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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체에 억한 감정을 품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기독교는 내 삶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에서 성당이나 교회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굳이 교회 안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고 들어가 본 적도 없었다.
처음 그러니까 대학 신입생 시절에 도를 믿냐는 분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이 싫었다. 교회를 다닌다는 분들이 보이는 명백한 도덕적 타락은 종교에 대한 환멸을 키웠다. 그런데 교회에 의지하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웠다.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많은 교수들이 기독교를 믿는다. 종교를 믿는 방식이 한 가지만은 아니겠으나 중세 유럽도 아닌 요즘 비과학적 논리라도 성경에 있으면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학자들을 보면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기독교는 나에게 두통거리가 되었다.
2006년 코엑스에서 있었던 도서전에서 멋모르고 마빈 해리스의 3부작 도서를 샀다. 책 속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예수가 그 당시 존재했던 수많은 비슷한 존재 중 하나인데 다만 추후에 기독교에서 '선택'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여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서두가 너무 길어질 염려가 있어 올해 SBS에서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 시리즈로 뛰어넘어야겠다. 1편에서 기독교가 이전에 존재했던 종교, 다른 종교들과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소개했다. 꽤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보려 했으나 나와 마찬가지로 방송을 보고 책을 대출한 사람이 있어서 며칠 전에 빌릴 수 있었다. 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고, 지금도 사고 싶은데 절판이란다. 한기총의 요구로. 대신 pdf파일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아직 1/3도 못 본 상황인데 지금까지 논의를 보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다큐 비슷한 동영상이다. 9/11에 대해서는 "루스 체인지(Loose Change)"를 거의 베꼈다는 평을 많이 봤는데, 제일 앞의 기독교 비판 부분은 바로 이 책 "예수는 신화다"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제작자가 인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출처 정도는 밝혀주는 양심이 있기를 바란다. 이 책 내용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책의 앞 부분은 시대정신에 나온 대로, 나같이 처음 보는 사람은 충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성경의 예수가 오시리스, 미트라스,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등등의 인물들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베꼈는데, 나중에 기독교측에서 다른 유사한 존재들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치부해버렸다는 것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지가 예수의 생일이 된 이유, 결국 예수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 숫양자리=>물고기자리=>물병자리로 옮겨가는 큰 한 달(A Great Month)과 종교의 관계 등은 책으로 다시 봐도 참으로 흥미롭다.
이 책의 핵심은 미스테리아라고 하는 영지주의적 전통을 기독교가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는 자신의 근원을 일부러 거부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미스테리아라는 것은 처음 보는 개념인데 역사적 흐름은 꽤 단순해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에서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로 이어지며, 책에서는 이를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는 신인(神人)으로 표현하고 있다.
방금 읽은 일신교와 다신교의 유사함에 대한 부분도 꽤 인상적이다. 특히 예수가 그렇지만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꽤나 유치한 상상력이다. 오히려 보이지 않고, 형체를 알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악마와 천사가 난무하는 기독교는 결코 유일신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다신교라 비난하는데 오히려 그 다신교가 진정한 일신교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신은 하나라고 생각하며, 신들(gods)은 유일한 신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신교와 다신교가 생각만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에 대한 반응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니 깊이 있는 분석글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고, 터무니없는 흠잡기로 일관한 기독교인들의 글은 여럿 봤다. 책의 내용은 제대로 소화하지도 않고(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시겠지만) 그렇게 길게 거짓말로 비난하는 정력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떠받들 생각은 없다. 한글 번역판은 일부러 주석을 많이 생략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들의 주장의 근거가 빈약해보이는 부분이 많다. 영어 원서를 보면 해결된 문제지만.
결국 미스테리아와 기독교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소크라테스, 플라톤도 일원이었던 미스테리아의 전통이 기독교에 이어진다면 기독교가 폭력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지웠더라도 현재 기독교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의 기독교모습 그대로로는 한계가 있겠다. 신이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질 것인가. 공존하며 도덕적으로 살자는 것이 종교의 핵심인데, 그렇지 않고 양심의 가책의 도피처로 종교를 이용하여 파괴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다.
인터넷에서 본 글에서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비판하기 위해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의 내용을 많이 차용했는데, 책에서도 종종 "황금 가지" 내용을 인용하고 있어 추후에 "황금 가지"까지 읽어봐야겠다 싶다.
- p.70 동방박사=마기(Magi). 에반게리온의 마기가 이 마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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