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조 주연의 서칭으로 유명해진 아니시 차간티의 신작은 비뚤어진 모성에 대한 영화다. 일부 평가를 듣고 괜찮을 것 같아서 봤는데 결론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하게 된다.
서칭이 말 그대로 인터넷으로 각종 개인정보를 뒤지는 이야기였던 반면 런은 현대사회에서 컴퓨터는 물론 휴대폰으로도 인터넷을 하지 못 하는, 온라인 네트워크로부터 단절된 한 소녀의 이야기다. 주인공 클로이는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인간 관계가 거의 없다. 가끔 오는 우편배달부가 가장 접촉이 많은 상대다. 클로이는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이동하기도 힘들 정도의 질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누군가를 만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는 대학에 입학하여 기숙사에서 사는 꿈을 꾸는 것으로 나오는데 중고등학교에 다닌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고등학교에 다녔다면 영화에 묘사된 정도로 정보에 어두울 리는 없기 때문이다. 각종 질병을 이유로 오직 집에서만 살았던 아이로 보인다.
이렇게 외로운 아이는 나이도 성인에 가까워지며 독립을 꿈꾸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클로이가 우연히 자신의 약이 엄마의 이름으로 처방된 것에서 의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신이 먹는 약이 약병에 붙은 이름의 약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심지어 동물용 약이라는 것을 차례로 알게 되며 엄마가 나한테 왜 이러나라는 공포심은 증폭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어머니 역의 새러 폴슨이 인큐베이터 안의 연약한 아기를 보며 슬퍼하는 장면이다. 이후의 전개는 그 약한 아이가 그래도 잘 자라서 대학 갈 나이가 되었겠구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만들지만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듯 원래 아팠던 그 아이는 하루도 못 살았다. 새러 폴슨이 연기한 다이앤이라는 캐릭터는 그 아픔을 신생아실의 다른 아이를 탈취하고,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인지 원래 자신의 아기가 생존했다면 간직하고 있었을 병의 증상들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것으로 대체하려 했다.
남의 아이를 훔치는 이야기는 오랜 전통이 있고, 선천성 중증 질환을 가진 아이를 무력하게 떠나 보낸 엄마의 아픔을 이해할 수도 있어서 새러 폴슨의 캐릭터가 이상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그 엄마의 전략은 오래 유지될 수는 없었다. 만약에 온갖 약물로 신체, 특히 뇌에 이상이 생겼다면 오히려 아이를 다루기에 편리했겠으나 아이는 공부를 잘 해서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 아이를 단지 합격 우편 숨기기만으로 기만할 수는 없다.
후반부에 아이가 극약을 먹어서 죽음을 기도하자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냥 죽게 놔둘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아픈 아이를 원했지 죽은 아이를 원하지는 않았으므로 아이를 치료하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범죄를 발각당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일부러 아프게 하는 설정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쓰레드에서도 그려진 바 있다. 양순해진 배우자를 보며 느끼는 희열이 부모자식간에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는 가짜 부모자식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스토리는 기존의 여러 유사한 이야기들에서 약간 비튼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아주 새롭지도 않았다.
제목이 런이라기에 클로이가 어느 순간 다리의 감각을 되찾아 뛰어서 엄마로부터 달아나는 이야기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클로이는 근육을 약하게 만드는 약을 안 먹어도 7년 후에 목발은 짚어야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다이앤이 남의 아기를 들고 도망갔던 런, 클로이가 어머니로부터 달아나려던 런 정도의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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