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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이야기를 20대가 넘어 보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30대가 된 지금 픽사를 성공으로 이끈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생각만큼 유치하지 않았고, 의외의 생각거리,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형들. 토이는 장난감이라고 해야 정확할테지만, 사람이 아닌 감자, 공룡 등 거의 모든 장난감이 의인화되었기 때문에 비록 사람의 형태는 아니라도 통틀어 인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인형이 말을 하고 뛰어다니는 건 당연히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인형을 정말 살아 움직이는 사람처럼 취급하며 소꿉놀이를 한다. 아이들의 손에 있는 동안 인형들은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토이 스토리는 현실적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인형들은 원칙적으로사람이 보지 않을 때에만 스스로 활동한다. 사람이 개입하면 수동적으로 사람의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소름돋게 하는 건 바로 주인공들의 직업이다. 우디는 카우보이이고 버즈는 우주비행사다. 미국을 대표하는 남성성의 상징들이다. 서부를 개척하던 시절은 따지고 보면 200년이 될까말까한 가까운 과거의 일이지만 이미 세상은 급변하여 지구에 더 이상 새로 차지할 땅은 없어졌다. 진짜 소를 모는 카우보이들은 사라지고 이제 소들은 대규모 축사에서 사육되어 미쳐갈 뿐이지만, 웨스턴 무비와 로데오 등을 통해 카우보이는 명맥을 유지한다. 실재로서의 카우보이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이다. 상징적 차원에서 카우보이는 더 깊숙히 미국 사회 내에 살아있다.
서부를 개척하고 지구의 패권을 차지한 미국은 우주로 눈을 돌렸고, 미지의 공간이자 끝없이 펼쳐진 우주는 지구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미국에게 최적의 장소다. 미국은 현실적으로 달에 사람을 보냈을 뿐 아니라, 상상의 공간에서 외계인의 침입을 지구를 대표해 막아냈다. 멸망한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며 새로운 거처를 찾아가는 것도 미국인들이다. 버즈는 탐사를 목적으로 한 우주비행사라기보다 저그라는 악에 대항하는 전사다. 카우보이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캐릭터의 한계를 지구를 대표해 외계의 악에 저항하는 보편적 캐릭터로 완화하는 전략은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히 줄여줬을 것이다.
물론 인형 가지고 심각한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방어막을 통해 현실의 민감한 부분을 우회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장르다. 픽사에서 재밌는 애니메이션 만들어서 대박을 치겠다는 꿈을 갖고 토이 스토리를 만들었겠지만 의식을 했건 하지 않았건 주인공 캐릭터에는 미국의 영웅주의적 정서가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
인형을 사주는 부모나 인형을 갖고 놀며 꿈을 꾸고 키우는 아이에게나 인형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부모에게는 아이를 돌보는 고단함을 줄여주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인형이나 사줄까? 어떤 기대를 품고 인형을 사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사회문화적 특수성을 내포한다. 한국 아이들이 카우보이 인형이나 버즈 같은 인형을 갖고 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질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기에 2편보다는 1편이 재미있었다. 3편이 올해 개봉하는 모양인데 그 집 남자애는 크지도 않나? 이번에는 어떻게 이야기를 짜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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