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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케니 달글리쉬가 임시직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리버풀의 정식 감독이 되었다. 몇 달 전의 보도에서는 구단주 FSG 측에서 2년 계약만 허락할 것이라고 하였으나 3년 계약이라고 발표되었다.
작년 말부터 로이 호지슨이 해임되기 전까지 케니 달글리쉬가 후임으로 거론될 때 많은 우려를 한 바 있지만 케니는 내 걱정이 지나쳤음을 입증했다. 요즘 기사에 많이 나오는 통계 수치지만 케니가 온 이후 성적만 따지만 리버풀이 2위에 해당하는 승점을 얻고 있고, 최근 리그 몇 경기는 대량 득점이 쏟아지고 있어 케니의 80년대 축구가 되살아났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케니 달글리쉬가 '이제서야' 정식 감독직을 부여받았다는 점이다. 호지슨 대신 케니를 임명할 때 구단주들은 다른 대안, 더 젊으면서 디렉터인 코몰리와 협력이 잘 될 감독을 선호했다. 구단주의 원래 플랜에서 케니는 이번 여름에 조용히 물러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케니가 감독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몰리가 케니도 정식 감독 후보로 고려되고 있다고 밝히며 다른 가능성을 암시했다. 처음부터 호지슨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목격하며 구단주들이 쉽사리 케니 카드를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케니가 정식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점이다. 리버풀의 부활이 케니 혼자의 힘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제 케니와 함께 3년 계약을 맺은 스티브 클락의 공로는 꾸준히 인정되어왔다. 의외로 팀의 최고 선수라고 여겨졌던 토레스를 내보내고 대신 수아레스와 캐롤을 영입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음이 증명되기도 했다.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질 때 의외로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스피어링, 로빈슨, 플래너건의 활약은 그 선수들을 믿은 케니의 공로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리버풀은 경기장 안팎에서 활기넘치는 팀으로 되살아났다.
임시 감독 중에는 처음부터 시즌 말과 같이 일정 시기까지만 맡기로 하고 정식 감독 부임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주 훌륭하게 팀을 이끌 경우 정식 감독이 되기도 하는데 흔한 일은 아니다. 케니는 정식 감독이 되기를 원한다고 처음부터 말했고, 다만 결정은 구단주의 몫이니 지켜보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이전 구단주 체제의 지난 여름부터 리버풀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 면에서 FSG는 케니의 욕망을 알고 있었음에도 또 많은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7개월이 지나 리버풀이 자력으로 내년 유럽 대회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확정된 다음에 정식 감독 임명을 발표할 정도로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
구단주들이 왜 이제서야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느냐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리버풀에 대한 자신들의 장기 투자 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짧았던 인수 협상 기간을 감안할 때 축구계에 대한 지식이 없던 FSG가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에 기반한 MLB의 머니볼과 유사한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점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팀 승리에 유의미한 통계수치에 기반한 선수 발굴과 재판매시의 몸값을 감안한 영입 정책 등으로 요약되는 이 전략에서는 감독보다 단장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FSG 시대에 가장 먼저 영입된 인물이 바로 현재 축구 디렉터인 데미앙 코몰리다. 그런 면에서 호지슨의 후임으로 젊은 감독의 영입이 예상되었다. 60대로 접어들었고 선수 영입에서 단장보다 큰 결정권을 주장하는 케니 달글리쉬는 전혀 그런 감독이 아니다. 그러므로 케니를 선택하며 FSG는 장기 전략에 일정 부분 수정을 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단주가 단장 중심의 시스템을 기획하면서 그냥 매니저도 아닌 왕(king) 매니저가 공존하게 한 것은 현명한 일일까? 아직 코몰리와 케니 사이의 불협화음이 있다는 신호는 없다. 아마 그동안은 리버풀 권력에서 구단주에 의해 확실한 권한을 부여받은 코몰리가 케니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귀환한 킹은 리버풀의 적자라는 정통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코몰리보다 케니의 발언권이 강해진다면 코몰리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케니의 계약 기간에 대해 생각해봐야한다. 그동안 언론 보도를 보면 케니는 4년 계약을 원했고, 구단주들은 2년만 허락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과물은 중간인 3년이다. 이미 일부 보도 중에는 2+1 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2년이건 3년이건 신임 감독의 임기로는 짧은 편이다. 구단주 교체기라 처음부터 단기 계약이 예상된 로이 호지슨도 리버풀과 3년 계약을 맺었다. 즉, FSG는 케니에게 단기 계약을 허락했고, 자신들의 장기 플랜의 본격적 전개를 위한 초석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면서 케니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자신들의 스포츠 구단 운영 철학에 맞는 틀을 만들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단장-왕 감독 딜레마는 장기적인 우려의 대상은 아니다.
킹 케니, 현실적 의미에서 그는 리버풀 왕국의 왕이 아니다. 그는 케니 달글리쉬라는 왕국의 왕이다. 왜냐하면 현재 리버풀의 진정한 제왕은 존 헨리이고, 케니는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리버풀의 일시적인 대표자가 된 것 뿐이다. 이 근본적인 권력 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하나의 클럽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가 팬들임에 분명하고, 팬들의 가슴 속에 케니가 영원히 킹으로 남을지라도 리버풀이라는 구경거리를 마련하는 주인이 미국의 상업자본으로 바뀐 이상 우리는 그들의 놀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의 하찮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년 전의 케니가 명예가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높아지며 멋지게 부활한 것은 축하할 일이다. 다만 벌써 우리가 리그 우승을 되찾은 양 환호하진 말자. 리버풀은 2년 전에는 치욕으로 느껴졌을 리그 5위의 팀일 뿐이다. 미래가 얼마나 밝은가? 긴 안목으로 지켜볼 일이다. 리버풀의 부활이 다른 탑 클럽들의 자동적인 하락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라파 베니테스가 정확히 관찰했듯이 갈수록 리버풀의 경쟁력은 계속해서 뒤쳐져왔다. 만회하기가 쉽다고 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다만 케니가 임기 내에 퍼거슨의 맨유를 물리치고 우승하는 최고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상상을 하는 건 즐겁다. 그렇게 상상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팬이 되기 어렵다. 현실이 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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