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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말은 약속이 종종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강조하게 되는 말이다. 최근 리버풀을 둘러싸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대한 성토가 나왔다.
우선 전 감독인 라파 베니테스의 경우. 로이 호지슨에 따르면 라파 베니테스는 리버풀을 떠나 인터 밀란으로 가면서 리버풀 선수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일찌감치 마스케라노의 최우선 행선지로 인터 밀란이 지목되었다. 비록 마스케라노는 바르셀로나로 가게 되었지만 인터 밀란이 마스케라노를 원했던 것은 비밀이 아니다.
마스케라노 외에 리버풀의 핵심 선수인 덕 카이트도 인터 밀란 루머가 지속되었고, 얼마 전에는 실제로 인터 밀란이 영입 제안을 했다. 이 사건을 두고 로이 호지슨은 카이트 에이전트와 베니테스가 일을 꾸미고 있다, 또 선수를 채가지 않겠다는 라파의 협정 그리고 호지슨과 인터 회장 모라티와의 협정도 거론했다.
하지만 로이 호지슨의 이 주장에 대해 베니테스는 자신은 잉글랜드의 매니저에 비해 권한이 상당히 축소된 '코치'라는 반론으로 일관했다. 이적에 대한 권한은 테크니컬 디렉터와 회장에게 있으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파는 전혀 효력이 없는 협정을 맺고 떠난 것이고, 라파가 마스케라노와 카이트를 사달라고 클럽에 요청했거나 혹은 안 했는데 디렉터가 알아서 판단해서 리버풀에 영입 제안을 했다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라파의 말을 따져보면 라파는 기본적으로 잘못이 없다. 아무리 결정권이 없는 이탈리아 클럽의 감독이라 해도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클럽에서 사주는 건 기본적인 일의 흐름이다. 하지만 원하는 선수를 사주느냐 마느냐는 실무적으로 테크니컬/스포팅 디렉터의 소관이고, 결정권은 회장/구단주의 몫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마스케라노나 카이트가 인터 밀란으로 갔더라도 라파가 데려간 것이 아니라 브랑카나 모라티가 데려간 것이다. '라파'가 데려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으로 순결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 라파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추천한 것이라면 결국 라파는 리버풀 선수를 넘보지 말아야 할 자신의 약속을 깬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로이 호지슨은 라파 베니테스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바로 전 소속 클럽 풀럼의 콘체스키의 영입을 시도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호지슨도 라파와 마찬가지로 전 클럽을 떠나면서 선수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공식적인 인정을 회피하는 라파와 달리 호지슨은 자신이 직접 그 내용을 밝힌 바 있다.
라파와 호지슨 모두 약속을 깼지만 정황 논리로는 호지슨 쪽을 더 이해할 수 있다. 라파는 지난 시즌 유럽과 이탈리아 챔피언인 팀의 감독이 되었다. 큰 보강이 필요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라파가 떠난 리버풀은 빚에 허덕이고, 스트라이커, 왼쪽 수비수를 필수적으로 보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퀼라니와 마스케라노가 떠난 중앙 미드필드의 공백도 메워야 한다. 인수아가 팀을 떠나게 되었고, 유일한 왼쪽 수비수가 부상을 달고 사는 아우렐리오인 상황이라 호지슨 부임 이후 수많은 왼쪽 수비수들 영입 루머가 있었다. 결국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콘체스키를 데려올 것으로 보인다. 시급함의 정도로 따지면 호지슨이 라파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한편 팀을 떠나겠다는 마음이 굳건한 마스케라노가 경기 출장 거부라는 파업을 하며 마지막 가는 길에 아주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상황에서 정반대의 선수를 발견한다. 바로 다름아닌 제이미 캐러거다.
아무도 전 에버튼 팬인 캐러거의 리버풀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한 적이 없다. 그의 스카우저 억양은 외국에서 온 리버풀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고, 경기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태도는 그의 자살골들까지도 용서하게 만든다.
이제 다음 주말에 드디어 캐러거의 선수 경력를 치하하기 위한 리버풀과 에버튼의 친선 경기가 벌어진다. 그와 함께 했던 선수들인 오웬, 헤스키, 피넌, 두덱, 대니 머피, 스티븐 라이트, 스티븐 워녹, 데이빗 톰슨, 제이슨 매카티어, 제이미 레드냅이 캐러거와 한 팀이 되고, 아쉽게도 맥마나만과 파울러는 영국에 없어서 참여하지 못한다. 관중석에서 캐러거를 지도했던 울리에, 베니테스, 모란, 매컬리, 필 톰슨, 로이 에반스 등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예정이다. 상대팀인 에버튼은 가능한 강한 팀을 내보내고 예전 선수도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직 현역인 선수가 은퇴를 결정한 것도 아닌데 이런 기념 경기를 시즌 중에 여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입장료를 모아 좋은 일에 쓴다니 잘 치러질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가족 핑계를 대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팀을 가차없이 버리고 팀에 해를 끼친 마스케라노와 정반대로 유스 시절부터 팀의 최고참이 될 때까지 리버풀에서만 뛰는 캐러거가 있다면 그 사이엔 약간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카이트가 있다.
카이트는 월드컵 시작 전에 자신의 이적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팬들을 불안하게 했으나, 나중에 충성 맹세를 하며 찬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 이적 시장 마감을 앞둔 상황에서 카이트의 에이전트는 선수가 이적 여부를 고민을 하는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말했고, 인터 밀란은 실제로 이적 제안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떠나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팬들 사이에 번졌지만 결국 카이트는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넣은 이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미래는 리버풀에 있다는 말로 논란을 종식시켰다.
라파 베니테스 시절 리버풀이 잘 하나 못 하나 언제나 긍정적인 인터뷰를 해서 그가 사실은 리버풀의 대변인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카이트지만 호지슨 시대에도 리버풀의 대변인이 될 기세다. 이에 화답하며 로이 호지슨은 카이트를 제라드, 토레스, 레이나와 더불어 리버풀의 핵심 선수로 명명했다.
무한 체력을 과시하는 카이트지만 벌써 그는 만 30세다. 나이를 감안하면 카이트는 비싼 이적료에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마 선수 자신도 이제는 리버풀에 뼈를 묻고 리버풀의 성공과 함께 할 결심을 했으리라. 최악의 클럽 상황에도 불구하고 클럽에 헌신하는 여러 선수들의 각오와 다짐이 올바른 결실로 돌아오면 원이 없으련만 경기장 밖의 일이 10월이 오기 전에 마무리되어야 일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가장 큰 약속을 하고 하나도 지키지 않는 구단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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