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는 코파 아메리카 결승경기가 있었고, 메시가 드디어 아르헨티나대표팀에서 처음 우승을 맛보았다. 라이브를 보며 무슨 경기가 이렇게 거친가, 네이마르가 안 다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기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어려운 기술을 부려 골을 성공시킨 디 마리아 덕분에 결정되었다. 메시는 경기 종료 직전 좋은 일대일 찬스를 맞았지만 허무하게 골키퍼에게 졌다. 그럼에도 이미 그 전 경기들에서 메시의 활약은 대회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확보했고, 이번 대회 우승은 메시의 것으로 모두가 간주하고 인정했다.
그동안 아르헨티나 감독이 누군지 몰랐는데 종료 후 메시와 포옹하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찾아봤다. 감독의 이름은 스칼로니였고 익숙하다 싶고 나이도 많지 않아서 메시와 같이 대표팀에서 뛴 적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칼로니의 대표팀 경력은 짧은 편인데 2005, 6년에는 10대의 메시와 함께 대표팀을 이룬 적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4시에는 2021년에 열린 유로2020 결승전이 펼쳐졌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밤잠을 설치다시피하며 봤는데 이번 대회 많은 낙아웃 경기들처럼 이번에도 연장전이 필요했고,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경기 전 라인업이 발표되자 마이카 리차즈는 너무 수비적인 전술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잉글랜드의 기본 라인업에서 사카를 빼고 트리피어를 투입해 3-5-2 혹은 5-3-2를 선택한 것이다. 이 전술은 독일을 무너뜨릴 때는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는 경기의 매우 이른 시각에 루크 쇼의 득점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마치 오늘이야말로 이탈리아 수비가 와르르 무너지는 날이라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웸블리를 가득 메운 잉글랜드인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힘입어 1966년의 영광이 재연되는 듯 했다. 적어도 전반전까지는.
정확히 따지면 이탈리아의 노장 듀오가 이끄는 중앙 수비의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탈리아 양쪽 풀백들이 잉글랜드의 전술에 그리고 루크 쇼의 믿기 힘든 정확성 때문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후 잉글랜드는 별로 공격을 해보지 못 하고, 스털링이 빠른 돌파를 시도하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듯한 몇 장면이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한 점이라도 앞선 이상 공격을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잉글랜드 수비는 대체로 잘 작동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페데리코 키에사가 대단한 활력으로 기회들을 창출했고, 후반전 이탈리아는 동점을 위해 노력했다. 이탈리아의 동점 골은 혼전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보누치로부터 나왔다. 언제나 침착한, 아니 거의 거만한 표정의 보누치는 그 중요한 골을 성공시키며 경기 종료 후 키엘리니와 함께 걸으며 당당한 투샷을 연출했다.
연장에서 잉글랜드는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래쉬포드와 산초를 동시에 투입했다. 예상대로 승부차기가 펼쳐지는데 이번에도 먼저 차는 이탈리아의 첫번째 키커의 슛이 성공했다. 지난 번 1번 로카텔리 대신 다른 선수가 찼다.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이 다소 불안한 표정을 보였지만 정확하고 빠른 킥 덕분에 이후 맹활약하는 돈나룸마에게 방향을 읽히고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후 이탈리아 실패, 잉글랜드 성공으로 분위기가 한껏 오른 상황에서 잉글랜드 3번 래쉬포드가 한참 뜸을 들이고 돈나룸마와 신경전을 펼치며 찬 슛은 골대를 맞히고 말았다. 이후 승리의 분위기는 이탈리아로 넘어갔고, 잉글랜드 4번 키커로 래쉬포드의 클럽 동료가 될 예정인 산초가 불길한 예감대로 연이어 실패했다. 이제 이탈리아 5번 키커 조르지뉴만 넣으면 승부가 결정날 상황에서 놀랍게도 픽포드는 조르지뉴의 슛을 막아냈다. 잉글랜드 5번은 가장 어린 사카였고, 약간 어리버리해보이는 이 친구는 불행하게도 돈나룸마에게 슛이 막히며 잉글랜드는 6번 키커들의 대결로 넘어갈 기회를 놓쳤다.
마치 사우스게이트의 선수 시절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이 잉글랜드 대표팀은 또 다시 메이저대회에서 승부차기 패를 당했다. 거의 홈대회나 마찬가지인 유로2020에서 마치 운명의 여신이 잉글랜드의 첫 유로 우승을 점지한 듯 싶었지만 만치니의 이탈리아 대표팀은 여러 우승 후보들을 이기며 진정한 우승의 자격이 있음을 이미 보여주었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일까, 잉글랜드 선수들은 어제의 네이마르처럼 울지 않고 그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어떤 축구 커뮤니티의 원색적 반응 같은 게 영국 현지 트위터 등을 통해 페널티킥을 실패한 흑인 선수들에게 가해져 문제가 된 모양이다. 잉글랜드는 언제나 미디어의 뜨거운 반응 때문에 선수들의 긴장감을 너무 높이고 그것이 승부차기 상황의 압박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누구나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특정 개개인에 대한 욕설은 곤란하다. 잉글랜드는 결승에 간 것만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여러 축구 강국들이 세대 전환기에 있어서 누가 절대 강자라고 말할 수 없는 지금 젊은 잉글랜드 팀은 다음 대회를 기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한동안 응원했던 이탈리아 팀이 이겨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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