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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이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NESV로 매각된 이후 전 구단주인 힉스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텍사스 법원의 매각 금지 명령을 얻어낸 탄원서에서도 사기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는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는 '자산' 리버풀을 300m 파운드라는 헐값에 팔아넘긴 것은 RBS와 리버풀의 영국인 이사들 그리고 NESV의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젯밤 에버튼과 리버풀의 경기를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애당초 그는 리버풀 경기를 보기는 했을까? 축구를 알기는 할까? 지난 밤의 처참한 경기력이 상당 부분 자신이 초래한 혼란에서 기인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말하기가 아주 고통스럽지만 현재 리버풀은 리그 19위 팀이다. 최하위권이라는 순위에 상관없이 리버풀의 가치는 항상 600m 파운드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힉스의 판단은 이성적일까? 리버풀을 인수한 존 헨리는 300m 파운드조차 적지 않은 액수라고 생각한다. 말뿐이었을지 모르지만 8월에 케니 황 컨소시엄의 인수설이 나왔을 때는 인수 금액으로 350m 파운드 가량이 거론되었다. 새 시즌 시작 후 리버풀의 가치는 그만큼 하락했다는 간접적인 증거로 보인다.
힉스의 비상식적인 리버풀 가치 평가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챔피언스 리그와 FA컵에서 우승하던 인수 직전의 상황이 미래의 꾸준한 성공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또 인수 후 자신들이 투자를 하기도 전에 리버풀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재차 오른 것에 고무되었는지도 모른다. 힉스에게 리버풀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그 거위를 말라죽이고 있음에 대해서는 별 가책도 없이,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지만) 자신은 먹이를 잘 주었다고 생색을 내기만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힉스는 고소의 대상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애당초 자신에게 클럽을 팔아넘긴 데이빗 무어스나 릭 패리를 책망해야하지 않을까? 자신을 꼬드긴 질렛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보다는 잘 모르는 분야에 무작정 뛰어든 자신의 사업 감각에 문제가 있음을 뼈아프게 각성해야하지는 않을까? 오히려 사기를 당했다고 느껴야 하는 사람은 인수 완료 후 곧바로 팀의 비참한 패배를 목격한 존 헨리 아닐까? (헨리 혹은 NESV가 축구 업계에 대한 철저한 조사없이 리버풀을 인수했다면 인수 후 가치 하락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리버풀의 추락이 이어지길 바란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선수라도 언제나 몸값이 일정한 것은 아니다. 팀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가치는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변동될 수 있고, 또 가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려는 사람이 있을 때이다. 올해 RBS에 의해 리버풀 매각 계획을 공식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힉스가 클럽의 가치를 운운한 것은 이미 리버풀의 장기적 발전보다 가까운 장래에 '큰' 이익을 남기고 팔아넘기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힉스처럼 리버풀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음을 알아챘다면, 또 자신이 더 이상 리버풀에 관여할 마음이 없었다면 NESV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을 때 팔았어야 한다. 물론 리버풀이 이렇게 순위가 하락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겠고(그 점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에 따른 리버풀의 가치 하락도 예측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리버풀 감독으로서 라파 베니테스는 마지막 두 시즌 동안 사실상 구단주로부터의 이적 자금 지원을 받지 못했다. 선수단에 추가적인 투자 없이 자산 가치가 증가 혹은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힉스의 큰 오산이다. 베니테스에서 로이 호지슨으로 감독을 바꾼 것이 성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증명되고 있다. 힉스가 자금난을 겪어 온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클럽에 투자를 하지 않은 것, 감독을 교체한 것 모두 자신의 결정이다. 그 결정에 따라 리버풀의 가치는 더 떨어졌다.
자, 누가 사기를 당했나? 인수 후 60일 내에 시작될 것이라던 새 경기장은 디자인만 몇 번 바뀐 채 삽질조차 하지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이나 내년 쯤에 리버풀이 새 경기장에서 경기를 할 터였다. 애시당초 힉스와 질렛은 자신들의 공약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팬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이제와서 자신의 모든 잘못을 잊은 채 손실을 보상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의 공감도 살 수 없다.
힉스와 질렛 구단주 시기 그리고 그 유산을 통해 리버풀의 각종 기록이 깨지고 있다. 오직 좋지 않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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