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명한 영화를 이제야 봤다. '악마의 씨'라고 국내에 소개된 제목만 보면 으스스한 공포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영화는 공포 영화지만 피가 튀거나 흉측한 캐릭터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워낙에 유명하길래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사실 별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곳인지 모르지만, 네이버 영화 코너의 리뷰들을 몇 개 읽었다. 그러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은 없었다. 내가 영화를 보며 들었던 생각과 일치하는 글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남의 의견이지만 정말 동감하는 게 한국에 소개된 제목은 영화를 보는 긴장감을 상당히 떨어뜨리는 스포일러다. 영화가 성공한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했기에 책을 봐서 결말을 아는 사람들도 영화를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같으면 스캔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무대가 되는 아파트가 차지한다. 그러나 아파트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마치 성처럼 보였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 60년대이기에 지금 생각하는 네모난 상자 모양의 건물이 아니라 더 전통적인 건물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고, 영화가 악마 숭배를 소재로 하기에 이야기에 걸맞는 장소를 선정했을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 방영중인 666 파크 애비뉴의 건물도 고풍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악마와의 연관성을 높였다.
비록 공간은 미국이라는 신생국에 걸맞지 않게 고풍적인 느낌을 줬지만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 읽을 수 있다. 단 둘이 살고 있는 젊은 부부 한 쌍이 형편보다는 금전적으로 무리해서 집을 마련하고, 지나치게 넓고 방이 많은 집에서 애정 때문이 아니라 별 생각없이 혹은 의무적으로 성관계를 갖는다.
여자, 즉 로즈마리가 먼저 아기를 갖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사온 이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건물 지하의 세탁실에서 만난 여성이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다. 그 부모들은 이상하리만치 딸의 죽음에 무덤덤했다. 그리고 그들이 평범하지 않음은 곧 드러난다. 악마를 부른 장본인이라 할 로만 캐스터벳은 안 가본 곳이 없다. 인간적이지 않은 대목이었다. 더구나 어떤 힘을 써서 로즈마리의 남편인 가이(이름이 '가이'라니! 가이 피어스가 있긴 하지만 처음엔 인물의 이름인 줄 몰랐다)가 직업적으로 성공하는데 조력했다.
로즈마리를 제외한 주변의 인물들이 모두 사탄의 아이를 로즈마리를 통해 생산하려는 계획을 모의한다. 약물을 써서 로즈마리가 정신을 잃게 만들고 사탄이 그녀를 범하게 했고, 그녀가 특정 산부인과 의사하고만 상담하게 만들고, 비타민이 아니라 옆집 캐스터벳 집에서 만들어낸 악마의 음료를 매일 마시게 만들었다.
임신한 이후 로즈마리의 이야기는 사실 일반적으로 처음 임신한 여성들의 불안 심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그러므로 영화가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 로즈마리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실제로 악마가 수작을 벌이는지 분간하기 어렵고 그게 이 영화의 큰 묘미다.
로즈마리가 가장 고통스로운 부분은 외로움이다. 남편은 달갑지 않은 이웃의 말만 듣고 자신의 말을 묵살하며, 이웃은 그녀의 삶 모두를 통제한다. 수시로 드나들며 감시하고, 의사를 지정해서 바꾸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믿고 의지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죽음으로 이끈다.
그녀는 의존할 곳도 없이 방황하며 어떤 경로를 통해 이웃집 노인들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그녀 뱃속의 태아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녀는 아기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이가 악마의 씨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데 결국 원치 않는 아이를 위해 출산 때까지 싸우는 역설이 생긴다.
더 큰 영화의 역설은 로즈마리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종교에 헌신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꿈에 나온 수녀, TV에 등장한 교황 등을 볼 때 영화는 그녀의 종교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악마의 아이를 갖게 되어 악마의 시대의 원년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이 왜 악마가 이 땅을 지배하기 시작할 시대로 그려졌는지 모르겠으나 섬뜩한 설정이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으로 현대 물질 문명에 대한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대사들이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로즈마리가 새로 주문해서 하나씩 꾸며간 집 모양을 칭찬했다. 로즈마리는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비달 사순'에서 했다고 자랑했다. 그녀는 옆집에서 주는 악마의 음료가 아니라 남들처럼 비타민 알약을 먹고 싶다고 외쳤다. 그녀는 도망치다 의사와 남편 등에게 잡혀서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었을 때 여기가 아니라 깨끗한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로즈마리는 현대 과학이 탄생시킨 문명의 편리함과 깔끔함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최신의 정보와 유행에 걸맞는 방식으로 뱃속의 아이를 기르고 낳고 싶었다. 하지만 악마의 방식은 전통적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악마보다는 그나마 과학적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뱀파이어나 좀비물이 유행하는 것일까? 여하튼 문명 이기에 대해 이 영화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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