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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무라카미 하루키 -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by wannabe풍류객 201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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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야한 장면에 이끌려 슬쩍슬쩍 넘겨봤던 책. 많은 젊은이들의 손에 이 책이 쥐어져있었고,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20대를 보냈다. 하루키를 너무 우습게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30대에 거의 접어든 무렵 해변의 카프카로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접했다. 느낌은 좋았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몇 달 전 일본과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1Q84를 읽었다. 독특한 느낌이었으나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참신하지도 않앗다. 

한국 내 그의 인기를 드높인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기로 했다. 어라?가 연발되었다. 1Q84와 비슷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전공투의 60년대말이라는 배경부터, 비틀즈 혹은 클랙식이라는 서양 음악을 소설의 주요한 테마로 잡은 것 그리고 소년, 소녀의 사랑, 그 사랑이 어른이 되었을 때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는 등 그의 소설이 그동안 이렇게 별 다를 게 없는 이야기로 울궈먹은 내용인가 하며 실망했다. 

같은 소재라도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으니 하루키 소설들이 전혀 변하지 않은 고인 물 같은 것은 아니다. 지루하게 똑같은 소리만 한다면 현명한 독자들이 책을 사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움이 있다는 것인데, 소재가 너무 유사한 것은 실망스럽다. 게다가 하루키에게 전공투는 왜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목소리만 꽥꽥 질러대는 치기어린 집단의 놀이에 다름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것은 광신도 종교 집단을 낳는 것으로도 묘사된다. 그는 왜 그렇게 전공투에 적대적인가. 

하루키가 시대를 앞선 것인지, 60~70년대 일본이 실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상실의 시대 속 일본은 지극히 서구적이다. 허무함의 공기로 가득하다. 제대로 된 섹스가 되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은 큰 상처 하나씩을 안고 있다. 

하루키의 소설은 세밀한 섹스 묘사가 많은데 지금 드는 생각은 삶으로서의 섹스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무수한 섹스가 무의미하게 끝난다. 2세를 잉태하는 경우가 없고, 심지어 노력하는데도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생명을 낳는 섹스 본연의 의미가 퇴색한 시대에 주인공은 미도리와의 섹스를 뒤로 미루며 그 섹스가 유의미해지도록 기다리는 미덕을 보인 것 같다. 둘이 나중에 살 거라는 암시가 있음에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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