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리버풀이 토트넘에 패하며 시즌을 6위로 마칠 가능성이 커졌던 어젯밤 안필드에는 일군의 맨유 팬들이 잠입했다. 그들은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맨유의 19번째 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배너를 내걸었다.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경기 전에 잠깐 동안만 걸렸다고 한다. 계속 그랬다가는 알아챈 리버풀 팬들로부터 상당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위협을 예상하고 도망가기 위해 경기장 밖에 차를 대기시켜두었고, 반대편 스탠드에서 동료가 증거 사진을 찍자 경기장을 떠났다고 한다.
케니 달글리쉬가 마침내 정식 감독이 되는 계약을 맺은 이후 첫번째 경기이자, 구단주 존 헨리가 참관한 가운데 최근 경기들에서의 대량 득점의 분위기를 몰아 리그 5위를 굳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토트넘과의 경기가 완패로 끝난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소 무모한 맨유 팬들의 용기는 긴 역사적 과정의 결과였다.
70, 80년대 잉글랜드 최고의 팀이었던 리버풀은 1990년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대신 퍼거슨의 맨유, 벵거의 아스날, 아브라모비치 소유의 첼시 등이 리그 우승을 나눠가졌다. 그러나 잉글랜드 리그 최다인 리버풀의 18번 우승 기록이 쉽게 깨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퍼거슨의 맨유 초창기인 1994년 리버풀 팬들은 안필드에서 아래와 같은 배너를 통해 맨유의 갈 길이 멀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한 번 추락한 리버풀은 일어서지 못했고 그 사이 퍼거슨은 우승 기록을 하나씩 늘려갔다. 그러면서 드디어 맨유가 18번째 리그 우승을 기록하자 맨유 팬들은 94년의 리버풀 팬들의 요구에 정당하게 응했다. 아래 사진처럼.
자부심을 부각시킨다기엔 그다지 잘 만든 배너는 아니지만 확실한 응답이긴 하다. 맨유는 리버풀과 역대 최다 우승 기록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리버풀의 기록을 마침내 넘어섰다. 90년대 젊었던 퍼거슨이 리버풀을 횃대(perch)에서 떨어뜨리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던 목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얼마전 퍼거슨은 스스로도 리버풀의 기록을 자신이 넘어설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동안 리그 우승 횟수는 유치한 최강팀 논란을 유발하곤 했다. 리버풀은 잉글랜드 최다 우승팀임을 계속 강조했고,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 이래 최고의 팀이라고 대응했다. 리버풀은 20년이 넘는 무관의 세월을 과거의 영광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맨유가 리버풀의 가장 큰 자존심을 빼앗아갔다. 물론 리버풀은 유럽 챔피언스 리그 5회 우승이라는 기록에서 맨유에 앞서있지만 잉글랜드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내주게 되었다. 퍼거슨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 기록마저 리버풀을 넘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이 늙은 감독의 꾸준한 추진력은 리버풀의 모든 것을 넘어서는데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동안 리버풀의 잉글랜드 최다 우승 기록은 너무나 독보적이었기에 큰 짐이기도 했다. 90년대 달글리쉬의 후임 감독이었던 수네스, 에반스, 울리에는 모두 과거 영광의 무게를 느끼며 현실의 초라함에 괴로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지적처럼 맨유의 19번째 우승으로 리버풀은 드디어 짐을 내려놓았는지 모른다. 도전자가 된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라이벌이 세운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투지를 불사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퍼거슨은 잉글랜드 최고 기록을 방어하는 입장에서 도전자들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또 리버풀이 케니 달글리쉬라는 레전드가 떠난 이후 몰락했던 것처럼 머지 않아 퍼거슨이 떠난 맨유가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라이버버드가 퍼거슨의 맨유로 인해 횃대에서 잠깐 내려왔는지 몰라도 새는 날개가 있는 이상 금세 날아오를 수 있다. 더구나 횃대는 새를 위한 자리지 빨간 악마의 것이 아니다. 잉글랜드 리그가 지속되는 이상 맨유가 우승 횟수를 추가하더라도 최다 우승 기록은 깨질 수 있다. 누군가의 기록이 있기에 도전하고 넘어서는 재미가 생긴다. 앞으로 리버풀이 다시 맨유를 넘어선다면 리버풀의 팬들은 멋진 배너로 복수할 것다. 어제 맨유 팬들이 소심하게 작은 배너를 잠깐 내걸고 도망가는 건 그다지 명예롭지 못하다. 정말 자랑스럽다면 당당하게 해야한다.
반응형
'리버풀 & 축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텔레그라프에서 알아낸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전술 (0) | 2011.05.27 |
---|---|
캐롤, 프리들, 긱스 (4) | 2011.05.24 |
리버풀의 정식 감독이 된 케니 달글리쉬. 그는 구단주에게 어떤 카드인가. (19) | 2011.05.13 |
39번째 경기, 아퀼라니, 앤디 캐롤 그리고 애슐리 영 (2) | 2011.05.07 |
[히피아 은퇴 선언] 숫자로 보는 사미 히피아의 리버풀 경력 (0) | 2011.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