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W를 이용해 상, 하로 된 전자책 버전의 '혁명가의 아내'를 읽었다. 쿡 북카페에서 무료로 받은 거다.
책의 첫부분부터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표기가 있어 눈쌀이 찌푸려졌으나 옛날 책이니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책 전체적으로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내용인데 3대 천재로 칭송받은 이광수의 역량이 드러난다. 제목에 '혁명가'가 들어가 끌렸는데 책 속의 혁명가는 아주 무력하다. 처음부터 폐결핵으로 방에서 골골대고 있다가, 마누라가 바람이 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고, 아내의 정부인 의사의 보살핌을 받는다. 사실 치료라기보다 주인공인 공이 견습의의 의료 시술 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이야기는 몇 번의 전환이 있는데 현재 부부인 공과 정희는 각각 부인과 애인이 있었다. 그러나 정희는 공의 불같은 사랑과 남성적인 성적 능력에 반해 애인을 버리고 공과 산다. 그리고 혁명가를 자처하는 공의 부인이므로 정희는 자신을 혁명가의 아내, 혁명가라 한다. 부르주아 근성을 버려라! 하지만 그들은 도대체 무슨 혁명을 하고 있더란 말인가. 공은 앓아눕기 전에 모종의 사회주의 운동을 한 모양이지만 정희는 불같은 사랑 밖에 한 것이 없다. 조신하고 남편말을 고분고분 듣는 조선 여성에서 탈피하는 혁명?
정희의 혁명은 욕망의 폭발이었고, 별 남자답지 못한 20대 청년 의사 권을 갖고 노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죽고, 뜻하지 않게 권의 아이를 갖게 되자 기득권 세력, 부르주아가 될 권은 매몰차게 냉정하게 임신한 정희의 배를 걷어찬다. 혁명 실패! 정희는 죽는다...
이외에 정희의 원래 애인이었던 의사 강, 공의 동지였던 여, 공과 여의 동지이자 작고한 사람의 아내인 어멈이 추가적인 인물이다. 심지가 굳기로는 어멈이고, 시덥잖기로는 강이고, 여는 허허실실의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1930년 1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중편 소설이다. 내용 중 온양 온천을 비롯하여 요즘에도 알만한 것들이 나와 언제 쓰여진 이야기인지 헛갈렸는데 좌절이 식민지 조선인의 마음을 완전히 좀먹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일본인의 이야기는 없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육감적 몸매 외에 가진 게 없던, 혁명가 꿈을 꾼 정희는 실패가 예고되어 있었다. 제목을 혁명가의 아내라 한 것은 정희의 실패 뿐 아니라 원래 혁명가인 공에게조차 원래 희망이 없음을 함께 말하고자 했던 것이련가.
내용 중 공이 정희에게 깨진 유리병을 일부러 맞히지 않는 장면이 재밌다. 그는 원래 야구 선수였기 때문에 충분히 정희를 겨냥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나중에 축구 선수가 공을 차는 기세로 사람을 차는 이야기도 개인적으로는 기억해둘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