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mporary

도니 다코

by wannabe풍류객 2021. 6. 1.
반응형

이 유명한 영화를 세 번 정도 보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끝까지 보지 못했다. 심지어 초반조차 넘기기 어려웠다. 제이크 질렌할의 집이 무언가로 인해 무너진다, 영화 포스터의 기괴한 토끼가 등장한다 정도가 기억날 뿐이었다. 토끼의 인상이 너무 강력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삼았을까 싶었는데, 끝까지 보니 예상과 달리 직접적으로 인용된 것은 워터십 다운의 토끼들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연결을 못 지을 것도 없었다.

이제 재도전 끝에 끝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슨 영화인지 한 번에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몇 개의 글을 구글의 도움으로 읽어봐야했다. 하지만 대개 설명은 비슷해서 그런 것이었던가 싶게 된다.

영화가 개봉한지 한참 지나(이제 20년이 지났다) 보니 영화의 캐스팅도 흥미롭다. 다른 작품에서 몇 번 본 제나 말론이 어린 소녀로 출연했고, 이제는 너무 익숙한 얼굴인 세스 로건은 이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했고(당시 실제 10대였다) 그의 출연 분량은 제한적이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드루 배리모어도 연기를 하고, 패트릭 스웨이지는 그의 생의 후반기에 이 작품에 출연했다. 질렌할 남매가 영화에서도 남매로 출연한다.

이름부터 어두운 다코 가문의 아들 도니는 몽유병 증세가 있어서 밤에 집밖으로 돌아다니다 잠드는데 그가 그러고 있던 밤중에 비행기 엔진이 집에 떨어져서 도니의 방을 부순다. 그가 방 안에 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이 죽음을 피한 소년은 기괴한 토끼 가면을 쓴 프랭크의 말을 들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인다. 그리고 그 일들은 그가 4주 후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었다.

도니는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는 아이, 즉 믿을 수 없는 화자이기 때문에 도니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그저 아픈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상 도니는 환상, 환각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혼자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에 비견되는 구원자로 해석된다. 그는 안티 크라이스트인 짐 커닝엄과 대적한다.

프랭크가 그레첸을 차로 밟아 죽이고, 도니가 프랭크의 눈을 맞혀 살해하고, 운명의 날에 도니의 집 위로 불길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도니가 엄마와 여동생이 탄 비행기의 엔진을 떨어뜨리자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 원래 엔진이 떨어졌던 그 때로 돌아간다. 도니는 엔진이 떨어질 걸 알면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다가 죽게 된다. 아마 이 점에서 예수를 연상시키게 될 터이다. 하지만 어떤 설명에 따르면 이 때 도니가 꼭 죽어야 세상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건 아니라고 한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영화에 등장하는 스패로우(그랜마 데스)의 ‘소설’을 읽어야 알 수 있다. 그 자체가 SF 소설 같은 이 책에 따르면 4차원의 붕괴가 일어나면 우리가 있는 primary universe와 tangent universe가 만나고 그러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탠전트(수학에서 보는 탄젠트) 우주가 어떤 건지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설명에 따르면 영화의 대부분은 탠전트 우주에서 일어났고, 도니가 우주의 붕괴 위험을 이해한 이후 시간을 돌려 프라이머리 우주를 구해내는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세계의 종말이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의 불화와 파탄 혹은 여자 친구의 사망 같은 사건도 비유적으로는 세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탠전트 우주는 다코 가족의 집을 시작으로 정말 세상이 끝날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 하고 도니의 집만 부서지는 걸로 생각했으나 설명글에 따르면 그러하다. 할로윈을 종말의 시간으로 삼은 건 어떤 의미일까 모르겠는데 몇 개 읽은 글에서는 할로윈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다. 도니는 뼈 그림이 잔뜩 그려진 옷을 입었는데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1988년 10월의 배경으로서 텔레비전에서는 두카키스가 몇 차례 등장한다. 당시 미 대선에서 두카키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였는데 그에 대한 도니의 아버지의 평가는 안 좋았다. 88년 대선은 휴 잭맨의 최근 영화 더 프론트러너와 겹쳐진다. 휴 잭맨은 실제 민주당 정치인인 개리 하트를 연기했는데, 두카키스가 개리 하트를 넘어서고 대선 후보가 된 것이다. 대통령으로 8년간 지낸 레이건이 더 이상 출마할 수 없게 되자 공화당에서는 2인자인 부통령 조지 부시가 후보로 올라 두카키스를 선거인단 수에서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된다. 대통령 재임 중이 아닌 공화당 대선 후보가 실제 투표수에서 앞선 마지막 경우였다고도 한다. 이후 역사에서 우리는 앨 고어나 힐러리 클린턴 같은 민주당 후보가 실제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인단이라는 미국 시스템 때문에 패하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과연 두카키스 혹은 조지 부시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종말 같은 느낌을 주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역사에서는 실제로 몇 년 후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며 역사의 종말이라는 유명한 테제가 등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시작 시점이 88 서울 올림픽의 종료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재미있다. 영화에서는 이미 끝난 올림픽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시기가 공교롭게 그렇게 설정되었다. 올림픽이 언제 열렸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고 하계 올림픽이니 8월에 열렸나 싶었지만 한국의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올림픽은 9월에서 10월초까지 진행되었다. 서울 올림픽은 이전 두 올림픽과 달리 동서 양진영의 다수 국가가 참여하여 냉전 종식의 하나의 상징 같은 행사였다.

반응형

'Tempor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여백신 접종 성공  (0) 2021.06.16
오닉스 노트 에어 펜심이 부러졌을 때  (0) 2021.06.02
Mare of Easttown finale  (0) 2021.06.01
Mare of Easttown ep6, The Nevers season finale  (0) 2021.05.26
Nomadland (2020)  (0) 202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