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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0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①: 충돌의 시작, 1997년 9월 27일
2011/08/12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② : 프랑스 월드컵 결장의 가능성, 1997년 10월
킨이 드디어 아무도 탓할 것이 없는, 순전한 자기 잘못으로 인한 일년짜리 부상을 입은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후회가 없었다.
"저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가 일요일에 뛰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뛰지만 않았다면 등등. 하지만 저는 공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선수[홀란드]가 저와 마주쳤어요. 이후 저는 제 무릎이 사라지는 것을, 제 다리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꼈죠. 실제로는 이런 부상을 당한 것이었고, 저는 이것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월드컵 참가 가능성에 대해] 남은 시즌 기간 동안 뛸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무엇을 생각할지 알 수는 없죠.
"수술을 받기 전에 다음 몇 주 동안 제 다리의 상태를 호전시킬 거에요. 그 다음 저는 저희 치료사인 데이빗 페브르의 손에 맡겨집니다." [미러, 97. 10. 4]
이 말을 한 날은 기사가 나오기 하루 전인 3일이었을 것이다. 로이 킨은 자신의 시즌이 끝났음을 안 이후 24시간만에 맨유의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다른 인터뷰를 보자.
"부상은 큰 타격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해요. 삶은 도전이고, 이것은 제 인생 최대의 도전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돌아올지 궁금해하겠죠. 하지만 저는 자신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더 큰 질문은 제가 예전 상태 그대로 복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겠죠. 음, 저는 그 점에 있어 아무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의 부상 기간이 단축될 것이라는 환상은 갖지 않아요. 저는 다음 시즌을 목표로 하고 있고 아주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아요.
"리즈에서는 괴상한 사건이었어요. 제 발이 땅에 걸렸고, 저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죠. 심각한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무언가 부러지는 걸 느꼈으니까요.
"저는 저와 똑같이 십자인대 부상을 겪고 극복한 한 친구와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보고 있었어요. 그가 의료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말해줬죠. 저는 모든 일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실망할 수밖에 없죠. 제가 고대하던 아주 대단한 한 해였으니까요.
"저는 이제 막 주장이 되었고, 우리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었고, 아일랜드 대표팀은 월드컵에 진출하려고 했어요.
"시즌이 진행될수록 저는 부러워하겠죠. 유나이티드가 저를 그리워하지 않기를 바라고, 지난 밤 경기를 보니 안 그럴 것 같네요." [더 선, 97. 10. 4]
전에 소설로 가득찬 글들에서 암시하듯 97년의 로이 킨에게 있어 아일랜드 대표팀의 월드컵 진출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1968년 이후 이루지 못한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대한 결의도 대단했다. 그러나 킨은 소속 클럽과 대표팀이 자신의 도움없이 이 과제를 해결해야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위의 인터뷰에서 로이 킨은 98년 월드컵 본선에 아일랜드가 진출할 경우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그의 친구들은 킨이 이미 시간표를 짜며 본선에서 뛸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선데이 미러, 97. 10.5). 물론 얼마 후 아일랜드는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로이 킨이 98년 월드컵에서 뛰게 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며칠 후인 10월 11일의 기사들에서 로이 킨은 유사한 인터뷰를 한다. 이번에는 팀 피지오와 함께 자신이 받게 될 수술의 영상을 본 이후였다. 잘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로이 킨도 수술 장면은 조금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미러).
로이의 불같은 성격은 뒤로 하고 선수로서 부상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는 모범적이었다. 부상 직후의 초기 수술 이후 다리의 근육이 줄어들었다며 다시 키우는 훈련을 바로 재개했다. 그리고 아일랜드가 월드컵 본선에 나갈 경우 무조건 참가하겠다고 떼쓰지 않고, 그 때 가서 자신의 몸 상태가 적절한지 점검하고 또 클럽 감독인 퍼거슨의 허가도 받을 것이라며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대처했다[아이리쉬 타임스].
10월 31일, 수술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킨은 수술의 성공과 쾌유를 기원하는 수천 건의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 이 때 쯤 맨유는 킨의 부재 속에서도 챔피언스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에서 모두 순항하고 있었다(미러). 인터뷰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다시 며칠 후인 11월 2일. 킨이 수술을 받기 하루 전날이다. 이 때 킨은 같은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고 회복했던 시어러나 개스코인처럼 운이 좋을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도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중에 복수극의 단초가 될만한 발언을 한다.
"리즈 선수들 중 몇 명이 다친 척하고 있다고 저를 비난했죠. 제가 곧바로 다시 일어섰다면 그들 중 몇 명을 때렸을지도 모릅니다." [선데이 미러]
홀란드 개인만을 향한 감정이라기보다 '리즈 선수들'이라는 복수형을 취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킨은 언제부터 홀란드만을 향한 악감정을 키우게 된 것일까. 남은 자료들을 보는 와중에 그 점이 밝혀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여기서 다친 척했다는 혐의에 대해 로이 킨이 화가 났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다음번 글에서는 다음 시즌인 98-99 시즌의 시작 시기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이미 쓴 글을 몇 배 분량으로 늘려서 상세히 쓰려니 힘이 부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줄인다면 예전 글과 다를 것이 없을테니 적절한 타협책을 찾아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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