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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라파 베니테스의 정치: 라파 유베행 루머에 즈음하여

by wannabe풍류객 201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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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일 테지만 정치는 국회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 곳곳에 편재한다. 이는 권력 관계가 인간 생활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스포츠계에도 정치가 존재한다. 요즘 숏트랙계에서 보이는 더러운 정치는 물론 크고 작은 온갖 정치가 난무한다. 요는 현실 정치의 더러움을 피해 순수한 것을 찾으려고 스포츠를 보는 사람이 많지만 스포츠계라고 정치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리버풀의 경우를 보자. 요즘 라파가 유벤투스로 가네마네 하며 아주 시끄럽다. 라파에 대한 시선도 다양하게 나뉜다. 동정론에서 나쁜 놈이라는 소리까지 화려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우선 현실을 보자. 리버풀은 리그 7위(남은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상승할 수 있다)이고, 근래 매번 나가던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기 탈락하여 유로파리그에서 준결승까지 갔다. 성적으로 보면 이보다 더 초라할 수 없다. 

부진한 성적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클럽 차원의 이적 자금 지원이 근 2년 동안 사실상 없었다. 있는 선수를 팔아서 선수를 영입해야 했다. 더 좋은 선수일수록 비싸므로 현재 있는 선수를 팔아서 더 좋은 선수를 사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는 지난 시즌의 2위라는 성적 때문에 변명이 무색해진다. 작년과 올해의 드라마틱한 성적 차이는 어디에 연유하는 걸까? 감독은 그대로이다. 그의 전술이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 힘들다. 다른 팀들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토트넘, 맨시티 등이 잘해줬지만 첼시, 맨유는 오히려 성적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즌의 부진은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과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준급의 후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감독인 라파는 많은 책임을 져야 하지만 비판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여러 측면을 따져야한다. 요즘엔 근거없이 그를 조롱하기만 하는 글이 많아 안타깝다.

그러나 나는 라파를 옹호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는 근래 축구계에서 보기 드물게 정치적인 감독이다. 제라드가 사랑했던 유스팀 감독이자 리버풀 레전드인 스티브 하이웨이를 내몰았다. 기존 유스 체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겠다는 점에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그는 팀의 이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리버풀 단장인 릭 패리를 몰아냈다. 하지만 이제 팀은 누가 경영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팀을 팔려고 온 매니징 디렉터 퍼슬로우와 마찬가지로 리버풀이 빨리 제대로 팔리도록 하기 위한 신임 회장 마틴 브로튼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팀을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라파는 상당 부분 자기가 초래한 상황임에도 리버풀 임원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가장 큰 파워 게임은 라파가 구단주와 벌인 것이다. 보통 감독들은 구단주에게 공개적으로 대들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그의 해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리버풀의 미국인 구단주들은 장밋빛 미래와 감언이설로 클럽을 인수한 이후 클럽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절대악(evil)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작지만은 않은 변명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인수 의도 자체는 클럽에 대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버풀이라는 '프랜차이즈'를 통해 돈을 벌고, 구매한 가격보다 비싸게 팔아넘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버풀 팬들은 곧바로 구단주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었고, 라파는 상대적으로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끌어모으며 구단주에 대항할 힘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인 구단주들은 클린스만을 대체 감독으로 염두에 두며 라파의 입지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팬들의 지지를 업고 감독 자리를 지켜냈다. 오히려 릭 패리를 몰아냈고, 1년 전에 20m 파운드에 해당하는 5년 계약을 이끌어냈다. 구단주들은 아무리 미운 감독이라도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감독을 해고하기 힘들었고, 더구나 지난 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 우승 경쟁까지 벌였으므로 좋은 성적을 거둬 클럽의 가치를 높이는 감독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의 처절한 성적이 상황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다. 구단주들은 어느 때보다 라파를 해임하고 싶으나 남은 4년의 계약기간에 받을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의 보상금을 줄 수 없었다. 라파는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없는 구단주들을 비난하면서 나갈 수도 있다는 강한 암시를 계속 하고 있다. 유벤투스가 1월부터 라파를 강하게 원하면서 라파는 유베 카드를 통해 클럽에서의 위치를 공공히 하고 돈을 받아내려고 한다. 이 지점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라파는 스스로 자신이 레알 마드리드로 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리버풀에 남았음을 강조한다. 얼핏보면 훌륭하다, 리버풀을 정말 사랑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순수한 사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루머는 여러 번이었고, 유벤투스 루머도 그렇다. 그는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루머를 잠재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느 정도는 루머를 구체적인 수준까지 끌고 갔다. 즉 어느 정도 라파가 다른 클럽의 관심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선수에게 소속 클럽의 계약 기간과 상관없이 이적 제안이 들어오는 것이나, 훌륭한 감독을 다른 클럽에서 영입하려고 하는 것이나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라파가 너무 잘 하니까 다들 원하는 거 아니냐, 우리 감독이 그만큼 훌륭하잖아, 넘보지 말고 꺼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파는 리버풀에서의 위치를 다지기 위해 여타 클럽의 관심을 이용했다.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원하기 위해서였다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성적이 부진하다면 다 소용없다. 감독이 아무리 권한이 막강해도 자기 돈을 쓰는 건 아니다. 클럽의 재정은 구단주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구단주가 아무리 악한이라도 구조적으로 그들을 내쫓을 수는 없는 이상 현재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재정 능력 안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게 싫으면 자기가 떠나야한다. 지금 라파가 돈을 더 내놓을 수 없는 리버풀에 자꾸 돈을 요구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그는 떠나고 싶긴 한데 다른 팀에서는리버풀 때와 같은 장악력을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걸 아쉬워하는지도 모른다. 이건 돈의 문제를 떠나 원초적인 권력욕에 대한 얘기다. 



제라드는 거의 첼시로 갈 뻔했다가 유턴했다. 그러나 라파의 유턴이 가능할 것인지, 그게 앞으로도 환영을 받을 일인지 회의적이다. 중요한 건 이런 와중에 리버풀은 나락에서 나락으로 추락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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