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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오스트레일리아

by wannabe풍류객 2008.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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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키드만과 휴 잭맨이라는 캐스팅 파워만으로도 매력적이었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 개인 차가 있겠지만 유럽의 오스트리아와 헛갈리고, 발음이 그다지 쉽지 않은 나라. 호주(). 북반구 한국에서 남반구의 큰 섬 오스트레일리아의 존재는 유럽의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별 상관없이 보일런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미지의 국가 오스트레일리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주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시작하며 "Stolen Generations"를 소개한다. http://www.culturewars.org.uk/2002-12/stolengeneration.htm
무엇을 도둑맞았는가? 바로 어보리진의 아이들이다. 영화 속의 어보리진 혼혈아는 흑인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발각되면 경찰에 잡혀가는 불쌍한 삶을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은 2008년 호주 총리가 도둑맞은 세대에 대한 사과를 했다는 멘트로 끝난다. 지난한 인종차별의 끝. 이는 바로 국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넘어 '오스트레일리아 민족'을 만드는 작업의 후반부를 말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영화는 대체 무엇인가 의심스러웠다. 호주 홍보 영화라는 미리 본 사람들의 평을 보긴 했고, 영화의 중심엔 두 스타 주인공들의 사랑이 있는데, 막상 내용은 혼혈아 '눌라'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가만 생각을 해보면 원주민 어보리진과 정복자 백인의 화합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내부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었다는 쪽으로 정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의 영국 귀족 출신 백인 여성인 새라(니콜 키드만)가 자기의 애도 아닌 백인과 어보리진의 혼혈 '눌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다윈에 있는 백인 귀족 여성들의 반응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심지어 결국 사랑하게 되는 드로버(Drover, 몰이꾼, 휴 잭맨)마저 그런 새라를 이해하지 못했다. 

후반부 휴 잭맨의 귓속을 때리던 새라의 말. "이 애가 네 애가 아니라고 할꺼야?"라는 멘트는 이 영화의 방향과 목적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새라는 백인이며 아이가 없는 과부, 드로버는 백인이고, 어보리진과 결혼 경력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홀아비이다. 그 둘의 가상의 아이 눌라는 백인과 어보리진의 사생아다. 이렇게 셋이 어우러진 가짜 가족(새라와 드로버가 결혼하지는 않았고, 눌라는 제 갈일을 가니까)은 '도둑맞은 세대'로 대표되는 인종차별로 얼룩진 오스트레일리아 역사를 보듬으며 새로운 민족, 평등한 것처럼 보이는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허위적일 수밖에 없는 건 2008년이 되어야 공식적인 호주 정부의 사과가 나왔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진정한 호주 민족 만들기가 여전히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이 셋을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주 잘 나타난다. 주변 인물들 여럿이 목숨을 던져가며 지켜야했고, 주인공들은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행운으로 비껴나갔다.  


이 가상의 가족이 살던, 아름답게만 보이는 파러웨이 다운스(Faraway Downs). 이름처럼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야 온전히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의 공간. 예외적인 곳이라는 말이다. 번화한 도시에서 어보리진은 술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서 백인가정에서 자라나야 한다. 영화에서처럼 미션 섬 같은 곳에 격리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가장 야릇한 캐릭터는 사진 속의 '킹 조지'라는 인물인데, 눌라의 할아버지로 언제나 눌라를 바라보며 수호신처럼 주위를 맴돌고 있다. 여러 번 등장하는 한쪽 다리로 선 그의 자세는 마침내 관객들의 웃음을 터뜨리기에 이른다. 이분도 죽음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영화 속 최고의 악한을 죽인다. 혼혈아 눌라를 자기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백인 플레쳐에게 징벌을 가한 것이다. 드로버가 자기 자식도 아닌 눌라를 받아들인 것에 비한다면 플레쳐는 호주 민족을 만들기 위해 죽어마땅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눌라가 새라와 휴 잭맨의 입양아로 살아가는 결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에서 하필 '도둑맞은 세대'를 주요 테마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아무리 둘이 사랑으로 눌라를 보살펴도 호주 정부의 정책으로 백인 가정에 어보리진 아이를 강제로 데려다놓은 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눌라는 할아버지를 따라 성인이 되기 위해 떠난다. 어보리진을 자유롭게 살게 한다는 아량을 보여주기 위해. 하지만 역시 역사적으로 봐서는 허구적인 결말이다. 

영화를 아직 안 본 사람을 위해 일러두자면 166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감안해야 한다. 감독도 그걸 인식해서인지 코믹한 장면은 영화 초반에 집중시키고 있다. 초반 3, 40분이 졸릴 수 있는 위기다. 그 시기를 넘기면 긴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영화를 그럭저럭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절벽에서 1,500마리 소떼가 펼치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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