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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스포츠 과학의 역사: 리버풀의 사례

by wannabe풍류객 201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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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거창하게 뽑아봤지만 사실 조금 전 나온 리버풀 뉴스 하나를 적으려다 생각난 것들을 추적하다보니 범위가 넓어져서 그렇게 적었다. 무슨 소식인가 하면 리버풀이 브렌던 로저스 감독의 전 소속 클럽 스완지로부터 새로운 코치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이름은 라일랜드 모건스이며 리버풀에서 피트니스 코치에 해당하는 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핏 생각하면 로저스가 또 스완지에서 사람 한 명 빼왔구나 싶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로저스의 후임으로 스완지 감독이 된 라우드럽이 스페인에서 오스카 가르시아라는 피트니스 코치를 데려왔기 때문에 라일랜드가 밀려난 형국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라일랜드와 리버풀 사이에 교감이 생겨 지난 주에 스완지에서 떠났다. 그는 "다른 곳에서 일하기 위해" 스완지를 떠난다고 말했는데 그곳은 리버풀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주에는 리버풀에서 피트니스 코치라고 불러도 좋을, 컨디셔닝 담당이었던 대런 버지스가 클럽을 떠났다. 이미 버지스가 떠날 때 "로저스가 스완지에서 사람을 데려오길 원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지난 주에는 그게 라일랜드를 말하는 것인지 몰랐다. 버지스의 다른 말을 볼 때 로저스는 버지스에게 다른 역할을 부탁한 모양인데 버지스는 좌천으로 인식하고 호주로 돌아가는 걸 선택했다. 어쨌든 지난 주에 로저스는 라일랜드를 데려오기로 결정했고, 그로 인해 버지스는 리버풀을 떠났다.


버지스의 퇴장은 리버풀에서 한 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1960년대부터 시작해야겠다. 전 리버풀 감독 제라르 울리에는 요즘 팬들로부터 그의 후임인 라파 베니테스와 비교되며 다소 부족한 감독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그처럼 리버풀 감독에 적합한 사람도 드물었다. 라파의 리버풀 사랑은 그가 리버풀에 온 이후 그리고 그가 리버풀을 떠난 이후 이미지로서 팬들에게 각인되었지만 울리에는 이미 1960년대부터 종종 안필드에서 경기를 지켜볼 정도로 리버풀에 미쳐있었다. 나중에 감독 생활을 시작한 울리에는 맡은 팀을 계속해서 성공으로 이끌며 프랑스 대표팀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오른팔이 되고 이후 기술 이사로 오랫동안 일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울리에가 아르센 벵거보다 축구에서 선구적인 일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지금 잠시 검색한 바로는 리버풀에서 피트니스 코치가 존재한 건 라파 베니테스가 그의 넘버2 파코 아예스테란을 데려왔을 때부터로 보인다. 그러나 울리에가 피트니스 코치를 원치 않았던 게 아니라 그 자신이 오래 전부터 체력 훈련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있었고, 선수 개개인에게 특화된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울리에는 80년대부터 그랬고,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었다.


여기서 하나 더 등장할 인물은 마크 왈러다. 그는 2010년까지 17년 동안 리버풀의 팀 닥터로 일했으며 이는 그가 90년대 초반부터 리버풀에서 일했다는 의미다. 왈러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의료진일을 겸직하기도 했는데, 그가 있던 시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리버풀 의료진들은 팬들로부터 화타라는 칭송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리버풀 역사에서 다친 선수를 빨리 낫게 한 것보다는 심장 질환으로 죽을 뻔한 울리에 감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스포츠 과학의 역사는 짧지 않겠지만 잉글랜드 축구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역사는 길지 않아 보인다. 선수의 부상은 언제나 문제였으므로 팀 닥터가 존재한지는 오래 되었을 테지만 경기가 더 많아지고 격렬해지며 부상 선수 재활과 더불어 한 시즌 동안 선수들의 체력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내는 것이 점점 중요해졌다. 자연스럽게 FM에서 이제는 필수요소가 된 피트니스 코치가 등장했고, 클럽에 따라 컨디셔닝, 스포츠 과학, 스포츠 의학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직함들이 생겨났다. 


울리에에 이어 리버풀 감독이 된 라파 베니테스는 왈러를 팀 닥터로 계속 썼지만 수석코치 파코를 통해 리버풀에 피트니스 훈련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라파와 파코 사이에 어떤 이유에서건 불화가 생기고, 파코가 떠난 후 라파는 후임 피트니스 코치를 두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위기의 시기를 겪었던 2010년 초반 라파는 팀의 체력 관리, 의료 체계를 완전히 개편하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한 칼럼은 라파가 토레스의 부상의 책임을 왈러에게 떠넘겼다고 비난했는데 팀의 핵심인 토레스 부상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마크 왈러가 떠나야 했고 그 자리는 여전히 리버풀 팀 닥터이고 토트넘에서 온 파키스탄 출신 자프 이크발이 채웠다. 리고 피터 브루크너를 수장으로 하는 호주 출신의 스포츠 과학팀이 리버풀에 자리를 잡게 된다. 지난 주에 떠난 대런 버지스는 바로 이 때 브루크너 사단의 일원으로 리버풀에 온 것이었다.


브루크너 사단의 영입은 라파 감독, MD 퍼슬로우 체제의 결과물이었다. 이들은 2010년 3월에 리버풀에 오기로 결정되었으나 실제로 그들이 왔을 때 라파는 더 이상 리버풀 감독이 아니었다. 여전히 퍼슬로우가 실권을 가졌던 호지슨 감독 시절에 브루크너 사단은 큰 권력을 가졌지만 케니 달글리쉬가 감독이 된 이후 힘을 잃었다. 팀에서의 권력 관계를 떠나 브루크너가 온 이후 리버풀의 부상 선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구단주 헨리는 케니보다 먼저 축구 디렉터 코몰리와 함께 브루크너를 내쳤고 리버풀에서 스포츠 의학은 사라졌다. 


요즘 경기를 보면 경기장에 리버풀 선수가 쓰러져있을 때 팀 닥터 자크가 뛰어들어가는 걸 볼 수 있다. 예전에 리버풀에 새로운 선수가 올 때 메디컬 테스트를 하면 브루크너가 사진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자크가 등장한다. 브루크너와 같은 시기에 리버풀에 온 사람 중 자크는 자리를 보전하고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스포츠 과학 관련 인물들은 리버풀을 떠나야했다. 그리고 이제 로저스와 스완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라일랜드가 리버풀에 왔다. 라일랜드 모건스는 축구 과학 박사이기도 해서 운동생리학적인 리버풀의 스포츠 과학은 이제 그가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적으면서 현대의 복잡한 혹은 첨단을 달리는 스포츠 과학이 축구에 공헌하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스포츠 과학이라는 이름 없이 팀 닥터 마크 왈러만 있던 시절의 리버풀에 큰 문제가 있었나? 브루크너가 와서 부상이 적어졌다고는 해도 성적은 왜 더 안 좋았을까? 클럽이 체계를 갖추고 여러 전문가들이 정확한 역할 분담을 하며 운영되는 것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호주의 앞선 스포츠 과학이 잠시 머물다 떠난 리버풀의 미래의 모습은 축구 클럽에 대한 스포츠 과학의 기여를 가늠하는 작은 척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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