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인 ‘높은 성의 사나이’는 얼마 전 시청을 끝낸 tv 시리즈로 처음 접했고, 원작이 궁금해 며칠 전에 읽었다. 두 작품은 큰 차이가 있었다. 소설은 평행우주 혹은 멀티버스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마존이 제작한 영상물에서는 세계 간의 횡단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강조된다. 소설에서는 다고미가 잠깐 다른 세계로 간 듯한 부분이 나온다. 자전거택시가 안 보이고, 백인들이 일본일을 모욕하는 세상이다. 일본이 지배한 미국에서 일본인이 그것도 고위 관료인 다고미가 그런 취급을 당할리는 없다. 그리고 호손을 만난 줄리아나가 주역을 통해 호손의 소설이 실제라고 확신하는 정도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근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호손의 소설에 그려진 세상은 추축국이 패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재 우리가 아는 2차대전 이후의 세상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루스벨트가 암살되어 일어난 추축국 승리의 세상과 연합국이 승리했지만 현실과는 다른 별개 세상이라니.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아는 세상, 필립 K. 딕이 1961년까지 살았던 세상을 기초로 소설의 세계를 그린 것은 분명하고 그가 보기엔 세 가지 세상 어는 것도 완벽하지는 않았던 것은 아닐까? 물론 완벽한 세상, 특히 구성원 모두가 완벽하다고 믿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곳은 없지만 작가는 세 가지 세상 모두 결함이 있고, 나치 지배의 세상이 더 나빴겠지만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나은 현실에 안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최근 많은 미국 작품들에서 다뤄졌듯이 1950, 60년대 미국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카시즘, 소련의 핵 위협, 흑인에 대한 차별의 상존, 마틴 루터 킹의 등장과 암살 등등. 흔한 이야기지만 트럼프 당선, 트럼프 현상은 현재의 미국이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선동되어 혐오사회로 변할 수 있는지를 경고했다.
소설에는 아마존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존 스미스와 키도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 서부의 일본 지배지에서는 다고미와 칠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동부에 거주하는 인물은 있었던가? 흔하게 보이는 이름이고, 또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존 스미스는 미국에 영국 정착민들이 오던 초기의 지도자 이름이기도 하다. 줄리아나의 여동생도 부모도 나오지 않고, 프랭크의 동료인 에드는 아마존 시리즈와 달리 프랭크의 상사이며 그다지 여성적이지도 않다. 줄리아나의 나중 남자친구도 물론 나오지 않는다.
호손 아벤젠이 처음에는 “높은 성”과 같은 요새에 정말 살았는데 나중에는 매우 개방적인 곳에서 살고 있다. 조는 호손을 죽이려는 나치 암살자였기에 줄리아나가 저지하지 않았다면 호손은 살해되었을 것이다. 이번은 넘어갔어도 다음 암살자가 파견되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호손은 생사를 초탈하게 된 것인지 모른다. 나치는 인간을 우주로 보내지만 정작 지구 위 그들의 제국은 위기를 맞는다. 어차피 나치 제국은 오래 갈 수 없고, (책 속의) 현실은 바뀐다. 아마 주역은 그의 운명을 이미 알려줬을 것이고 그래서 편하게 파티를 열며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존 시리즈에서는 호손이 수집한 멀티버스의 필름들이 저항군의 연료가 되지만 소설 속 소설이 그런 역할까지 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금서지만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다. 그래도 변화를 원하는 집단적 행동을 이끌어낼 소스로 역할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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