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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
간만에 아주 두꺼운 책(게다가 두 권!)을 짧은 시간에 읽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또 한 명의 독자 확보에 성공했다는 게 증명되었다. 도대체 한국에서 이 책을 산 사람은 몇 명이며, 읽은 사람은 몇 명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해가 잘 안 되기로는 '해변의 카프카'도 만만치 않았는데(지금 그 책에서 기억나는 것은 조니 워커 뿐인 것 같다), 이 책은 알듯 말듯한 아리송한 느낌을 진하게 남긴다.
제목을 보며 아큐정전을 떠오리는 경우도 많은데 내용 중에 언급되지는 않는다. 대신 아주 직접적으로 조지 오웰의 1984가 언급된다. 그리고 빅 브라더에 대비되는 리틀 피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종교집단 선구의 통제되고 강압적인 생활이 1984의 빅 브라더의 통제에 비견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책 속에서 선구의 리더를 죽이러 간 아오마메는 리더의 설명을 듣고 그 속의 삶이 간단하지 않음을 수긍해버린다. 사회에서는 누가 봐도 은밀한 흉계를 꾸미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적 집단이 사실은 큰 틀에서 사회 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리더가 리틀 피플이 선악으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며, 자신이 원시 종교의 왕이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소설은 리더의 초능력에 비추어 볼 때 진실한 이야기일 가능성을 상당히 제기하게 된다.
애초에 이 책은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위의 소소한 일상을 날카롭게 관찰하여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식의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달이 두 개 뜨는 곳, 1Q84의 세계. 초능력과 공기번데기가 실재하는 공간. 물론 당연히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일 터이다. 소설은 종종 후카에리와 덴고가 함께 쓴 소설 속의 소설 '공기 번데기'로 인해 현실이 바뀌었다고 실토한다. 소설 속의 소설 이야기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더욱 비현실적일 수 있다. 즉 현실 속의 가능한 캐릭터들이 아니라 소설 속 캐릭터인 덴고라는 작가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이야기들이 1Q84의 진면목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이가 중요하다. 특히 열 살과 서른 살. 원치 않게 찌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오마메와 덴고는 보통 사람들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열 살 때 단 한 번 손을 꼭 잡은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단정지어 버린다. 사랑을 더 굳게 간직한 것은 아오마메 쪽인데, 그는 덴고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죽겠다고 한다(3권이 나올 예정이니 완전히 죽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삶이 (결과적으로) 고독으로 점철되고 무의미하다고 해서 열 살 때의 짝사랑을 위해 죽겠다? 이 책이 나오고 얼마 후 상당히 공격적인 비평글에서 이 소설이 결국 소년, 소녀의 유치한 사랑 얘기가 아니냐는 식의 설명을 본 것 같다. 전부는 아니라도 소설 전반에 흐르는 허무의 파고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것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감정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 소설은 유난히 성교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독자에게는 어쨌거나 집중하게 만드는 부분인데, 전반적으로 기쁨이 결여되어있다. 소설 속 표현대로 '상실된' 혹은 '공백'이 가득한 느낌이다. 성교는 본래 종의 번식을 위한 것인데 소설 속에서는 '콘돔'이 필수적인 잉태를 기피하는 것들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퍼시버와 리시버의 교신 행위이자 마찬가지로 잉태가 수반되지 않는 것들이다. 성욕의 해결을 위한 행위들. (심지어 부부 간의) 성폭력 때문에 적절한 관계를 이룰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는 지점은 있으나 그 수많은 페이지들을 온갖 성적인 언어로 채우는 당위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약력으로 보아 하루키 자신도 전공투라 불리는 일본 학생운동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소설 속의 '선구', '여명'은 모두 6, 70년대 학생 운동의 산물이라고 한다. 도쿄 올림픽 이후 고도 성장기의 샐러리맨이 되는 대신 농촌에서 금욕적으로 살면서 농사를 지어 살겠다는 반역사적 조직. 그들이 결국 종교 광신도로 급변하는 인과 관계는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소설 속에서는 신비한 힘이 실제로 작용하여 탄생했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선구'가 세워질 때부터 알 수 없는 거대한 자금줄을 쥐고 있던 후쿠다 다모쓰. 무언가 검은 내막이 있음을 처음에 제시하고는 그게 아닌 것처럼 처리한 것 같아 진의를 알 수 없다.
반드시 재미있게 봤다고는 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내가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 소설이 단지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잘 팔리는 건 좀 이상하다. 그냥 잘은 모르지만 공감이 가는 듯한 느낌을 소비하겠다는 조류일까? 3권이 많은 해답을 내놓기를 기대하지만 지금까지의 추이로 보아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글을 써봤지만 어쩔 수 없이 3권의 독자가 될 운명인가보다. 독자이되 구매자가 될 지는 상당히 큰 Q마크가 붙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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