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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꽤나 논란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개봉 전부터 박찬욱 감독, 송강호 주연이라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뿌리는 영화였지만, '과감한' 배우들의 노출은 묘한 기대를 품게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장면들 때문에 비위약한 사람들의 강한 반감을 일으킨다.
토요일에 시네마 정동에서 영화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그간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보다 아주 이해하기 쉬운 영화 같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제일 난해하다는 세간(특히 소위 평론간들)의 평가가 난감하기만 하다. 내가 뭘 그렇게 놓치고 있는 걸까.
영화를 같이 본 분의 말처럼 영화 자체는 말이 안 되는 내용이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원래 그렇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얼마든지 있다. 이 '실험'적인 영화는, 가학자 박찬욱은 무엇을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는가.
제목은 박쥐, 영어 제목은 Thirst다. 쥐도 새도 아닌 박쥐, 밤이 좋은 박쥐, 피가 필요한 박쥐. 박쥐는 피를, 순결한 남성 성직자는 여성을 탐닉한다. 무엇보다 강렬히, 끝없이 갈증에 시달리며. 송강호의 '직업'과 결말을 보면 알듯이 영화는 명백히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조용한 성직자의 길이 아니라 파계의 길, 욕망의 길, 살인자의 길을 통해서이다.
다른 이의 구원을 돕고 금욕의 길을 걷는 성직자가 뱀파이어가 되어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야 산다면 그 죄책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제일 첫 장면에 식물인간이 되는 거대한 몸집의 숙주를 배치한다. 아주 오래 전 카스테라를 배고픈 아이들에게 준 일을 긍지로 여기며 의식을 잃는 남자. 덕분에 송강호는 죄책감을 덜고 피를 쪽쪽 빨아먹고 산다. 보통 뱀파이어와 다르게 살인을 면할 수 있어서. 가만, 트와일라이트에서는 짐승 피를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도 있던데?!
하지만 오래간만에 본 친구 신하균의 아내 김옥빈을 만나며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 된다. 김옥빈은 하필 (뱀파이어인 송강호와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밤'에만 몽유병인 척 해서 시어머니이자 어머니인 김해숙과 남편 신하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노예처럼 살며 탈출을 갈망하던 김옥빈과 송강호는 별로 큰 계기도 없이 서로를 탐닉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 송강호가 김옥빈에게 신겨 준 신발이 등장했으니 초반 둘이 밤길에서 만났을 때 송강호가 신발을 벗어준 사건이 생각외로 큰 계기였는지 모르겠다. 일의 선후 관계를 보자면 송강호가 먼저 김옥빈에게 빠진 거고, 김옥빈은 자상하게 보인 송강호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를 던진다. 바로 순수한 사랑이다. 신부가(!), 친구의 아내와(!) 성교를 할 뿐 아니라, 친구를 살해(!)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sin'과 'crime'이 합성된 극악무도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둘은 그 일들을 해나간다. 송강호가 자기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김옥빈을 좋아하는 것, 김옥빈이 신부, 뱀파이어임에도 송강호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랑이 아니다. 송강호가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임을 밝히고 난 후 김옥빈과 대화하는 장면이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내가 신부라서 좋아했냐? 신부는 직업일 뿐, 뱀파이어라는 것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대목에서는 문득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뱀파이어지만 괜찮아!
하지만 결국 살인을(그것도 하필 친구이자 김옥빈의 남편을) 저지르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송강호는 자기는 더 이상 신부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살인은 하지 않는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장면은 요즘 자살 사이트를 통한 집단 자살과 묘하게 어울렸다. 여하간 송강호의 죄책감은 김옥빈을 감염시켰고 둘의 갈등이 최고조로 향할 때 송강호는 김옥빈을 죽인다. 그리고 뱀파이어로 되살린다.
뱀파이어가 된 김옥빈은 송강호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발산했다. 살인이 이어지자 송강호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면서 저질러진 일들을 정리해나가는데 그 와중에 성기 노출을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어떤 욕망도 없이 참회의 심정으로 자신을 추종하는 여성을 강간하는 척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는 살아있는 기적의 화신을 믿고 싶어하는 눈먼 추종자들의 환상을 깨기 위해.
이전 박찬욱 영화들, 예를 들어 '올드 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은 너무 잔혹해서 영화를 세세히 뜯어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나마 덜 잔혹하게 느껴졌다. 뱀파이어를 등장시켰기에 살인이 너무 당연해서일까? 피는 어느 영화보다 낭자했지만 오히려 편하게 봤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모든 것들이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게 만들어서 오히려 불만이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단순히 엑스트라가 아니라 그야말로 등장의 이유가 있게 스토리를 짰다. 그리고 오마주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영화와 데자부를 느낄만한 장면이 꽤 많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머리를 짜낸다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쓸 수 있겠지만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남기며 오늘은 이만 쓴다.
- 눈 먼 박인환을 살해하는 이유는?
- 방을 하얗게 칠한 이유는?
- 발목이 잘려 욕조 위에 매달린 시체. 인명 경시를 하지 않기 위한 송강호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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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리뷰 글들이 있겠지만 일단 오늘 본 리뷰 글 하나는 영화의 틀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박쥐, 인생이나 영화나 당신의 선택이다: <칼럼>신체의 장애와 욕망의 분출구, 상충되는 상징의 의미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56633&kind=menu_code&keys=4
토요일에 시네마 정동에서 영화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그간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보다 아주 이해하기 쉬운 영화 같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제일 난해하다는 세간(특히 소위 평론간들)의 평가가 난감하기만 하다. 내가 뭘 그렇게 놓치고 있는 걸까.
영화를 같이 본 분의 말처럼 영화 자체는 말이 안 되는 내용이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원래 그렇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얼마든지 있다. 이 '실험'적인 영화는, 가학자 박찬욱은 무엇을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는가.
제목은 박쥐, 영어 제목은 Thirst다. 쥐도 새도 아닌 박쥐, 밤이 좋은 박쥐, 피가 필요한 박쥐. 박쥐는 피를, 순결한 남성 성직자는 여성을 탐닉한다. 무엇보다 강렬히, 끝없이 갈증에 시달리며. 송강호의 '직업'과 결말을 보면 알듯이 영화는 명백히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조용한 성직자의 길이 아니라 파계의 길, 욕망의 길, 살인자의 길을 통해서이다.
다른 이의 구원을 돕고 금욕의 길을 걷는 성직자가 뱀파이어가 되어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야 산다면 그 죄책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제일 첫 장면에 식물인간이 되는 거대한 몸집의 숙주를 배치한다. 아주 오래 전 카스테라를 배고픈 아이들에게 준 일을 긍지로 여기며 의식을 잃는 남자. 덕분에 송강호는 죄책감을 덜고 피를 쪽쪽 빨아먹고 산다. 보통 뱀파이어와 다르게 살인을 면할 수 있어서. 가만, 트와일라이트에서는 짐승 피를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도 있던데?!
하지만 오래간만에 본 친구 신하균의 아내 김옥빈을 만나며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 된다. 김옥빈은 하필 (뱀파이어인 송강호와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밤'에만 몽유병인 척 해서 시어머니이자 어머니인 김해숙과 남편 신하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노예처럼 살며 탈출을 갈망하던 김옥빈과 송강호는 별로 큰 계기도 없이 서로를 탐닉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 송강호가 김옥빈에게 신겨 준 신발이 등장했으니 초반 둘이 밤길에서 만났을 때 송강호가 신발을 벗어준 사건이 생각외로 큰 계기였는지 모르겠다. 일의 선후 관계를 보자면 송강호가 먼저 김옥빈에게 빠진 거고, 김옥빈은 자상하게 보인 송강호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를 던진다. 바로 순수한 사랑이다. 신부가(!), 친구의 아내와(!) 성교를 할 뿐 아니라, 친구를 살해(!)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sin'과 'crime'이 합성된 극악무도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둘은 그 일들을 해나간다. 송강호가 자기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김옥빈을 좋아하는 것, 김옥빈이 신부, 뱀파이어임에도 송강호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랑이 아니다. 송강호가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임을 밝히고 난 후 김옥빈과 대화하는 장면이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내가 신부라서 좋아했냐? 신부는 직업일 뿐, 뱀파이어라는 것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대목에서는 문득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뱀파이어지만 괜찮아!
하지만 결국 살인을(그것도 하필 친구이자 김옥빈의 남편을) 저지르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송강호는 자기는 더 이상 신부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살인은 하지 않는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장면은 요즘 자살 사이트를 통한 집단 자살과 묘하게 어울렸다. 여하간 송강호의 죄책감은 김옥빈을 감염시켰고 둘의 갈등이 최고조로 향할 때 송강호는 김옥빈을 죽인다. 그리고 뱀파이어로 되살린다.
뱀파이어가 된 김옥빈은 송강호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발산했다. 살인이 이어지자 송강호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면서 저질러진 일들을 정리해나가는데 그 와중에 성기 노출을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어떤 욕망도 없이 참회의 심정으로 자신을 추종하는 여성을 강간하는 척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는 살아있는 기적의 화신을 믿고 싶어하는 눈먼 추종자들의 환상을 깨기 위해.
이전 박찬욱 영화들, 예를 들어 '올드 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은 너무 잔혹해서 영화를 세세히 뜯어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나마 덜 잔혹하게 느껴졌다. 뱀파이어를 등장시켰기에 살인이 너무 당연해서일까? 피는 어느 영화보다 낭자했지만 오히려 편하게 봤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모든 것들이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게 만들어서 오히려 불만이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단순히 엑스트라가 아니라 그야말로 등장의 이유가 있게 스토리를 짰다. 그리고 오마주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영화와 데자부를 느낄만한 장면이 꽤 많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머리를 짜낸다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쓸 수 있겠지만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남기며 오늘은 이만 쓴다.
- 눈 먼 박인환을 살해하는 이유는?
- 방을 하얗게 칠한 이유는?
- 발목이 잘려 욕조 위에 매달린 시체. 인명 경시를 하지 않기 위한 송강호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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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리뷰 글들이 있겠지만 일단 오늘 본 리뷰 글 하나는 영화의 틀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박쥐, 인생이나 영화나 당신의 선택이다: <칼럼>신체의 장애와 욕망의 분출구, 상충되는 상징의 의미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56633&kind=menu_code&key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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