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하루에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낯설은 내용이 가득한 책은 진도가 잘 안 나가기 마련이고, 낯설지 않아도 재미가 없는 게 많아 하루에 책을 다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존 허시의 '1945 히로시마'로는 가능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직결된 부분이라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건 한국인에게 상식이다. 다만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인들로서는 원자폭탄으로 일본인이 수십 만명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고, 주변에서 원폭으로 죽은 일본인 사망자에 대해 동정하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요한 인물로 독일인 예수회 신부들이 나오듯 원폭의 피해자는 일본인만이 아니었다. 서양인도 있었고, 국적상 일본인이지만 조선인들도 포함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여러 원폭 생존자들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들이다. 당시 20몇 만의 히로시마 인구 중 10몇 만이 사망했고, '원자병'이라는 걸 얻어 생존했더라도 여러 후유증을 앓아야했다. 책 속 인물들도 거의 후유증을 안고 살았다. 역시 무서운 점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은 가장 초보적인 수준이었다는 것이고, 이후 수소폭탄과 같은 더 강력한 살상무기의 등장은 이런 무기를 과연 우리가 사용해도 되느냐는 물론 만들어도 되느냐의 근원적이고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
이 책에서는 여러 생존자들의 상황, 동선을 원자폭탄 투하 직전부터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여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고, 40년 이후까지 살펴보아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비교하여 볼 수 있다. 사회계급이라는 것도 재난 이후 복구 과정에서 영향을 끼치는 걸 잘 알 수 있다. 어떤 가난한 여성은 남편이 전사한 후 생존을 위해 분투하다가 일본의 경제성장 덕분에 노후에야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있었고, 어떤 의사는 지주인 할아버지의 부 덕분에 쉽게 부를 축적했다. 패전국의 지역 중에서도 원폭 피해를 입어 도시를 완전히 재건하는 상황에서도 모두의 처지가 같지는 않았다.
가장 이 책에서 새롭게 얻은 시각이 있다면 원자폭탄이라는 걸 맞고도 히로시마의 일본인들은 그게 뭔지 몰랐다는 것이다. 석유를 도시 전체에 뿌린 후 불을 질렀다는 설, 소이탄이라는 설, 마그네슘이라는 설 등 온갖 설이 히로시마에 돌아다녔다. 일본이 언론을 통제하기도 했고, 미국도 자신들이 뭘 떨어뜨렸는지 비밀로 했다. 일본인들이 자체적으로 조사단을 보낸 후에야 이것이 원자폭탄이라는 걸 스스로 파악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이 무기로서 처음 사용된 원자폭탄이니 일본 과학자는 물론 일반인들이 그걸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며칠 후 나가사키에 떨어진 또 다른 폭탄과 함께 원자폭탄은 이후 전쟁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는 누구나 이 폭탄이 전쟁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히로시마 사람들은 B-29 폭격기를 너무 일상적으로 봐서 원폭을 투하한 그 'B선생'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2차대전에서는 도시에 대한 폭격이 참으로 여러번 있어서 영국, 독일, 일본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폭격의 경험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반복되었으므로 이 또한 남일이 아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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