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리버풀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가 새 책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잉글랜드 신문 타임스의 기자인 로리 스미스가 대필한 책이긴 하다. 많은 내용이 담겨있겠지만 일부 내용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아래는 대필을 한 로리 스미스가 타임스에 공개한 책 내용이다.
Rafa Benitez: The Kingmaker
지금 리버풀에서 일들이 잘 안 풀리고 있는 것 같나? 3년 전에는 상황이 조금 더 안 좋았다. 클럽은 궁핍에 시달렸고, 감독과 이사회의 관계는 완전이 붕괴되었고 안필드는 미국인 구단주를 향한 공개적 항거 상태였다.
리버풀은 당시 UEFA의 계산에 의해 유럽 최고의 팀이기도 했다. 이전 5년간 라파엘 베니테스의 팀은 산 시로, 누 캄프 그리고 베르나베우에서 승리하며 대륙의 가장 위대한 경기장들을 하나하나 정복했다. 그들은 유럽의 모든 최강팀들의 안필드 방문을 환영했고 각 팀을 물리쳤다. 그들은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 번 우승하고,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다.
목요일에 발간되는 그의 첫 회고록 "챔피언스 리그 드림스"에서 이 스페인 사람은 그가 그의 어려움에 빠진 팀을 유럽의 왕좌로 이끈 그 승리들을 지휘하는데 도움이 된 핵심적인 요인들에 대한 안목을 제공한다.
연구
멜우드 내 사무실의 오른쪽 벽에 몇 미터에 걸쳐 DVD 선반들이 늘어서 있었다. 수백 시간의 영상이, 모두 단정하게 범주화되고, 조직되고, 번호가 붙어 내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면 내가 원할 때마다 빠르고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내 코칭 스태프를 별개로 하면 이것이 내가 리버풀의 선수들을 시즌 동안 준비시키려고 할 때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었다. 내가 감독일 때의 모든 경기들과 훈련 시간의 기록일 뿐 아니라 하나의 전 세계 축구의 폭넓은 도서관이었다.
DVD 몇 개는 내가 레알 마드리드의 까스띠야에서 유스 코치로 있던 시절의 경기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몇 개는 테네리페와 에스트레마두라의 경기를 담고 있고, 나는 나의 발렌시아 시절의 경기영상 전부도 갖고 있다. 상대팀에 대한 것은 물론 우리가 상대할 선수들 그리고 우리가 영입하고 싶은 선수들에 대해 모아 놓은 많은 기록들이 있었다. 그리고 단지 스페인과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 전반, 남미, 아프리카의 것까지 지구 곳곳의 리그 경기들을 담은 디스크들이 있었다.
경기의 특정 측면을 보여주기 위해 특정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DVD들도 있다. 예를 들어 캐러거를 위해 발렌시아에서 내 팀이 어떻게 수비했는지에 대한 것들이 준비되었다. 우리는 선수들에게 다른 팀들의 특정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가 어떻게 경기를 하고 싶은지, 우리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길 바라는지 예를 들기 위해 보여주곤 했다. 몇 년이 지나 코칭 스태프가 도입한 생각들이 녹아들고 우리가 개선되면서 우리가 사용한 영상들 중 많은 비율이 다른 팀의 것이 아니라 리버풀의 것이 되었다. 그들이 더 낫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선수들은 더 많은 자신감과 동기 그리고 더 분명한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생각을 얻었다.
훈련
우리의 한 시즌 동안의 훈련 계획은 일주일 혹은 15일의 작은 사이클로 나뉘어지며 각 사이클에 특정한 목표를 갖고 있다. 이는 시즌의 어느 시점인가에 달려 있는데 초반이라면 우리는 스태미너를 올리는 걸 목표로 하고, 후반이면 회복 혹은 점유율 유지 혹은 역습을 다듬거나 우리의 경기 패턴을 연마하는 등 경기의 기술적 측면을 강조할 것이다. 때로 우리는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선수들에게 제시하는 시간을 계획하고, 때로는 이미 해봤던 걸 더 완벽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전형적인 훈련 시간은 네다섯 개의 다른 훈련들이 포함되어, 각각은 15분 정도 걸린다. 예를 들어 우리가 피니싱을 개선하기 위해 계획한 아침을 보자. 우리는 2:2처럼 소수로 이루어진 팀들이 가운데 있는 선수들이 공을 뺏지 못하게 만드는 점유율 경기로 시작하곤 했다. 이후 우리는 두 선수가 수비수 한 명을 상대로 작은 골에서 하는 슈팅 훈련으로 넘어갔다. 이후 더 확장된 버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3:3으로 시작해서 5:5로 끝나는. 이는 원 터치일 수도 투 터치일 수도 혹은 우리가 드리블 기술을 높일 것을 장려할 경우 자유롭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
그 경기들은 단지 재미를 느끼기 위한 기회는 아니다. 종종 우리는 그 팀들에 시나리오를 정해주었다. 한 팀은 5분 남긴 상황에서 한 골을 앞섰다거나 양 팀 선수들이 오직 원 터치로만 득점해야한다는 것처럼. 우리가 경기장 전체를 쓰는 10:10의 시간을 마치면 상황은 더 구체적으로 설정될 수 있다. 이것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고 한 팀이 1:0으로 앞서고 있고 10분이 남았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할 때 가능한 많은 선수들이 참여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 시간의 대부분은 16, 18 혹은 20명의 선수들이 한 번 참여하고 다른 선수를 위해 자리를 내주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나중에 다시 훈련하게 계획되어 있다. 많은 선수들이 서서 지켜보도록 만드는 건 이상적이지 않다. 즐기면서 배우고 연습하고 경기하는 게 그들에게 최선이다.
전술
2005년 유벤투스 원정 경기에서 우리 계획의 중심은 사비 알론소였다. 그는 1월 1일 이후 뛰지 않았고, 발목 부상에서 회복하는데 힘겨운 석 달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토리노에서 필요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레버쿠젠을 상대했던 이전 라운드를 통과하자마자 이 경기에 그가 복귀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는 천천히, 꾸준히 회복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경기 체력이 부족하고,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부상에 취약할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를 보호할 시스템이 필요했다.
우리의 통상적인 4-2-3-1 포메이션 대신 나는 캐라, 히피아 그리고 트라오레의 세 명의 중앙 수비수에 스티브 피넌과 욘 아르너 리세를 윙백으로 기용하는 전술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중앙에서 비슈칸과 누녜스가 거의 보디가드처럼 행동하는 가운데 알론소가 깊은 위치에서 아직은 제 상태가 아니지만 뛰도록 했다.
우리가 그렇게 깊숙히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했다. 무실점으로 우리의 총합 2-1의 우세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그날 같은 밤이라도 나는 절대 우리 팀이 박스 바로 앞까지 물러서서 수비적으로 경기하는 걸 장려하지 않았다. 만약 깊이 물러서면 실수를 하게 된다. 내 생각은 언제나, 언제나 올라가서 공을 가능한 우리 골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생각이었지만 우리는 하나의 트릭을 더 비밀스럽게 갖고 있었다. 팀이 우리의 특별히 고안된 포메이션으로 나오도록 지시하는 대신 나는 첫 2분 동안은 파비오 카펠로를 비롯해 여타 유벤투스 코칭 스태프가 에상하고 있을 4-2-3-1로 뛰라고 말했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에야 우리는 유기적으로 3-5-1-1로 변화했다. 이는 감독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트릭이다. 종종 상대팀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식으로 나오면 그들은 우리를 무력화하기 위해 그들의 시스템을 바꾸면서 대응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접근방식을 바꾸는 게 감독의 일이다. 몇 분 후에 바꾸면 더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때로 상대팀은 하나도 안 바꾸기도 한다.
상대방 파악
2007년에 바르셀로나와 경기할 때 리오넬 메시를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호나우딩요에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걱정했다. 이 브라질 선수는 명목상으로 왼쪽 윙에서 뛰었지만 안으로 파고들어 라인 사이의 공간을 차지했다.
그러면 우리 라이트백인 스티브 피넌에게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호나우딩요를 추적하면 바르셀로나의 레프트백 지안루카 잠브로타가 공략하여 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었다. 그렇지만 바르셀로나 10번 선수의 위협이 더 중요했다. 나는 피넌에게 그를 따라다니고 밀어붙여서 수비를 갈라놓을 수 있는 침투 패스를 할 틈을 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반대편에서 우리는 1월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막 이적한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메시를 상대하게 했다. 그것은 아르벨로아의 리버풀 첫 경기가 될 예정이었다. 그의 상대가 단지 십대 선수였고 아직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얘기될 때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세계 축구에서 가장 겁나는 데뷔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르벨로아는 겁먹는 종류의 선수는 아니고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또 감독은 그냥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걸 선수에게 한 시간여 동안 말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에서 그리고 멜우드로 돌아와서 우리는 아르벨로아에게서 기대하는 바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속 작업했다.
원칙은 비교적 단순했다. 메시는 오른쪽 측면에서 뛰면서 그의 왼발로 안으로 파고 들어오길 좋아했다. 주로 오른발을 쓰는 아르벨로아를 레프트백으로 쓰면서 우리는 메시가 위협적으로 뛰는 걸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아르벨로아는 메시가 숨쉴 여지가 없도록 그에게 가까이 붙어야만 했다. 메시가 돌아설 시간을 갖게 되면 그는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우리는 항상 그를 억눌러야 했다.
우리는 경기 전 며칠 동안 우리의 새로운, 포지션 변경한 레프트 백을 조련했다. 우리는 그가 메시의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그를 위해 DVD를 준비했다. 훈련에서 우리는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할 일에 익숙해지도록 왼발을 쓰는 선수를 상대로 레프트백에서 뛰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공을 점유했을 때 나머지 팀이, 특히 우리 수비수들이, 아르벨로아를 너무 많이 이용하지 않게 준비했다. 오른발을 쓰는 풀백을 레프트백에 쓸 때는 그가 공을 다루기 위해 몸을 돌려야 해서 그의 옵션이 줄어들고 역습을 느리게 만들 위험이 있다.
팀 빌딩(team-building)의 위험
스탠드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그의 손을 들어 머리에 대며 얼굴에 공포를 드러냈다. 그의 아래에서 덕 카이트가 숨을 죽이며 그의 발에 걸려 넘어지려고 했다. 피터 크라우치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멈출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2007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일주일 전이었고 우리의 중앙 공격수는 그의 공격 파트너를 밟고 뛰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AC 밀란과 우리의 재경기를 앞두고 며칠 동안 스페인 남부에 있는 무르시아 근처의 호텔이자 리조트 라 망가로 이동하도록 조언을 받았다. 우리는 하루에 두 번 훈련하며 선수단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려고 신경썼다. 그러나 우리는 선수들을 지루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걸 알았고 그래서 그들이 어느 날 오후에 호텔 근처의 트랙에서 카트를 타면서 보내는데 동의했다.
그들이 시속 30마일의 속도로 카트 레이스를 할 때 크라우치는 갑자기 그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카이트와 함께 트랙 옆의 종이 박스들 더미 옆에 서 있었다. 정상적으로 멈추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크라우치는 박스들에 충돌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카이트를 향해 곧장 질주했고, 카이트는 아주 마지막 순간에 뛰어서 비켜섰다. 크라우치는 박스들을 강타하고 다른 편으로 가서는 계속 트랙을 돌며 직선 코스를 기다리다가 카트에서 뛰어나왔고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그의 키와 카트의 작은 크기를 감안할 때 그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일이 잘못되기 이전부터 그의 무릎은 카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카이트는 먼지 투성이가 되었고 확인 결과 괜찮았다.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은 제라드는 축구에서 가장 예방가능할 부상-카트를 타다가 그들 경력에서 가장 중한 경기를 못 뛰는-들 중 하나로부터 우리의 공격수들 중 하나를 잃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긴장하며 기다렸다. 다행히도 크라우치는 다소 부끄러워하며 나타났지만 몸에 이상은 없었고 카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떻게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했는지
나는 우리가 협상을 가능한 빨리 마쳐야 한다는 걸 알아서 릭 패리와 함께 아틀레티코와 공식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비행기로 떠났다. 일은 합리적으로 잘 진행되었지만 하루가 지나도 우리는 협상 조건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릭은 포기하고 그날 밤 비행기로 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그를 하루만 더 머무르게 설득했다. "우리가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영원히 놓칠지 몰라요,"라고 내가 말했다.
다음 저녁에 우리가 리버풀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이적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걸 서명하고 완료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다른 팀이 우리의 관심을 알아채고 우리보다 더 나은 제안을 하려고 노력하는 걸 원치 않았다. 나는 페르난도, 그의 에이전트들 그리고 그의 여자친고 올라야가 잉글랜드로 날아오도록 조치했다. 우리는 거기서 협상을 계속하려고 했다.
다음날 밤 그 일행은 존 레논 공항에서 픽업되어 도시의 지하주차장을 완비한 아름다운 해변 아파트로 잽싸게 이동했다. 아무도 페르난도가 리버풀에 있는 걸 몰랐다. 우리는 그 뉴스가 새나가도록 만들 수 없었다. 클럽에 네다섯 명만이 그리고 그의 친한 친구들과 아틀레티코의 디렉터들만이 협상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알았다.
날씨는 적어도 그 주에는 아주 좋았다. 리버풀은 특히 햇빛 속에서 훌륭한 도시다. 그들의 고급 아파트에서 페르난도와 올라야는 머시 강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걸친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그걸 즐길 충분할 시간을 가질 터였다. 이틀 동안 그들은 아파트를 떠나는 게 금지되었다. 그들의 에이전트들은 우리와 계약 논의를 하기 위해 떠날 수 있었고, 진행 상황은 전화를 통해 페르난도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할 일이 많았다. 도시에서 그의 음식을 조달하는 것은 물론 우리는 리버풀의 위대한 선수들과 최고의 순간들, 클럽의 역사 서술, 클럽의 성취의 이미지가 담긴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DVD들을 보냈다.
48시간 동안 우리는 그를 리버풀의 이야기들의 홍수에 빠뜨렸다. 그리고 항상 나는 그에게 전화로 내가 팀이 어떻게 경기하길 바라는지, 내가 그에게 어떤 역할을 원하는지, 어떻게 그가 우리가 트로피와 우승을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말했다.
결국 협상은 마무리 되었다. 페르난도는 리버풀 선수였다.
© Rafa Benítez 2012
Extracted from Champions League Dreams by Rafa Benítez with Rory Smith, published by Headline Books
http://forums.liverpoolfc.com/threads/318650-Extract-from-Rafa-Benitez-new-book-in-Th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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