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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버풀 팬사이트에서 무링요의 9년 리그 경기 홈 무패 기록에 대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리버풀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몇 번 했던 무링요라 일부 팬들은 그의 놀라운 기록을 평가절하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또 무링요와 라파 베니테스를 비교하는 글이 올라오면 거의 틀림없이 논란이 일어난다.
문제의 근원은 라파 베니테스를 변호해야 하는 리버풀 팬의 입장에 있다. 같은 해 각각 첼시와 리버풀의 감독이 되었던 무링요와 베니테스는 각종 대회에서 지겹도록 마주쳤고, 무링요가 인터 밀란 감독 자리를 떠나자 베니테스가 후임이 되며 둘 사이의 비교는 불가피했다. 쇼맨십이나 대회 우승 결과에서 더욱 화려한 무링요가 베니테스보다는 나아보이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평가절하되는 라파를 변호하고 싶은 리버풀 팬들의 심정이 간혹 지나쳐 근자의 리버풀 팬사이트에서의 작은 충돌로 나타났던 것 같다.
둘은 분명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지만 둘의 성과와 업적을 논함에 있어 너무 단순하게 혹은 편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아쉬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무링요는 항상 돈을 막 쓸 수 있는 클럽만 선택하는 비겁자라는 말 혹은 베니테스는 언제나 구단주를 잘못 만나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감독이라는 식이다. 이런 진술들 속에 일말의 진실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각 감독을 온전히 정의할 수는 없다. 감독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므로, 감독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사건들 중 그 감독의 책임이 아닌 경우도 많다.
여하튼 이 논란을 보며 무링요와 베니테스의 과거의 모습을 추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의외의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2004년 리버풀의 제라르 울리에 감독의 후임 후보였던 감독들 중 무링요가 있었던 일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2000년 정도부터 리버풀에 관심이 있었지만 2004년 리버풀 이야기로 학사 논문을 쓴 이후에야 리버풀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어떻게 울리에가 리버풀을 떠났고 그 자리에 라파 베니테스가 오게 되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울리에는 생명이 위험했던 심장 수술 이후 사람이 완전히 변했고 그것이 팀의 성적 부진으로 이어져 해임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말인 것 같다. 라파 이외의 후보로 당시 셀틱의 마틴 오닐, 찰튼의 알란 커비슐리, 케니 달글리쉬 정도가 언급된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링요라고?
그런데 2004년 무링요가 리버풀 감독 자리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첼시 감독으로 공식 부임하기 얼마 전까지도 리버풀행의 가능성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링요는 오래 전부터 리버풀 감독 자리를 원했고, 2003년 12월 경에는 대담하게도 리버풀 이사회에 울리에 말고 자기를 쓰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또 2004년 2월에 한 인터뷰에서 돈으로 선수를 긁어보으는 첼시보다 리버풀을 선호한다고도 말했다.
"리버풀은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팀이고, 첼시는 저의 구미를 당기는 클럽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이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에 그 프로젝트는 만약 클럽이 모든 것을 얻는데 실패할 경우 아브라모비치가 물러나면서 클럽에서 돈을 가져가버릴 수도 있어요. 불확실한 프로젝트에요.
"감독이 훌륭한 선수들을 영입할 돈을 갖는 건 흥미롭지만 이런 프로젝트가 성공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해 4월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피터 케년이 무링요와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포르투가 FIFA에 제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거의 같은 시기 무링요는 잉글랜드에서 두 개의 감독 자리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고, 두 클럽은 첼시와 리버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버풀의 단장 릭 패리는 무링요와 접촉하지 않았다며 루머를 부정했다. 여러 기사들을 보면 무링요와 접촉은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패리가 부정한 것은 리버풀이 공식적인 제안을 했다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4월에 패리가 찰튼의 커비슐리에게 여름에 리버풀 감독으로 올 수 있는지 문의한 것을 감안하면 울리에의 해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고, 여러 후임 감독 후보들과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텔레그라프는 커비슐리가 1순위였던 것으로 파악했고, 베니테스와 무링요도 유력한 경쟁자였다.
리버풀은 울리에 이전에 모든 감독이 영국 출신이었기 때문에 다시 영국 감독 체제로 돌아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스티븐 제라드와 대니 머피는 특히 영국 감독을 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머피는 라파가 리버풀 감독이 되자 커비슐리가 있는 찰튼으로 떠나버렸다. 반대로 오웬은 2002년 발렌시아가 리버풀을 격파하는 과정에서 베니테스의 팬이 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그 해 여름 재빨리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리버풀의 영웅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변모했다.
리버풀은 5월 초에 무링요에게 리버풀로 올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이 때 무링요는 첼시와 사실상 합의를 마쳤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후 무링요는 리버풀로 갈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5월 26일 릭 패리가 열흘 간의 휴가를 떠났고, 6월 1일 베니테스가 발렌시아 감독직을 사임한 것을 볼 때 5월 말에 리버풀 감독은 베니테스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16일에 라파가 공식적으로 리버풀 감독이 되기 전까지 많은 변수가 있었다. 커비슐리는 정말 1순위였던 것 같은데 그가 유럽 대회에서 경험이 부족한 것이 큰 걸림돌이었고, 무링요 영입에서는 첼시와의 경쟁에서 이길 가망이 적었는지 모른다. 첼시에서 무링요의 연봉은 라파의 3배 이상이었는데 각각 챔피언스 리그와 UEFA컵을 우승한 두 감독 중 리버풀은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감독을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언뜻 보면 무링요가 왜 리버풀 감독이 되고 싶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가 리버풀의 팬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그의 말들에서는 리버풀에 대한 애정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무링요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프리미어십 진출을 꾀했고,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클럽으로 리버풀을 꼽았다는 가설일 것이다. 아스날과 맨유는 벵거와 퍼거슨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이므로 그 다음으로 매력적인,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잉글랜드 탑 클럽은 리버풀 아니면 첼시였다. 위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듯 첼시는 돈이 넘치지만 로만이 언제 변심할지 몰라서 불안했다. 첼시에서 로만의 초기 영입 행태를 목격한 이들이라면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리버풀은 안정된 클럽으로 보였으므로 무링요가 처음에 리버풀을 선택하려고 한 것은 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만의 구단 운영 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그가 결국 리버풀이 아닌 첼시를 선택한 것은 로만의 지속적인 투자에 대한 다짐을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리버풀의 영입 의지가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첼시는 구단주, 단장이 모두 나서서 열심히 작업한 반면 리버풀은 세 명의 후보를 두고 오랫동안 저울질을 했다. 무링요는 첼시에서는 엄청난 연봉을 받는 이상 구단주가 자신을 해임하더라도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
포르투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루고 첼시로 간 무링요는 리그를 제패했지만 첼시가 아닌 인터 밀란에서 다시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할 수 있었다. 반면 UEFA컵 우승을 이루고 리버풀로 간 베니테스는 곧바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지만 리버풀이 그토록 바라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첼시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라파의 리버풀이고, EPL에서 무링요의 첼시를 리버풀이 넘어서기는 힘들었다.
비슷한 나이(2004년 당시 라파는 44, 무링요는 41)의 두 감독은 유난히 충돌할 일이 많았다. 그 역사는 다른 곳에 기록된 것이 있을테니 이 글은 무링요가 올 수 도 있었던 2004년의 상황을 전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라파를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무링요와 라파가 2004년에 각각 리버풀과 첼시로 갔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 대해서 말해 본다. 그랬다면 라파가 첼시에서 모든 대회를 제패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차피 상상이므로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첼시의 감독 후보는 무링요와 데샹이었으므로 그다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상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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