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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앙?

by wannabe풍류객 2016.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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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뭐라 제목을 붙여야 좋을까. 최근에 읽은 글들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점들을 엮어서 써보려고 한다. 대략 역사에 대한 것이고 또한 신앙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요즘 읽는 책 중 버트 어만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라는 게 있다. 기독교 신자였다가 이제는 신자는 아닌 한 역사학자가 예수라는 인물이 어떻게 신으로 대접받게 되었는가라는 점을 다룬 책이다. 아직 다는 못 보고 반 정도 읽었다.


어만은 예수라는 유대인 종말론자가 실존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신약의 복음서들간의 모순점들 때문에 예수의 죽음, 부활에 대해 역사학적으로 믿을 수 없는 점이 많다고 한다. 그는 역사학자인만큼 문헌 증거를 가장 중시했고, 신약의 복음서들을 작성된 연대별로 구분하여 오래된 것일 수록 믿을만하다고 여겼다. 최근에 가까울 수록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필요에 의해 윤색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어만이 책에서 길게 다루고 있지만 예수를 기독교에서 가르치는대로 삼위일체의 하나라 보는 신앙인이라면 역사학적 접근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신앙이 어떤 거짓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나 역시 기적, 부활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럴듯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 그렇지만 저자가 지적한대로 또 내가 다른 곳에서 들은대로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통해 보통 상식으로는 믿지 못할 일들을 "믿습니다!"라며 외쳐야한다. 역사학과 신앙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어제부터 읽은 내용이다. 미국의 아틀란틱이라는 잡지에 며칠 전에 실린 내용인데 순전히 우연하게 발견하여 읽었다. 내용인즉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옛날 종이 조각 하나, 즉 예수의 아내 복음서로 불린 파피루스가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다시 보도되었다. 이미 학계에서는 조작 가능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던 모양이나 이 파피루스를 정식으로 학계에 발표한 하버드의 명망있는 사학자 캐런 킹은 얼마 전까지 연대측정 등의 과학적 증거를 믿고 조작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아틀란틱의 저널리스트가 몇 년에 걸쳐 독일을 오가며 취재하여 월터 프리츠라는 인물이 파피루스를 조작했을 강력한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이 기자는 명백한 어조로 프리츠가 파피루스를 만들어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을 현혹하는 그의 언변과 이집트학을 전공했던 경력을 볼 때 기사는 프리츠가 직접 파피루스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캐런 킹 교수는 아틀란틱의 보도를 읽고 조작되었다는 쪽으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했다.


프리츠는 신약의 복음서보다 그리스 영지주의를 더 신뢰하는 사람이고, 그의 생각의 많은 부분은 댄 브라운의 문제작 다빈치 코드의 주장과 닮아 있다. 그런 입장이라면 예수에게 마리아라는 아내가 있었음을 입증할 고대 문헌을 그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차례로 언급한 두 가지 글에는 어떤 공통된 요소가 있었다. 인간적이라기보다 실제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모습이다. 어만은 예수 당대인들의 종교관, 그것이 로마의 것이건 유대인의 것이건 공통적으로 어떤 특출한 인간을 신이라고 보는 시각은 만연했다고 말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예정설처럼 인간과 신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아니라 신적 존재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당대인들은 믿었고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신이 아니었어도 신적 존재일 수는 있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인들에 의해 더욱 높은 신적 존재의 단계로 올라갔으리라는 추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삼위일체로 최상급이 되는.


어만은 초기 기독교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실제로 컸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를 인정하고 강조하는 입장들도 비슷한 견해일 것이다. 예수에게 아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전수되어 전파되고, 그를 만난 적도 없는 바울에 의해 포교되었다면 인간 예수라고 해도 상관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만은 그가 부활했다는 그 주장이야말로 예수를 특별하게 만든 점이기 때문이라고 하니 쉽게 단정할 수도 없다.


최근 역사비평 여름호의 글 몇 개를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공통적으로 재야사학으로 분류될 이덕일에 대한 맹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이덕일은 학계의 고대 사학자들을 식민지 역사학이라고 비난한 모양인데, 학계 인물들의 글인 역사비평의 논문들은 그가 사료를 오독했으며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깔아뭉갰다. 웬만해서는 본문에서 그의 이름조차 적어주지 않았다. 이덕일은 고대사뿐 아니라 정조 시대 연구서로서도 완전히 무시당하여 사이비 역사학의 대표적 인물로 적시되었다.


이덕일의 책이 집에도 하나 있긴 하고 비교적 현대사쪽이고 그의 다른 책들은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 꽤 자극적인 제목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가 언젠가 손석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식민지 시대에 대한 말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계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이 정도로 나쁠 줄은 몰랐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능력상 진지한 역사학자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 커버할 수는 없는데 그걸 이덕일이 하고 있다면 그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는 정도다. 그의 역사학은 역사학일까 아니면 신앙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사상에 끼워맞춘 글들의 나열일까? 잡생각으로 엉클어진 머리를 안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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