밤중에 런던에 돌아온 이후 디 마테오는 첼시의 회장 및 단장으로부터 해고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새벽 세네 시의 일이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책상을 정리해야했고 아침이 되자 첼시는 해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뉴스가 나온 이후 어젯밤은 감독 교체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났다. 사실 어제부터도 수순은 정해져있었다. 디 마테오를 자르고 나면 펩 과르디올라에게 먼저 연락하고 그가 거절하면 라파 베니테스에게 제안한다. 보도들에 따르면 첼시는 이미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도네츠크에게 패한 한 달 전에 펩과 접촉했다. 당시 첼시는 펩으로부터 긍정적인 신호를 얻은 듯 하지만 펩은 일 년의 휴식기를 지키기로 했고, 라파에게 기회가 왔다.
어제 라파는 디 마테오가 실제로 해고되고 자신의 임명에 대한 루머가 불거지자 첼시 감독 자리를 맡고 싶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라파는 모르는 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인터뷰 시점에 이미 협상은 진행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아부 다비에서 원래 스카이 스포츠 아라비아를 위해 일하는 중이었는데 일정을 접고 런던 행 비행기를 탔다. 뉴스들에 따르면 비행기를 타기로 한 시점에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합의는 끝나 있었다.
라파는 첼시 서포터들의 공개적인 반대를 맞이하며 첼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라는 짧은 기간만 보장받았다. 빌라스 보아스가 해고되었던 불과 8개월 전에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시즌이 후반부에 들어왔던 시점이라 지금이 라파에겐 더 좋은 조건이긴 하다. 더구나 라파가 성적을 내고 매력적인 축구를 한다면 다음 시즌에도 감독직을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난 시즌의 비슷한 상황에 비한다면 라파는 훨씬 좋은 기회를 잡았다. 테리와 람파드의 징계, 부상 혹은 폼 하락은 팀 전력 약화를 초래하지만 고참 선수들의 권력이 무너지는 효과도 가져왔다. 유베 경기에서 토레스를 벤치로 보낸 것이 로만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여 디 마테오의 해고를 촉진했다는 설의 사실유무와 별개로 라파는 토레스를 월드스타로 만든 장본인이기에 토레스를 잘 활용할 수도 있고 토레스의 불만을 잠재울 수도 있다.
웨스트 브롬에게 패하고, 이탈리아에서 대패하고, 토레스를 벤치로 보내는 것이 첼시에서 해고되는 치명적인 공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은 비슷한 면이 있다. 50m 파운드라는 영국 최고 이적료 기록은 토레스를 계속 압박했고, 첼시 감독들은 토레스가 잘 하건 못 하건 이 비싸고 구단주가 사랑하는 공격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건 딱히 대체 공격수도 없어서 쓸 수 밖에 없는 선수라면 그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감독을 데려온다는 것이 역전된 논리긴 해도 가능하긴 하다.
이번 첼시 감독 임명 이후 라파에 대한 잉글랜드 언론의 반응은 그가 예전에 리버풀 감독이었을 때 차가웠던 것에 비해 우호적이었다. 로만이라는 예측하기 어렵고 입맛이 까다로운 구단주 밑에서 누군가 또 희생되겠구나라는 동정심의 발로인지 모르겠다. 라파는 지금까지 구단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감독이기에 로만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시즌 말까지라는 짧은 만남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만약 라파가 좋은 성과를 낸다면 로만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내년 여름에 과르디올라가 첼시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디 마테오는 자신이 지난 시즌 AVB와 더불어 해고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해고된 게 아니라 오히려 임시 감독이 되었고 두 개 컵 대회 우승과 함께 로만으로부터 짧은 시간이나마 정식 감독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일각에서는 로만의 짧은 인내심을 비난하면서도 애초에 디 마테오가 원하던 감독이 아니었고 결국 첼시의 추락하는 성적이 디 마테오가 적임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디 마테오는 일 년 전에 그저 웨스트 브롬에서 해고된 감독이었지만 이제는 챔피언스 리그와 FA컵을 우승시키고도 해고된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두 개 대회 우승이 AVB에 반기를 든 첼시의 노장 선수들의 단결의 성과인지 몰라도 첼시의 스타 선수 출신인 디 마테오의 역할이 없었다고 말하면 가혹할 것이다. 그가 순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리에 얼떨결에 올라 '선수발'로 기적의 성과를 이룬 행운아인지 몰라도 그 행운은 그 나름대로 그의 공으로 돌려줘야 할 것이다.
디 마테오의 뒤를 이은 라파는 리버풀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다. 예전의 라이벌 관계 때문에 첼시 팬들이 라파를 싫어하는 것만큼 리버풀 팬들도 라파가 하필 첼시로 간 것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리버풀 선수 중 최대의 아이콘인 케니 달글리쉬조차 프리미어 리그의 다른 팀들을 맡았다. 라파는 이미 예전에 스페인에서 여러 클럽을 맡았다. 그가 리버풀에서 긴 시간 동안 헌신했지만 이제 그는 경력의 새 장을 리버풀이 아닌 팀 첼시에서 쓰려고 한다. 리버풀 경기에서 상대방 감독으로 그를 마주하는 게 불편하겠지만 인간사의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에 대한 글을 쓰며 마음이 혼란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글이 더 이상 방향을 잃지 않도록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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