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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테메레르 2 - 군주의 자리

by wannabe풍류객 200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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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2 - 군주의 자리 - 8점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노블마인
테메레르 1권을 읽은지 1년도 넘은 것 같다. 읽고는 싶지만 사기는 싫은 마음에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다보니 사실상 잊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혹시 테메레르 2권이 있을까 싶어 서가를 바라보았는데 거짓말처럼 2권이 있었다. 게다가 3, 4권까지 있어서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1권을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 등장인물들이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테메레르가 중국에 가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초반엔 중국 황제의 형이 영국에 방문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그럭저럭 적응해서 다시 소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재미는 별개로 하고 몇 가지 점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용 자체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내 기억으로 한국의 전통에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나오되 용은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둘리는 용이 아니라 공룡이고. 공룡은 지구상에 실존했던 생물이고, 용은 상상의 산물이고 특히 중국에서는 공룡과 전혀 상관없는 존재다. 또 일반적으로 서양의 용은 포악하고 인간에 해를 끼치는 악마와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전사가 나서서 용을 처치하는데, 동양의 용은 신령스럽다. 이런 엄청난 간극이 있음에도 나오미 노빅은 중국의 용이 영국에 가서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영국을 위해 싸우는 설정을 만들어낸다. 영험한 혹은 악마같은 용이 몇 개 국어를 해도 이상할 게 없겠지만 테메레르는 어떤 환경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적응해 버린다. 서양의 용이 중국에 가는 설정이라면 더 어색했을지 모르는데, 동양의 용은 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더 수긍이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제는 용의 지위에 대한 것이다. 소설에 심심찮게 나오는 말은 용의 '품종'이다. 원서의 영어표현은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품종이라는 말은 지극히 인간본위적이다. 즉, 인간이 용을 사육하고 교배한다는 관념이 들어있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용에 대해서도 그런데 이는 문화적, 관념적 차이를 무시한 꽤 곤란한 발상이다. 물론 중국의 용들은 글을 쓸 수도 있고, 자영업도 해서 유럽의 용보다 사는 처지가 더 나은 것처럼 그리지만 근본적으로 인간 생활의 테두리 안에 사로잡혀 있고, 인간보다 우월하지는 않다. 소설이 취하고 있는 이런 전제,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소설적 재미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테메레르와 용싱 왕자를 실은 배가 아프리카를 지나 항해를 하던 중 70미터가 넘는 바닷뱀을 만나서 전투를 치른다. 테메레르가 뱀을 죽이지만 고민에 빠진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작가가 의식했는지 모르지만(중국 문화를 분명히 공부했을테니 중국의 용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고민과 결단은 있었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테메레르는 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난 영국 국민 혹은 '군인'인가? 난 인간에게 사육당하는 '동물'인가? 조종사인 로렌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3권 이후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이끌어내는지는 두고보아야겠다.

테메레르는 본래 중국의 황족만이 거느릴 수 있는 셀레스티얼 품종이다. 그래서 한낱 영국의 장교 따위가 테메레르를 맡고 있는 것이 중국의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이 문제는 중국의 왕권 다툼 투쟁과 더불어 고두조차 하기 싫어하는 영국인 로렌스를 무려 황제의 양자로 들이는 방식으로 간단히 해결되어 버린다. 이것도 픽션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든 중국과의 갈등을 끝내고 테메레르와 로렌스를 붙여놓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싶다.

결국 인간 특히 조종사와 용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귀착되는데 둘은 연인 이상으로 생명을 함께 하는 사이다. 그래서인지 그들 간의 대사는 항상 연인 간의 유치한 대사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테메레르가 암컷 용을 만나자 로렌스는 당황하지만 질투라는 감정이 더 정확하게 그의 심정을 대변할 것이다. 용이 덩치만 클 뿐 인간과 함께 지내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 하지만 그렇다고 용이 인간보다 이성적, 지능 측면에서 엄청나게 우월하게 설정되지도 않았다.

소설에 대고 이래저래 태클을 걸어봐야 대다수 사람들은 정력 낭비라고 하겠지만, 팩션을 추구하는 이런 소설에서는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기대감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범접할 수 없고, 서양에서는 죽여야할 것이고, 동양에서는 신령한 힘의 도움을 기원하는 존재인데 용들을 인간의 친구이자 도구로 끌어내린 설정은 양날의 검이 될 것이다. 처음에 감상 글을 쓸 때는 용들이 도입됨으로써 공군의 탄생이 수백년 앞당겨진 설정이라면 국제정치의 판도를 아예 다르게 짜놔야 맞다고 봤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지만) 용의 지위와 능력 자체를 깎아버린 상황에서 안 될 것도 없다 싶었다. 피터 잭슨에 의해 영화화 된다는 이 소설의 너무 큰 성공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그냥 재미만 있다고 될 일일까? 중국에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혹은 반응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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