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힐스보로 참사 직후 아스날이 리버풀과의 경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며 징계의 처벌을 감수하고자 했다는 게 아니라는 글을 적었다. 최근 이 글로의 유입이 많았고, 공교롭게도 역시 며칠 전 리버풀과 아스날의 인물들간의 관계를 점검해본 글을 쓰기도 했다. 10년 전 블로그 글에 포함된 원문 링크들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어(학교 데이터베이스 계약이 변경되어 예전 링크로는 1989년 기사들을 볼 수 없게 된 걸로 보인다) 기억 환기 및 자료 수집 차원에서 다시 1989년 4월의 기사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다행히 다른 db를 통해 1989년 기사들을 읽을 수 있었다.
더 가디언, 인디펜던트, 더 타임스, AP 등 주요 매체들의 당시 기사들 중 힐스보로 참사로 인한 경기 일정 변경에 대한 걸 집중적으로 보았다. 4월 15일에 참사가 벌어진 후 언론 보도도 온통 힐스보로에 집중되던 시기에 FA와 풋볼 리그는 경기를 연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최소한 다음 일정이라도 빨리 확정하고 싶어했다. 물론 리버풀(을 포함한 머지사이드 지역 클럽들)에게는 필요한 만큼의 기간 동안 경기를 중단하는 아량을 베풀었지만 그렇다고 FA컵이나 리그 경기에서 완전히 빠지는 건 허락치 않았다. 리버풀 구단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클럽 내에서 이사회, 감독, 선수들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아서 일부는 FA컵도 포기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희생자들의 장례가 다 끝난 다음에 해야하지 않겠냐는 대세가 형성된 모양이고, 4월 후반에 대표팀 경기 주간의 공백기가 있었기에 5월 초 에버튼과의 경기부터 리그를 재개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아스날 리버풀 두 미련한 바보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언급된 아스날의 행동들의 실제는 어떠했는가. 아스날이 리버풀과의 경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뉴스들을 보건대 경기 연기를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리버풀 지역 클럽들을 제외하고 아스날이 가장 먼저 참사 이후 리그 일정을 자발적으로 취소한 팀인 건 맞다. 아스날이 윔블던과의 경기를 취소하자(윔블던의 합의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지만 그 대목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퀸스 파크 레인저스가 그 결정을 따라 경기를 취소한다. 풋볼 리그에서 이 두 클럽을 제재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생기자 풋볼 리그는 징계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변명을 내놓았고, 리버풀 지역 외 모든 클럽들에게 양심에 따라 경기를 연기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들은 축구 경기를 하고 경기 시작 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게 옳은 방식이라 생각하여 경기를 연기하지 않았다.
당시의 맥락을 부연하면, 아스날이 한동안 리그 1위를 달렸지만 리버풀이 연승을 이어가며 승점 차를 줄이는 중이었다. 그래서 힐스보로 일주일 후 안필드에서 열릴 리버풀과 아스날 경기가 우승팀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경기로 불리고 있었다. 리그의 마지막 일정으로 연기된 이 경기는 실제로 우승팀을 결정지은 경기가 되었고 매우 극적이었다. 리버풀이 이미 승점 3점을 앞선 상태에서 0-1로 져도 우승하는 상황이었는데 경기의 마지막 순간 0-2가 되며 아스날이 안필드에서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다시 이 글이 문제삼고자 한 부분을 따지면 참사 후 리버풀의 두번 째 경기가 될 예정이었던 리버풀-아스날 경기는 아스날이 일방적으로 취소하지 않았다. 딱 하나의 기사에서 리버풀이 아니라 아스날이 이 경기의 연기를 주장한 듯한 표현을 발견했지만 이 경우가 맞다고 해도 리그의 허락을 받은 경우라 아스날의 단독 결정이 아니었다. 아스날은 리버풀과의 경기에 앞서 참사 후 3일 후에 열릴 예정인 윔블던과의 경기를 취소했고, 실제로 벌금과 승점 삭감의 징계를 받을 위험이 있었고, 만약 1점이긴 하지만 승점을 잃으면 리그 우승도 날릴 수 있었기에 용감하고 인간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윔블던과의 경기는 4월 말에 속개된다.
기실 아스날이 윔블던 혹은 리버풀과의 경기를 취소했느냐 마느냐는 힐스보로라는 거대한 참사와 1990년 전후한 시기 영국 축구 혹은 영국 사회의 큰 변화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다. 어떤 과장된 혹은 오해에 기반한 유명한 글 때문에 예전 뉴스들을 찾아보았지만 힐스보로의 진상과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국내에 더 알려질 필요가 있다. 언제 그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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