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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천안함이 작은 배인줄 알았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배라고 한다. 그렇게 큰 배가 딱 두동강이 났다. 침몰 원인으로 많은 것이 제시되었으나 북한의 소행일 거라고 다수가 의심했다. 이제 합동조사단의 공식 발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는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입장을 정했다.
원인이 무엇이냐는 아주 중요하다. 북한이 원인이라면 북한에 보복을 해야 하고, 다른 원인이라면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강력한 대응을 하는 것이 정부 방침이 된다면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예비군 말년에 군대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로서 북한이 공격했다는 완벽한 근거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처럼 정부는 천안함이 침몰했다->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북한 밖에 없다->증거를 찾아라의 순서로 그동안 분주했던 것 같다. 풍자의 대상이 되는 파란 유성 매직 '1번'이 결정적인 근거라기엔 민망한 구석이 있다.
해외 언론의 향배를 보기 위해 BBC, 텔레그라프, 뉴욕 타임즈 등의 관련 기사를 보았다. BBC는 가장 단정적으로 북한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기사를 냈다. http://news.bbc.co.uk/2/hi/world/asia_pacific/10130909.stm 그런데 기사의 논리 전개는 한국 정부의 논리와 유사하다. 배가 망가진 모양을 보고, 직접 타격이 아닌 비접촉 타격이었고, 조사를 통해 어뢰의 잔해를 발견했고, 어뢰는 북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 2, 3일 전 북한의 소형 잠수정들이 북한의 해군 기지를 떠났다는 것이 증거다. 하지만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이 왜 공격을 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북한이 놀라운 재주가 있어 미국, 한국의 작전 지역을 뚫고 가볍게 들어오고 나가며 어뢰 한 방으로 정확히 타격을 했는지는 둘째치고, 북한은 한국의 큰 군함을 침몰시켜 한국의 전력을 약화시킨 걸 빼고 무슨 이득이 있을까? 북한의 소행이 사실이라면 한국 측의 무력 대응이 거의 당연시 될 강력한 무력 도발인데 전쟁에 이길 자신이 있어서일까?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을 것이 뻔한데 왜 자충수를 뒀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기 어렵다.
BBC는 북한의 짓임을 확신하는 기사를 쓰면서도 오늘 기사에서는 재밌는 표현을 썼다. "Attacks blamed on North" 즉, 북한에 의한 공격이라는 단정적 표현이 아니라 북한이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게 혐의를 두고 있는 공격들이라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확실히 북한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것도 포함되어 있긴 하다. http://news.bbc.co.uk/2/hi/world/asia_pacific/10144059.stm
여하튼 외신들은 이제 원인에 대한 문제보다 국제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금번 힐러리 클린턴의 방중 결과가 주목된다.
아침에 뉴스를 들으며 이동관 대변인이 오늘 대통령 담화문에 김정일을 지목하는 내용을 넣을까 뺄까를 고민했다는데 결국 빠졌다. 어떤 외신에는 북한의 군부가 단독으로 사건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므로 그럴 때 김정일을 비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강하게 나가면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할 명분을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확신을 하고 결의를 다졌다면 김정일을 비판하지 못할 것은 뭔가라는 생각도 들면서 정치는 정교한 게임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보기엔 한국 정부는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안보 정국으로 이득을 보는 것 말고 어떤 추가적인 이익이 있을까? 경제에는 악영향이고, 남북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다. 미국은 적극적으로 한국의 편을 들고 있다. 한미 간의 공조가 사건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이번 사건의 추이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대립을 거듭하는 미중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고.
더 생각이 필요하다. 오늘자 뉴욕 타임즈의 관련 기사는 읽어볼만했다. 중국이 북한을 적으로 돌렸을 때의 위험에 대한 부분은 재미있다.
On North Korea, China Prefers Fence
Diplomatic Storm Brewing Over Korean Peninsula
Korean stand-off: Stealthy mission that has brought neighbours close to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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