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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구단주 지지 확보에 실패한 케니 달글리쉬

by wannabe풍류객 201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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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달글리쉬가 예정에 없이 갑자기 보스턴에 날아간 것은 뜻밖의 사건이었다. 원래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미국인 구단주들이 영국으로 이동해서 며칠 전에 끝난 2011-12 시즌 리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케니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코치인 스티브 클락을 대동하고 미국에 갔다왔다. 


이 소식이 처음 전해진 이후 이번 대화를 통해 케니 달글리쉬의 운명이 결정될 것 같다는 보도들이 일제히 나왔다. 그러나 어제 영국에 돌아온 케니는 해고되지도, 사임하지도 않았지만 다음 시즌 리버풀 감독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휴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미국에 있는 구단주들은 케니를 불신하고 있지만 케니는 스스로 물러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예전부터 케니가 클럽 내에서 다른 역할을 맡게 되는 방안이 추측으로 떠돌았는데 어제 기사들에는 실제 이번 만남에서 구단주들이 그런 제안을 했고 케니가 즉각 거절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렇게 까다로운 상황이 벌어진 것은 케니가 주장하듯 이번 시즌 컵대회에서 성적이 괜찮았던, 즉 6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챙겼다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케니 그 자신이 클럽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케니가 정식 감독이 되기 전부터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케니가 부진한 성적을 거둘 경우 다른 감독들처럼 쉽게 해고할 수 있나라는 그 의문.


현재 한국에 있는 리버풀 팬들, 특히 젊은 팬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국 리버풀에 있는 팬들은 케니에 대한 FSG의 처사에 상당히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이번 시즌 리그 성적이 좋지 않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구단주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케니를 이렇게 굴욕적인 입장으로 만든 것에 불만을 품는 것이다. 


리버풀 오피셜 사이트에도 글이 종종 소개되는 크리스찬 왈쉬는 클럽의 주인은 구단주도 선수도 감독도 아닌 팬들이라고 트윗한 적이 있다. 모두 언젠가 바뀌지만 유일하게 팬들은 리버풀에 대대로 살면서 클럽을 응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리버풀이라는 클럽은 단지 언젠가 떠날 FSG 소유의 프리미어 리그 8위 팀이 아니라 수십 년전 샹클리가 재건하고 잉글랜드와 유럽을 제패한 후 최근 20년 정도 부진했던 안타까움과 연민의 대상일 것이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리버풀의 최고의 시절을 상징하는 케니 달글리쉬의 실패는 인정하기 어렵고, 그가 팬이 아닌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참기 힘들 것이다.


리버풀 현지 팬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확실히 한국에 있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정서적인 면이 자리잡고 있다. 그걸 무조건 어리석다거나 편협하다고 할 수는 없다. 힐스보로를 단지 글과 사진으로 이해하는 우리에게는 최근 공개된 워리어의 새 리버풀 셔츠를 둘러싼 힐스보로 희생자 가족의 분노도 과장된 행동으로 보일지 모른다. 


리버풀(팬)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다시 리그의 왕좌를 찾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길고도 험할 수밖에 없고, 지금 FSG가 리버풀을 인수한 것도 결국 새 경기장 건설이라는 지난한 숙제를 풀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힉스와 질렛을 대신한 FSG가 새 경기장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이제 케니에 대한 홀대와 더불어 FSG마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팬으로서 수십 년의 긴 세월을 거쳐 쌓은 헌신의 감정과 현재 리버풀의 열악한 상황 사이의 간극은 크다. 팬들로서는 감정적으로 미국 자본을 상징하는 FSG보다 한 시즌 부진한 성적을 거뒀지만 케니 달글리쉬를 더 지지하고 싶어질 수 있다. 문제는 케니가 더욱 실패할 경우 입을 마음의 상처는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케니가 바라는 것처럼 몇 가지 부분만 고쳐지면 리버풀은 다음 시즌에 4위권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수단 보강을 위해 자신들의 지갑을 뒤져야할 구단주들은 케니에게 영입을 맡기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 의심하고 있고, 그 의심이 막 끝난 2011-12 시즌의 비싼 실패로 정당화가 되는 이상 FSG와 케니가 공존하기는 힘들다. 


리버풀이 로만의 첼시나 만수르의 맨시티처럼 천문학적 돈으로 리그 우승을 살 능력은 없는 이상 현명하게 감독과 선수를 영입하는 길을 택해야만 한다. 호지슨을 해임하고 케니를 데려온 것은 반 시즌, 길게 보아 일 년 정도 효력이 있는 것 같았지만 해답이 아님이 드러났다. 구단주들은 며칠 내로 케니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지 아니면 여기서 인연의 끈을 끊을지 결정할 것이다. 여전히 코몰리의 대체자가 없다는 상황이 케니의 해고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변화가 생길 것이다. 


케니가 계속 저항한다면(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팬들이 FSG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FSG는 냉정하게 결정할 텐데 다만 문제는 그들이 적절한 후임 감독을 찾아내서 데려올 수 있는가이다. 현재 위건 감독인 마르티네스가 1순위로 거론되고 있고, 최근 보도에서는 이외에도 빌라스 보아스를 비롯하여 클롭, 스트라이치, 파부르 등 분데스리가의 감독들의 이름이 제시되었다. 역시 디렉터+감독 체제에 적합한 후보군이다. 하지만 재작년에 데샹이 리버풀에 오기를 망설인 것처럼 첼시도 거절한 클롭은 지금 리버풀에 오길 꺼릴 것이다.


베팅 사이트에서는 케니의 후임으로 현재 수석코치 격인 스티브 클락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케니가 구단주들과 만난 후 곧바로 영국에 돌아온 것과 달리 클락은 미국에서 휴가를 보내기 시작했고, 헨리, 워너와 보스턴 레드 삭스의 야구 경기를 함께 구경하기도 했다. 클락이 케니의 후임이 되는 포석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공개적인 움직임인데 케니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클락이 미국에 남아 구단주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있을지, 얼마나 잘 설득할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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