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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다윈씨 -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한음 옮김/승산 |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다윈 전기.
올해 다윈이 태어난지 200년이 되었다고 영국 언론, 방송에서는 다윈에 관한 온갖 기사, 다큐멘터리가 쏟아져나왔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찾았다. 원래는 '종의 기원'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최근 번역본은 하나밖에 없고, 갑자기 '종의 기원' 말고 다윈을 다룬 책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와 이 책을 빌렸고, '신중한 다윈씨'라는 약간은 유치한 제목의 이 책을 먼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 있는 추천하는 말들은 보통 영양가가 없기 마련인데, 책이 잘 읽힌다는 평은 정말 맞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계속 손에 붙들고 금세 다 읽어버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윈은 완벽한 사람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천재였던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가장 유명한 그의 저서 '종의 기원'조차도 수많은 비난을 받았고 실제로 지금에 와서는 틀린 내용도 있다. 책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면서 개정판이 여러 번 나왔고, 그는 종종 소심하게 자신의 주장의 강도를 약화시켰다.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하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수긍하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핵심 주장을 버리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말부터 해보자. 진화, 자연선택. 창조론자들의 눈과 귀와 머리를 강타한 이 말들. 이 단어들 자체는 나중에 등장하고 구체화되지만 다윈은 이 불경스러운 생각을 꽤 이른 시기에 품었다. 하지만 학문적 정직성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당연하게 요구되는 자세같지만 당대 학문 세계가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거부하고 매장하려할 것이 분명할 때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다윈도 머뭇거렸다. 수십 년 동안. 그래서 신중한(영어로는 reluctant) 다윈씨라는 제목이 붙었다.
아주 비슷비슷한 종들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으리라는 어찌보면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상상이 용인되지 못한 건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신성함이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종의 기원'에 없는 내용임에도 책을 읽은 사람들은 즉각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냐며 반발했다. 인간이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아니다? 사후 세계가 없다, 천당에 갈 수 없다? 다윈의 유물론적 추론은 인류 사상 최고의 위험한 생각임에 분명하다.
신중하게 더 확실한 증거를 수집하고, 아마도 자신의 동료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을테고, 위험한 사상을 간직했던 다윈. 하지만 갑자기 앨프리드 월리스라는 풋내기 한 명이 자신과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심지어 자신에게 글을 발표해달라고 하자 충격에 빠진다. 공동발표 형식으로 조용히 세상에 내놓았지만 새로운 글을 급하게 써내야했다. 짧게 쓰려던 '요약문'이 바로 '종의 기원'이었다. 다윈은 비록 교수도 아니고 어느 연구소에서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학계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려는 욕심은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공동발표라는 형식 자체는 반칙이었다고 평가한다.
몇 가지 포인트를 간략히 정리하고 글을 마쳐야겠다.
- 다윈은 진화(evolution)이라는 말을 처음부터 쓴 것이 아니었고, '변형(transmut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 역설적이게도 다윈의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사랑했고, 부인은 남편의 태도를 항상 우려의 눈초리로 살펴보았다. 다윈이 죽고 나서도.
- 뚜렷한 직업도 없이 다윈이 인류 역사에 충격파를 던진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부유한 가정 환경 덕분이었다. 그는 수많은 샘플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인, 식모를 둬서 자질구레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로서는 또 한 번 좌절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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