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 달글리쉬가 떠난 리버풀 감독 자리를 두고 연일 혼란스러운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처음에는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가장 유력한 후보인 듯 하다가 과르디올라를 포함해 10명을 넘나드는 후보자 리스트가 있음이 드러났고, 이후 빌라스 보아스가 유력한 줄 알았는데 어디서는 프랑크 드 부어가 최우선 순위라고 보도되었으나 드 부어 자신이 인터뷰를 거절했고, 최근 기사들은 파비오 카펠로가 급부상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FSG가 케니의 후임을 정할 때 폭넓을 인터뷰를 실시한 후 임명하기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된 예견된 혼란이다. 공개적인 인터뷰 과정 때문에 어떤 팀을 맡았건 현직 감독들의 경우 현 소속팀의 운영진 혹은 서포터들의 비난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인터뷰를 하더라도 임명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 그러니까 로저스, 클롭, 드 부어 그리고 데샹까지 현재 팀에 남겠다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제 후보자의 롱리스트는 갈수록 말 그대로의 숏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 인터뷰가 확정된 사람은 마르티네스와 빌라스 보아스이며 마르티네스는 가장 먼저 미국에 날아가 구단주들과 면접을 볼 예정이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른 클럽, 각각 아스톤 빌라와 로마 등으로 갈 가능성이 있고, 보아스는 일요일에 다음 클럽의 선택을 서두르지 않겠다며 리버풀의 감독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감독 후보자들의 입장과 별개로 구단주들이 면접 후에 다른 감독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그 중 그나마 빠른 시일내에 영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타겟은 카펠로와 라파 정도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카펠로는 의외로 리버풀에 호의적인 자세라고 하는데 리버풀이 많은 연봉을 줘야하고 FSG가 원하는 젋은 감독이 아니라 어려움이 예상된다.
시간이 갈수록 그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은 리버풀의 전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다. 재미있게도 리버풀 감독 자리를 지금 가장 원한다고 공개된 사람은 라파지만 구단주들은 아직 그와 대화할 뜻이 없다. 하지만 감독 후보의 수가 줄어들며 나중에 라파와도 협상할 여지가 생겨나고 있다. 더구나 많은 온라인 투표에서 라파는 리버풀 서포터들이 원하는 차기 감독 1위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어찌보면 상황은 라파가 해임된 이후 리버풀 감독이 되고 싶어한 케니를 옆에 두고 로이 호지슨을 감독으로 임명하던 때와 아주 유사하다. 라파라는 리버풀의 또 하나의 왕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언제나 리버풀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만약 수긍할만한 후임 감독이 아니라면 그 감독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감독으로 임명된다면 팬들의 엄청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만약 그가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할 경우 안필드에서는 라파를 부르는 노래가 울려퍼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직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리버풀 감독이 될 가능성이 절대적이진 않다. 어떤 기사에서는 마르티네스 스스로가 자신이 선택되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는 말도 있다. 경쟁자들의 소위 '스펙'이 너무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리버풀 팬들의 반대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포르투에서 믿기 어려운 성적을 거둔 빌라스 보아스에 대한 반대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보아스 자신이 이중적인 심리 상태 속에서 갈등하는 것 같다. 첼시에서 서둘려 쫓겨난 것을 만회하기 위해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클럽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과 만약 그 복귀가 실패로 끝날 경우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감독이 되자마자 리버풀에 챔스 우승 트로피를 안긴 라파는 언제나 리버풀 서포터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데 능했다. 더 이상 리버풀 감독이 아닌 상태에서 힐스보로 희생자 가족들에게 기부를 하기도 하고 아내인 몬체의 이름으로 기부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팬들 뿐 아니라 BBC 풋볼 포커스의 진행자인 워커를 사로잡았고, 이제는 리버풀의 커뮤니케이션 이사가 될 젠 창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아마 라파는, 순진한 표현이겠지만,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그의 행보를 볼 때마다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기부 행위도 그다지 순수하게 보이진 않았다. 리버풀 감독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가 지금까지 기다린 것을 보며 집요함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그는 리버풀을 떠나자마자 인터 밀란에서 잠깐 머무르기도 했고, 최근 첼시에서 빌라스 보아스가 해임되자 첼시 감독 자리를 탐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집은 리버풀 지역에 두고 줄곧 옮기지 않았고 그의 웹사이트에는 위럴의 해변을 배경으로 한 라파 자신의 사진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리버풀에서 라파의 몰락을 촉구한 원인 중 하나가 그가 더 많은 권력을 원했기 때문임을 떠올리면 그가 왜 지금 리버풀에 돌아오길 원하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리버풀의 운영은 감독의 역할을 훨씬 제한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라파는 발렌시아, 리버풀에서 벌였던 권력 투쟁을 자제하고 순전히 경기장 안의 팀 운영에 집중할 수 있을까?
라파가 지금 리버풀 감독 자리를 원하는 건 매우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다. 그는 케니가 감독으로 있을 때에도 리버풀 감독을 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공식인 리버풀 감독 자리가 자기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리고 그 바람이 실현되기 위한 결정적인 대목은 구단주들도 그렇게 생각하냐의 여부다. 아직 구단주들은 라파가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로베르토 마르티네스나 빌라스 보아스 혹은 카펠로가 먼저 감독으로 확정된다면 라파에게 기회는 없다.
데일리 미러에서는 레이나, 아거, 루카스 같은 선수들이 라파의 복귀를 원한다고 보도하긴 했다. 라파의 적자였지만 달글리쉬에게 외면당한 카이트도 라파를 환영할 것으로 보인다.
라파의 복귀 여부는 리버풀의 축구 디렉터로 누가 임명되느냐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코몰리의 역할 자체가 쪼개질 예정인 가운데 스카우팅을 담당할 디렉터가 라파와 궁합이 맞을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라파는 예전에 리버풀 단장이었던 릭 패리에게 큰 불만을 가졌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패리를 몰아낸 바 있다. FSG 체제에서 라파가 그런 권력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간 현재 상황에서는 디렉터와 어울릴 수 있는 감독이 선택될테니 디렉터가 라파를 꺼린다면 이 또한 커다란 장벽이 된다.
모든 어려움,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라파가 돌아온다면 어떨까. 많은 리버풀 팬들은 힉스, 질렛 때문에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라파를 동정하며 그를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라파가 무너진다면 다음에 팬들은 누구를 부를 수 있을까. 그다지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케니의 16개월이 결과적으로 FSG 정책의 16개월 지연, 잃어버린 시간이 되었다면 라파로 인해 만들어질 미래는 리버풀의 부활일까 아니면 더 긴 그리고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이 될 것인가.
새 출발엔 언제나 희망이 함께하지만 이별했던 익숙한 얼굴이 돌아와 함께 한 새 출발은 좋은 결과를 낸 적이 별로 없다. 호지슨이 경질되고 케니가 리버풀 감독이 되었을 때 우려가 되었던 것처럼 라파의 복귀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한 때의 영광의 기억에 의존해 무작정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무모한 희망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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