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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다 산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표현해서 원래 그렇게 어두운 사람인 것처럼 엄청난 연기를 펼친 루크 윌슨. 그러나 이 영화는 대체로 거북했다.
중학교 때 과학(물상이던가?) 선생이 집옆의 나무라도 믿어야 한다고 했고, 우리 과 교수님들은 늘그막에 다들 종교를 갖게 되셨단다. 아무 거나 좋으니 믿어보란다.
도대체 누가 신을 봤길래 기독교의 신은 항상 인간의 얼굴을 한단 말인가. 우연히 나타나는 얼굴 모양의 무늬만 보면 신이 나타났다고 열광하는 사람들. 베끼고 베낀 성화 속의 예수가 진짜 예수인 줄로 믿는 사람들.
영화 해설은 일상의 작은 기적에 감사하란다. 말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녹음하던 옆집 꼬마애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하고,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던 점원은 안경을 벗고 기적을 연호한다. 촘스키를 언급하며 어떤 일들은 설명할 수 없고, 그냥 일어난다고 한다. 엄밀히 말해 꼬마애나 점원은 벽에 있는 흔적을 마주한 후 기적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열렬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완전한 종교 영화와 선을 그엇는지 모른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이 벽을 도끼로 부숴버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비난한 후 졸도하는데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한 결과자신이 걸렸다고 알고 있는 죽을 병이 없어졌다(or 사라졌다고)는 말을 들은 것이다. 끝까지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기적이 펼쳐지는 벽을 죽을 장소로 삼아 별 생각없이 소유한 주인공은 당연히 제일 먼저 은총을 받았다고 하겠다. 그가 낫지 않으면 누가 나으랴.
그가 처음 죽을 병을 진단받은 병원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주사도 제대로 놓지 못해 연방 잘못 찔러대는 간호사가 당연한 듯 웃어넘기는 의사의 진단이 정확했을까? 주인공은 없는 병을 있다고 생각하며 죽을 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저냥 독한 술을 퍼마시다 알콜 중독으로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집이 무너져서 병원에 입원하고 당장 죽을 병이 없음을 알게 되었으니 어쨌거나 기적은 기적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삶의 즐거움을 되찾은 주인공이 진짜 죽을 병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거짓말을 했는지. 아니면 병원에서 희귀한 병이라 알아채지 못했는지. 미국 의료 체계에 대한 모독이려나?
영화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자기의 사진 밑에 "HENRY POOLE WAS HERE"라고 썼다가 막판에 WAS를 지우고 "IS"로 바꾼 장면은 인상적이다.
"I'm not gonna die?" 라는 질문에 "사람은 누구나 죽어. 하지만 당신이 곧 죽지는 않는대"라는 대응. 일상의 격언이자 나에겐 아픈 말이기도 하다. 난 분명 죽는데, 당장은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럴 때(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보통은 그냥 산다. 극단적으로 내일도 난 살아있을 것이라고 살다보면 주변에 큰 폐를 끼치는 등 무리하는 수가 있고, 반대 극단으로 가면 주인공처럼 안 죽을 사람도 곧 죽을 사람으로 변한다.
결론은 순리대로.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결국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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