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강원도에 살았지만 영서 지방이라서 영동에 간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동해 바다를 포함해 바다란 걸 거의 본 적이 없는 삶을 결혼 전까지 살아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며 어느 새 서해 바다에 몇 번 가보고 드디어 지난 주와 이번 주에 연달아 동해 여행을 감행했다.
물론 지금이 무슨 여행이 되었건 떠나기에 부적절한 시기이긴 하다. 그러나 일 년 반이 넘는 시간(특히 작년 전반기 가족 차원에서 조심하기 위한 감금 생활은 끔찍했다) 거의 이동도 못 하고 운동도 마음대로 못 했기 때문인지 왠지 이번에는 동해로 떠나는 것에 큰 죄책감은 없었다. 꽉 막히는 도로에서, 주차 자리도 빠듯하고 사람이 넘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수욕장의 인파에서 이미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마스크를 안 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방역 수칙을 지키는 선에서의 여행은 권장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일이리라.
동해 바닷물에 들어가 놀아보는 게 주목적이었다. 지난 주 양양의 하조대 해수욕장이 첫 방문지였는데, 비가 조금 내려서 가지고 간 텐트를 다시 접을 때 고생했다. 비를 빼면 놀기에는 좋았지만 도착 시간도 늦고 하여 한 시간을 놀았나 싶다. 근처 샤워장에 가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당 3천원의 샤워비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 온수가 많았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양양 중심지로 이동하여 차를 세웠다. 공영주차장이 대규모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바로 근처가 시장인데 저녁 시간에는 거의 문을 닫아서 구경할 게 없었다. 시장 내 운영중인 식당도 한두 개 정도 밖에 없었다. 시장을 나와 근처를 도니 식당들이 보였지만 많지는 않았다. 이름을 잊었는데 닭강정 집 하나가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인터넷 글을 검색하니 속초 시장의 닭강정 집처럼 양양을 대표하는 음식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냥 만두파는 집에서 만두와 모밀을 먹었다. 고려당이라는 빵집에서 간식으로 빵을 조금 사고, 속초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은 속초 해수욕장에 가봤다. 지도로 보기에 규모가 꽤 컸는데 실제로 그랬다. 하조대는 동네 주민인 듯한 연세 많은 분들이 관리를 하는 반면 속초 해수욕장은 젊은 사람들이 대거 일하고 있었다. 튜브나 구명조끼를 대여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가 결국 이번 동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는데 날씨도 좋고 파도도 적당해서 모두가 만족했다. 다만 작은 아이가 너무 춥다고 하여 빨리 떠난 게 아쉬울 따름이다. 텐트의 경우 해수욕장 입구에서 한참 이동해야 치는 곳을 찾을 수 있어서 불편했다. 샤워는 코인 투입 방식으로 천 원에 3분 이용할 수 있는데 작은 아이와 함께 씻기에 충분했다. 비누는 없지만 그 전 날 하조대의 무지막지한 샤워 비용에 비하면 천사 같은 가격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며칠 지내다 보니 뉴스를 통해 강릉, 속초에는 많은 비가 내려서 특히 강릉에 큰 난리가 난 걸 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재해를 잘 피해서 다녀온 셈이었다. 그렇게 난생 처음 동해 바다에서 놀아본 경험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한 번 더 가길 원하여 이번 주에 또 갔다.
가는 길에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도착 시간이 지연되었고 날씨도 좋아보이진 않았다. 이번에는 낙산 해수욕장을 목적지로 정했는데, 도착해보니 너울성 파도로 노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큰 파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했다. 역시 바다 물놀이가 목적이었던지라 그냥 포기할 수 없어 속초 해수욕장으로 이동해보았다. 이곳의 해수욕장 출입통제는 더욱 심해서 아예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모래밭에 만든 어린아이용 풀장은 있어서 거기서나마 잠깐 놀았다.
이번에는 설악산 근처의 숙소를 잡았는데 취사가 가능하여 이마트에서 장을 봐갔다. 이마트 속초점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서울 시내 지점들에 비하면 교통이 혼잡하진 않았다. 하지만 놀러가서 캠핑도 아닌데 무언가 음식을 만들어먹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콘도라서 방과 거실이 모두 넓었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쓸데없이 컸다. 침대는 스프링이 그대로 느껴졌고 소리도 나서 실망스러웠다.
마지막 여정을 위해 아침을 해결하고 가보지 않은 고성 해변으로 가보았다. 먼저 백도 해변에 갔는데 여기는 오토캠핑장을 운영해서인지 해수욕장 이용을 위해서도 주차비 5천원을 선불로 지불해야했다. 하지만 비도 오고 파도 때문에 놀 수 없을 가능성이 많기에 그냥 떠났다. 바로 위쪽의 자작도 해변으로 이동해보았는데 주차 자리도 많고 주차요금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해변 한 쪽 편에서 물놀이가 가능했다. 나는 물놀이를 거의 포기한 상태인데 아내는 하겠다고 하여 결국 모두 바다로 들어갔다. 파도는 역시나 거세서 구명조끼만 챙겨간 우리는 고생을 하며 놀았다. 작은 아이가 깊은 물을 무서워하기도 했고, 높은 파도로 가족 중 세 명이 바닷물을 먹게 되자 결국 모두 물밖으로 나갔다. 이곳 샤워장은 어른 3천, 아이 2천원의 요금을 받았다. 그런데 여자 샤워장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아내와 딸이 고생한 모양이었다. 남자 샤워장은 온수가 잘 나왔지만 짐을 수납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동시 이용 인원이 많으면 곤란할 듯 싶었고, 무엇보다 샤워장(컨테이너 박스 같다) 창문 밖으로 바깥이 훤히 보여 그 또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서울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지난 달인가 처음 동해 바다 어디로 갈까 알아보던 시기에 고성의 화진포를 찾아보았기 때문인지 가보고 싶었고 아내도 그러자고 하여 또 이동했다. 화진포까지는 거리가 좀 멀었다. 거대한 화진포 호수 자체는 별로 즐기지 못 했고, 대신 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별장을 연달아 방문했다. 시설로는 김일성 별장이 가장 그럴 듯 했고 전망도 참 좋았다. 이기붕 별장은 소박했고, 이 두 별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승만 별장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승만 별장에 가기 전, 화진포 콘도(조금 전에 우연히 군 시설인 걸 발견했다)에서 팥빙수를 5천원에 사먹었다. 여전히 거센 동해의 파도를 보며 먹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화진포에서 출발하자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처음부터 이용하는게 아니라 진부령을 넘는 길고 긴 꼬불꼬불한 길을 가게 되어 있었다. 약간 머리가 어지럽다고 느낄 정도로 길이 안 좋았는데 차량이 적어 막히지는 않았다. 한참 길을 달리다가 동홍천에 가서야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피곤했는지 졸음을 쫓아내며 운전하여 가평 휴게소까지 간신히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또 달려 집에 도착했다. 네 시간 가량 운전도 힘든데 인천부터 여섯 시간 가량씩 운전하는 분들의 글을 인터넷에서 접하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네다섯 시간 운전한다 생각하면 남해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비로 검색해보니 정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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