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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힐스보로 패널 보고서가 밝힌 참사의 원인과 은폐 작업들

by wannabe풍류객 201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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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문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수석 스포츠 리포터 폴 켈소가 이번에 발표된 힐스보로 독립 패널의 보고서 내용을 설명했다. 번역을 하고 나니 더 쉽게 사태를 설명한 다른 기사가 떠오른다.


어제의 많은 기사들이 가장 많이 강조한 건 41명의 생명이 살아날 수도 있었다는 대목이었다. 한 명도 죽지 말았어야했지만 사망자가 96명이 아니라 55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내용이 담긴 기사도 번역해봐야겠다. 



재앙의 씨앗


보고서는 레핑스 레인 테라스(*terrace:입석 형태의 관중석) 쪽으로 입장한 관중들의 안전이 "모든 수준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전 힐스보로에서 열린 준결승들에서 실수들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었음을 밝힌다. 


1981년 토트넘과 울브스 사이의 FA컵 준결승 때 같은 테라스에서 관중들이 심각하게 몰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사망자가 나올 뻔 했다. 그 사건 이후 셰필드 웬즈데이 클럽과 남 요크셔 경찰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그 클럽은 사건의 심각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찰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경기장이 스포츠 측면에서 최소한의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서포터들을 지정된 회전식 개찰구로부터 특정 펜(*pen: 관중석의 일부)으로 보내는 제안들이 실행되지 못했다. 웬즈데이에게는 비용을 한정시키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1987년 FA컵 준결승에서는 경기 시작이 지연되었고, 1988년 준결승 때는 사람들이 잔뜩 몰렸다. 



1989년의 그 '순간'


패널은 경기 관리에 경험이 많은 총경 브라이언 몰이 힐스보로의 치안 유지에 경험이 전무한 총경 데이빗 더큰필드로 교체된 어떤 합리적 이유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고위 경찰관의 브리핑은 잠재적인 관중 무질서, 음주, 티켓 없는 팬들 그리고 리버풀 서포터들을 다루기 어렵다는데 집중되었다. 경찰이 관중의 안전보다 통제를 우선시했다는 게 명백하다. 


레핑스 레인 쪽의 회전식 개찰구들이 경기 시작 전에 충분히 많은 팬들을 들여보낼 수 없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었지만 커져가는 위험은 무시되었다. 고위 경찰관의 결정은 형편없는 의사소통, 무전 체계의 오작동 그리고 경찰 통제 부스의 디자인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경정 로저 마샬이 경기장 밖의 치안을 책임졌다. 회전식 개찰구 쪽에 사람들의 몰림이 심해지면서 그는 출구를 열어 팬들을 입장시키고 관중들의 압력을 줄어들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총경 더큰필드가 개방을 허락했다. 통제 부스와 CCTV 모니터로 분명히 볼 수 있음에도 더큰필드도 그의 측근인 경험많은 총경 버나드 머리도 이미 팬으로 가득한 중앙 펜들에 대한 영향을 예상하지 못했다.


 '늦게' 도착한 팬들로 인해 경기장 밖 레핑스 레인 회전식 개찰구에 사람이 몰린 것이 아니었다. 개찰구들이 관중들을 안전하게 들여보내기에 부적절했고, 입장 속도는 경기장 밖에서 위험한 상황이 조성되는 걸 막기에 불충분했다. 



응급 상황 대처와 결과


구조와 회복 작업은 리더십과 조정 부족, 희생자와 장비 중 무엇을 우선시할지 등에 영향을 받았다. 경찰관들, 특히 고위 간부들은 관중들의 불만을 잠재적인 무질서로 해석했고, 관중들이 압사 직전이거나 다치거나 죽는다는 걸 눈치채는데 늦었다. 


경찰도 앰뷸런스 서비스도 중대 사건 절차를 완전히 실행시키지 않았다. 너무 늦어서야 그 자리에 있던 의료 팀들이 호출되었고, 거의 한 시간 동안 통제를 할 기회를 놓쳤고, 혼란 상황이 이어졌다. 재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잘못 알고 있고 충동적인 의사들의 시각으로서 비판을 표현하려는 앰뷸런스 서비스의 시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더 신속하고 더 적절하고 더 집중되고 적절히 장비를 갖춘 대응이 더 많은 생명을 구했을 수도 있었다. 



의학적 증거


죽은 이들 중 일부는 그들이 응급 구호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상당한 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 이후 혹은 정반대로 아마도 부적절한 자세 같이 새로운 사건 때문에 죽었다. 


이 공개된 증거에 기초해 삶과 죽음이 불가피하게 3시 15분 이전의 사태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거나 어떤 새로운 치명적 사건이 발생할 수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공개된 문서들은 검시관이 왜 모든 사망자들로부터 알콜 지수를 재기 위해 혈액 샘플을 추출하는 예외적인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알콜 지수가 0이 아닌 사람들을 경찰 전산망으로 조회해 사망자들의 명예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오후 3시 15분 컷오프


이것이 사별한 가족들을 가장 우려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로 남아있다. 검시관이 제시한 근거에 의하면 죽은 이 모두가 그 시간이면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당했다. 3시 15분이 선정된 건 그 때 앰뷸런스가 경기장에 도착했던, 논란의 여지 없고 기록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병리학자들의 의학적 소견도 검시관의 최종 진단을 지지했다. 


이 의견은 각 개인들이 죽었던 특정한 상황들-적절한 의료적 치료와 개입의 부재를 포함해-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검토와 진술 변경


남 요크셔 경찰관들의 진술서들은 처음에 '회상'에 의해 손으로 작성되었고, 남 요크셔 경찰의 법무관과 경찰관에 의해 '검토되고 변경'되었다. 이 관행은 앰뷸런스 서비스로도 확장되었다. 경찰관들은 고위 경찰관, 그들의 관리 혹은 결점들을 비판할 수 없었다. 164개 진술서 중 116개에서 남 요크셔 경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급들이 삭제되거나 변경되었다. 



헤드라인 뒤


1989년 4월 19일에 더 썬이 가장 유명하지만 수많은 신문들이 리버풀 팬들의 행동에 대해 심각한 혐의를 둔 기사들을 썼다. 이 이야기들의 기원은 셰필드 지방 뉴스 에이전스였고, 이들은 남 요크셔 경찰관들, 남 요크셔 경찰 연합 대변인 폴 미덥 그리고 지역 의원 어빈 패트닉의 정보를 받았다. 


더큰필드는 리버풀 팬들이 경기장에 침투했다고 고위 경찰관들에게 잘못된 말을 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방송되었고 최초의 설명이었다. 리버풀 팬들이 일부러 늦게, 다수가 티켓도 없이, 도착해서 아주 취했고 강제로 들어가려고 결심했다고 하는 더 심각한 주장도 등장했다. 


더 썬은 팬들이 죽어가는 팬들을 살리려는 경찰관에게 오줌을 누고, 죽은 사람들로부터 훔치고, 의식없는 어린 여성을 향해 성적 모독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신문에 실었다. 이 주장은 셰필드의 와이트 뉴스 에이전시에서 전송되었고, 세 명의 경찰관, 패트틱 그리고 미덥과의 면담에 기초했다. 


더 썬의 이야기가 나온 그 아침의 남 요크셔 경찰 연합의 한 모임에서 미덥은 경찰서장 피터 라이트가 그에게 경찰을 수호하기 위한 '자유로운 권한'을 주었다고 말했다. 라이트는 나중에 모임에 합류해서 "우리는 뜨거운 동안 그걸 잡아야 해" 그리고 이어질 조사를 대비해 "아주 견실한 이야기를 마련"하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의 잘못인지 물어야한다면 그것은 술취한 티켓없는 개인들이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teams/liverpool/9539936/Hillsborough-report-reveals-the-catalogue-of-errors-that-led-to-disaster-and-attempts-at-a-cover-u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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